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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Jan 05. 2025

독서 모임의 호스트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꼭 잘해야만 할까요?

오마카세라는 단어를 패러디한 '고마카세' 독서 모임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매 회차마다 다른 참여자를 모집해서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계획과 달리 동일한 참여자들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멤버를 충원하는 공지를 블로그에 올렸지만, 좋아요가 참여 신청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예전 같으면 왜 신청자가 적을까 라는 고민을 오래 했을 것이다. 지금은 고민하되,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의 능력 없음으로 원인을 돌리지도 않는다. 다만 3회째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나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나는 어떤 역할로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들로부터 통찰, 이끎, 감동 등 살면서 쉽게 듣기 힘든 단어들로 인정받고 있다. 행복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해서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들의 피드백이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잘하지 못하지만 계속하길 잘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게 좋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유전자가 dna에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파는 영업사원이 학교 교실에 들어와 직접 홍보가 가능했던 시절, 사은품으로 주는 일회용 카메라가 무척 갖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저 카메라가 갖고 싶어서 가난한 줄 뻔히 알고도 전집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후로는 현실에서 눈 돌리고 싶을 때 책을 찾았고, 그때의 내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도망가고 싶은 날들이 많았던 나는 그렇게

 읽는 사람이 되었다. 책 읽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국어교육과에 입학했고, 세 번의 임용 끝에 교사가 됐다.

우연히 아이들과의 독서 토론에 재미를 붙이며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했다.

나의 '호'를 확신하지 못 이유는

참여자를 리드하는 호스트로서의 역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잘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국어교사가 아닌가.

그나마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좋아서 꾸준히 해 온 것이

스스로 칭찬 만한 일이었다.

십 년이 넘게 호스트로, 때로는 참여자로 독서 모임을 했다.

그림책도 읽고, 청소년 소설도 읽고, 한강의 소설도 읽었다.

아이들과 토론했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내 옆을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나는 이제 확실하게 독서모임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잘한다고 내세울 수는 없지만,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 같이 읽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타인정과 칭찬은 이런 나의 변화 위에서 얻게 된 큰 결실이다. 그토록 얻고 싶었던 타인의 인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많이 돌아온 것 같지만, 딱히 다른 길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힘껏 껴안기를 주저한다.

좋아하면 뭐 해, 써먹을 데가 없는데.
좋아한다기보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거지.
좋아하기만 하지, 잘하지는 못해.


자신의 호를 알아챌 수 있는 것도 분명 능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해 주지 않으면, 누가 대신 좋아해 줄까.

나를 인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면 된다. 말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길지언정, 절대 큰일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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