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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Sep 21. 2023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오이 싫어하네

오이 에세이(4)

왜 이렇게 오이가 많이 자랐나 했는데, 많이 심었기 때문이었다. 25-30개의 모종을 심었고 7-8개는 자라면서 죽었다. 수확한 오이가 5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사실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다. 아무도 카운팅 같은 걸 할 생각은 못했다. 불쑥불쑥 열리는 오이를 보며 감탄하기 바빴고 그냥 먹기만 했다. 내가 가져간 오이만 20개는 되는 것 같다. 

  

오이 크기 비교. 주먹도 주먹이지만 휴지심이 눈에 띈다


오이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오이의 크기보다 훨씬 크게 자라나 을가클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들 오이를 쥐어보며 "아니 이 방망이는 뭐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또래보다 키가 큰 아이를 둬 괜히 우쭐해진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지들이 자란 거지 특별히 해준 건 없다. 흙은 마늘과 양파를 심을 때 썼던 원예용 상토가 그대로 사용됐고 거기에 감자를 심을 때마다 쓰고 있는 '부자왕'상표의 흙을 더했다. 둘 다 비료를 잔뜩 먹였기 때문에 컨디션은 좋았을 것이다. 물을 일정하게 주지도 못했고 지지대를 제때 세우지도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줬다. 올해 일조량과 강수량이 둘 다 적절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모든 환경이 참 중요하다. 



본의 아니게 오이 중독자가 됐다. 오이소박이, 오이 피클, 오이 샐러드. 오이는 어디에든 갖다 붙일 수 있다. 오이야말로, 진정 엔잡러같은 놈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 성호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공부를 잘했다. 아쉽게도 친하진 않았는데 과학고에 갔다고 했다. 성호가 오이를 먹지 않았다. 고등학교 같은 반 짝꿍이었던 장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역시 오이를 먹지 않았다. 우리 반 1등이었다. 엄마가 그 얘기를 듣더니 "공부 잘하는 애들이 오이를 싫어하네..."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부터 오히려 오이를 더 열심히 먹었다. 오이 좋아하면서도 공부 잘할 수 있거든? 고등학교 1학년의 깊은 마음속엔 그런 원초적 저항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적엔 큰 변화가 없었고 오이는 점점 더 좋아졌다. 오이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여전히 오이를 아주 좋아한다. 김밥도 오이 들어간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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