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Oct 13. 2023

출산은 못해도 발아는 시킨다

[바질 키우기] 2단계 : 발아 

찬바람이 부는데 바질 발아에 대한 글을 쓰려니 뒤통수가 싸늘하다. 하지만 최근 바질의 번식력을 봤을 때 인간보다 바질이 지구에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런 바질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인류에게나 바질에게나, 부디 내년에도 무사히 봄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우선 나는 어쩌다 보니 총 세 가지 방식의 바질 발아를 경험했다. 쓰고 나니 마치 세 가지 방식으로 출산의 경험이라도 한 것 같은 기세여서 조금 우습지만 생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근본은 같다고 본다. 

 첫 번째는 simda 스위트 바질 키트에 들어있었던 펠렛에 의한 발아다. 심다에서 받은 키트엔 납작하고 동그란 토큰 같은 것이 씨앗과 함께 들어있었는데 그 동그란 것을 펠렛이라고 불렀다. 일종의 커피 드립백처럼 흙을 넣어 압착시킨 것 같다. 그곳에 물을 부으면 크게 부풀어 올라 아주 작은 화분이 만들어진다. 신기하고 편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포장할 수 있다. (무섭네) 

 

simda의 스윗 바질 키트

 심다 키트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물을 많이 줘서 펠렛을 충분히 부풀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질 발아의 핵심이기도 하다. 씨앗은 늘 촉촉한 상태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심각하리만큼 손이 작은 사람. 라면 스프도 두 번에 나누어서 넣는다. 게다가 내 머릿속엔 '식물이 죽는 이유 = 물을 많이 줘서'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물을 적게 주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과습은 뿌리의 문제지 씨앗과는 큰 관련이 없다. 배수가 잘 안 되는 큰 화분에 물을 잘 못주면 흙에 곰팡이가 스는 경우가 있다. 발아의 경우엔 웬만해선 그럴 일이 없다. 씨앗은 물을 좋아한다. 그것뿐이다. 발아할 때도 햇빛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 펠렛을 열심히 창가에 둔 적도 있다. 빛은 식물의 잎에나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참 많다. 

 

10일을 넘기고서야 겨우 싹이 올라온 바질3. 보통은 일주일이면 발아가 된다


마침 함께 심다 키트를 받은 을가클 멤버로 인해 실험 아닌 실험을 하게 됐다. 미용실 선생님이 머리를 자르기 전 머리에 분무하는 정도로나 물을 줬던 나에 비해 홍수가 날듯 펠렛에 물을 들이부은 큰 손이 한 명 있었다. 결과는 확실했고 그렇게 바질 발아의 성공요인은 '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휴지나 솜에 발아를 하는 분들도 많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휴지에 발아를 시키면 발아율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흙보다 물을 확실하게 먹어서 발아가 좀 더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발아는 흙에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우선 1. 결국 흙으로 옮겨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고  2. 무엇보다 씨앗이 흙이 아닌 휴지에 놓여있는 건 너무 부자연스럽다. 발아 실험실도 아니고 발아 대회를 치르는 것도 아니니. 씨앗도 결국은 식물. 처음부터 흙에서 자라는 게 자연스럽다.  


30일이 넘었지만 힘이 없다 / 반면 물을 흠뻑 준 발아왕의 바질. (14일차) 콩나물처럼 무성하다!


두 번째 발아는 을지로 텃밭에 뿌린 것이 발아한 것이다. 다이소에서 사 온 씨앗을 별생각 없이 텃밭에 마구 뿌렸는데 마침 그 주의 몇 번의 폭우가 내렸다. 씨앗이 전부 떠내려가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바질은 모두 고개를 내밀었다. 마구 뿌린 탓에 마구 올라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역시 발아는 수분이 중요하구먼.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세 번째는 바질 꽃에서 떨어진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계획 없이 발아한 자연 발아다. 사람의 경우 비유해 마구 말하고 싶지만 어째 사람, 바질 모두에게 실례가 될 것만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때는 이미 앞서 심은 바질들로 거대한 바질 밭을 만들어낸 뒤였기 때문에 처음처럼 큰 감흥이 있진 않았다. 짧은 사이에 조금 거만해진 것이다.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 세상에 나온 바질들에게 조금 미안할 따름이다. 다만 이때 자란 바질은 9월 경 올라온 것들이어서 그런지 어째 전보다 힘이 없다. 바질은 인도, 동남아 등 열대 지방이 원산지다. 파종은 보통 4-6월 정도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엔 발아도 자라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전 11화 다들 뒤뜰에 바질 하나쯤은 있으시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