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은 십 대가 아니고, 아기가 아닌데 존재만으로 인정하기가 쉽냐고 누군가 반박한다면 뭐라고 할까를 생각해 본다. 실제로 그렇게 묻는 친구도 있다.
나의 가장 큰 성취는 뭘까.
교사가 되어 평생직장을 얻은 것?
하나도 키우기 힘든 시절에 아이를 셋 낳은 것?
책방 일에 발을 걸치며 계속 글 쓰는 삶을 사는 것?
아니다. 나의 가장 큰 성취는 두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밥 먹고, 볼 일 본 뒤에 뒤처리도 할 수 있다는 거다.
글 읽는 사람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불과 3년 전에 나는 그 모든 것을 못했던 적이 있다.
죽을병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살고 싶은 의지는 꺾였을지 모른다.
스무 살 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다. 이후로 임용시험을 준비하거나, 격한 운동을 하거나 하면 극심하게 재발하는 일이 두세 번 있었다.
2021년 그 해는 고3담임을 맡아 화장실 갈 시간도,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도 없이 내내 앉아서 아이들의 자소서를 보고 있었다. 나으려고 간 통증의학과에서 물리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다가 그만 크게 잘못된 것이다.
척추전문병원에서는 수술이 아니면 답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마흔도 전에 두 번째 수술을 하고 나면 나의 노후가 암담했다. 어떻게든 터져 나온 디스크가 스스로 사라지는 자연치유를 희망하며 버텼다. 자연치유가 언제 될지, 얼마나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막막했다. 아이들도 미치게 보고 싶고, 나 때문에 꼬인 학교 일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정상적으로 먹고, 걷고, 변기에 앉아 배변활동을 하는 일이었다.
자조능력 : 스스로 자신을 돕는 능력
아기가 돌이 지나면서 자아와 함께 발달하는 능력이 자조능력이다. 사전적 정의는 '스스로를 돕는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하기에 일찍 발달을 시작하는 그 능력이 마흔 살의 나에게 없었다.
아직도 자세히 쓰기 힘들 정도로 그때를 생각하면 수치스럽다. 요양원에 들어간 어르신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그만 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겠구나. 했다.
누군가는 마흔의 자조능력은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상급지에 30평 이상의 자가가 (빚 없이) 있는가,
매달 충분히 쓸 수 있는 돈이 들어오는가,
일 년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이 마흔 살이 가져야 할 '자조능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열한 것들이 굳이 '마흔'의 능력일 이유는 무엇일까? 반드시 마흔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스물이나 서른에 가진다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만약 스물이나 서른에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당사자의 능력이라 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물음은 '왜돈 없이는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마흔인가'이다.
현실에 대한 나의 기대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대단한 일들이다.
나를 인정하자는 말이 뜬 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며 얕보는 태도는 오만하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활을 얕볼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의 생활을 얕보지 말기 바란다.
심지어 우리는 스스로를 돕는 손과 발이 있어서 타인을 돕기도 한다.넉넉하지 못한 자원(돈)을 타인을 위해 쓰기도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