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5년 3월 강릉에서 태어났다. 9살까지 홍제동에 살다가 어느 여름 교1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당시, 교1동은 일명 슬라브 주택이라고 불리던 양옥집들이 즐비한 곳이었고, 보기 드물게 구획정리가 되어있는 나름대로 신도시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교1동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아빠가 친척분 보증을 섰는데, 그분이 돈을 갚지 못할 것 같다며, 대신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오라고 했다.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이사 가기 전 집 구경을 갔는데, 거실에는 소파가 놓여있고, 주방에는 냉장고가 2대나 있는 아주 좋은 집이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홍제동은 계량화된 ㄱ자형 한옥집이었고, 아궁이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흔히 말하는 입식 부엌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집 소파에 앉아서, 친척 아주머니가 준비해 주신 홈메이드 카스텔라 빵을 먹는데,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신문물을 접한 분위기랄까.. 더욱 신기한 것은, 이 맛있는 빵을 한 입 먹고 버리는 친척 동생들이었다. '이 집은 확실히 우리보다 부자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엄마도 집이 너무 좋아서 아주 기뻐하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든 게 아름답게 흘러가진 않았다. 아빠는 그 집을 사는 조건으로 당시 800만 원을 친척분에게 빌려준 돈에 얹어 지불했는데, 그분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않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이사를 했고, 아빠는 성실히 경찰관으로 재직하시면서, 돈을 다 갚았고, 몇 번의 증축과 수리를 거쳐 여전히 교1동 우리 집에서 살고 계신다.
1983년 6월 30일.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숫자와 사람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편이다. 그날이 되면, "아빠, 오늘은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온 날이야!"라고 말했고,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것이 기특해서인지 아니면, 그간의 본인 노력 때문인지 아주 흐뭇해하셨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리어카에 짐을 실어 교1동을 향해 홍제동 언덕을 넘어갔던 그 날의 장면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