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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스타 Oct 05. 2020

추석 연휴, 9개월 조카에게 배운 것

D-230, 일상의 기쁨을 누리는 삶

이번 추석 연휴는 이전보다 훨씬 조용하고 단출하게 보냈다.

중대본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향 방문, 친지와의 모임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면서, 우리집 역시 명절마다 친가와 외가에서 친척들이 다 함께 모이던 시끌벅적한 모임을 가족 단위로 축소하였다.

특별한 외출 없이 모든 식사를 집에서 해결하면서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이 특별했던 건 바로 9개월 된 조카 덕분이었을 것이다.

언니네 식구가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조카 앞에 서서 한 명씩 안아보고 인사하느라 정신없었다.

막상 조카는 오랜만에 만난 우리가 아직 낯설어서 울먹거리는데도, 우리는 한없이 조카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누구인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소개했다.


평소에는 집안일이 귀찮고 피곤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아기가 온다고 하니 모든 게 기쁘고 즐거웠다.

거실에 아기가 놀고 자고 뒹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깨끗이 청소해놓고, 아기가 쓸 이불과 수건을 깨끗하게 빨아놓고, 이유식 먹으며 틈틈이 마실 아기용 보리차도 준비해두었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있으면 기겁을 하면서 치우고, 아기가 부딪히거나 다칠 수 있는 물건들은 다 방 안으로 쑤셔 넣었다.

내 방은 더럽더라도 아기가 있는 공간만큼은 깨끗해야 한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루 종일 옆에만 붙어있었다.

언니랑 닮아서 그런지 나를 잘 따르는 조카가 너무 귀여웠고,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면 나의 육아 스킬이 올라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기 덕분에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딱 이날 저녁까지였다.



새벽 2시 반, 4시, 5시, 7시.

의도치 않게 우리 가족은 거실로 모여야만 했다.


나쁜 꿈이라도 꾼 건지 조카는 몇 번이고 깨서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울어버렸다.

잠이 들만하면 울음소리에 깨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어차피 아기를 안아서 재울 사람은 한 명뿐이기에 나머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잠을 잘 수도 없었기에 거실에 모여 얼른 잠이 들기를 바라서 있었다.


늦은 오전 엄마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 모두 잠깐이나마 평온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이모 일어났네~ 할머니는 아침 준비하러 갈게요~"


나 아직 안 일어났는데.

말할 틈도 없이 내 옆으로 다가오는 아기를, 나는 눈도 못 뜬 채 받아 안았다.

홀로 아침을 배불리 드신 조카님을 팔로 꼭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재워드렸다.



짧은 1박 2일 동안 육아의 세계를 아주 조금이나마 체험하면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아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는 양손 가득 쥐고 먹으면서도 이유식을 먹을 때는 울면서 다 뱉어버고,

안아주지 않고 바닥에 앉혀두거나 눕혀두면 칭얼거리면서 짜증을 내곤 했다.

나는 아기가 기어 다니면서 어디 부딪힐까 뭘 입속으로 집어넣을까 한시도 눈을 떼지 못,

매번 똑같은 거실 전경이나 동화책을 보면서 아기 수준에 맞게 시답잖은 말을 걸어야 했고,

딱히 하는 것도 없이 머리가 멍한 채 하루를 보내버렸다.


그동안 길어봐야 2시간 정도만 함께 했던 조카는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지만, 이번 연휴 동안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 사랑스러운 아기를 위해서는 쳇바퀴처럼 반복되어야 하는 일상의 수고로움이 있음을 깨달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와 헤어지기 전 늘 하던 말은 여전히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냥 이모랑 같이 살자~"




아기와 잠깐  때아기의 모든 것이 특별하고 천사 같 느껴다.

하지만 매일 아기와 함께 다면, 육아가 때로는 정말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비슷비슷한 일상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이 있기에 아기가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는 기쁨, 나와 닮은 생명을 섬기고 아끼고 돌보는 사랑, 그 사랑에 힘입어 아기가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행복을 느낄 수 있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연애를 하면서 보통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에 대부분 좋은 점들 눈에 들어오고, 이 사람이 나에게 꼭 맞는 완벽한 짝인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혼 이후에는 굉장히 특별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순간만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결혼 역시 일상이다. 특별하고 멋진 일만 있을 수는 없 것이다.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 둘이 만났으니,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함께 맞춰가는 노력과 수고가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는 것도 참고 해야 하는 인내,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수고와 헌신, 혼자였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희생과 섬김요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의 일상에는 분명 더 큰 행복이 있다.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함께 하는 기쁨, 연애 때의 데이트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하나된 가정에서 누리는 소소행복, 작은 부분까지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함, 더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편안함이 있다.

찰나의 특별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잔잔하지만 함께 는 소중함을 누리는 일상 것이다.



사실 결혼 이전의 에서조차 일상의 행복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난 5일간의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도, 제발 일상이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일요일도 아닌) 토요일 저녁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고, 저녁을 잔뜩 먹고서도 과자와 콜라를 찾는 폭식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공휴일, 휴가, 주말처럼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만 행복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 회사를 출근하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기쁨으로 충실히 감당하는 일상 역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임을 기억하려고 애써보지만,

아직까지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일의 출근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남은 기간 결혼을 준비하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누리는 훈련을 잘 감당하고 싶다.

거창한  없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때로는 수고와 헌신이 요구되더라도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일상이 있기에 특별한 순간이 더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출처]

커버 사진 https://unsplash.com/photos/7eIVXzJf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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