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에세이(5)
6월 말, 절정을 맞이했던 오이는 7월 장마 시작 이후로 급속히 기세가 약화되기 시작한다.
장마철 오이 관리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찾아봐도 특별한 정보가 나오진 않았다. 원체 작물이란 것이 장마랑 무관하게 꾸준히 관리해줘야 하는 것이니 딱히 장마철 관리법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닐지. 다만 요즘 여름 장마는 우기라고 불릴 정도로 산발적 집중호우가 강해졌으니 쏟아지는 물벼락을 대비해 지지대를 튼튼히 하고 필요 없는 순을 쳐내는 작업 등이 필요하긴 했다. 선천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벼락치기 근성을 버리지 못해 비가 쏟아지고 나서야 마음이 급급해진 것이다. '꾸준히 해야 한다'라는 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
결국 우리는 오이밭을 없앴다. 사실 나는 별로 없애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없을 때 오이도령과 그에 동조한 몇몇이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전격 철거했다. 최근 한 사이트에서 '식집사 필수덕목'이란 제목의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덕목 중 그분이 강조한 것은 바로 결단력이었는데 시들거나 무른 식물을 망설임 없이 잘라내고 다른 것을 심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게 요지였다. 놀랍게도 오이도령은 그 덕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이도령이 끝까지 을가클과 함께 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마르고 무르고 내려앉은 오이 밭도 문제였지만 기형적으로 자라나는 오이들도 오이의 종말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오이는 우리가 아는 그 오이가 아니었다. 아마 열매가 열리긴 했는데 뿌리가 약해지고 영양 공급이 제대로 안되면서 제대로 된 모양이 안 나온 것 같았다. 슬픈 일이었다. 간혹 어떤 오이는 너무 특이한 모양으로 자라서 오이 학회 같은 게 있다면 당장 보고라도 싶었는데 아무래도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그렇게 하진 못했다. 혹시나 전문적인 오이 연구자가 이 글과 사진을 본다면 꼭 출처를 달아 학회에 보고해 주시길 부탁하는 바이다.
오이는 그렇게 끝을 맞이했고
폭풍같이 몰아치던 우기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여름이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