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대 이동

by MIRA

교1동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는 뭔가 시내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전 홍제동 집 뒤에는 산이 있어서 동네 언니들과 주로 산에 가서 놀았는데, 거기에는 밤나무 과수원도 있었다. 가을에 햇밤을 서리해서, 나뭇가지로 가시 껍질을 벌리고, 햇밤을 꺼내, 이와 손톱으로 재주껏 껍질을 까서 한 입에 쏙 넣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홍제동 시절과는 다르게, 교1동은 숨바꼭질이나 한걸음 뛰기 같은 뭔가 세련된 놀이만 해야 할 것 같고, 산에 가서 노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내가 더 이상 촌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아주 으쓱했는데, 교1동 우리 집에는 결정적 단점이 있었다.


교1동에는 국민학교가 없어서 나는 여전히 강릉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9살짜리 아이가 40분을 꼬박 걸려 날마다 언덕을 넘어 학교를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교 후에 친구 집에 놀러라도 갈라치면, 친구 집은 우리 집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서 1시간이 넘어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전학이라는 새로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교1동에 국민학교가 없다는 문제로 민원이 발생했는지는 어른들의 일이므로 잘 모르겠다. 다만, 교1동에는 강릉시 교육청이 있었고, 뭔가 높으신 장학사님께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어느 날, 교1동에 국민학교를 새로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4학년이 되는 첫 날, 강릉 국민학교로 등교를 했다가, 교1동에 사는 아이들만 따로 호명되어, 단체로 홍제동 언덕을 넘어 새로운 학교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전학'이라는 것은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얘기이고, 주변에 누가 새로 이사를 오거나 가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던 터라, 내가 지금 언덕을 넘어 새로운 학교로 가는 것이 전학인지 아닌지, 전학을 이렇게 단체로 갈 수도 있는지 궁금했다. 언덕을 넘으면서도, 아이들과 전학이네 아니네를 따지기도 했고, 못내 강릉 국민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는지, 교가를 살짝 불렀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교1동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갔던 것처럼 친구들과 언덕을 넘었고, 영동 국민학교 학생이 되었다.


훗날, 몇 몇 동창들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고, 중간에 넘었던 언덕 길이 화산예식장 앞이고, '너도 강릉 국민학교였어?'라는 질문을 서로 건네고 있다.

당시 영동 국민학교는 1985년 3월 2일에 개교를 하였고, 6월 7일을 개교기념일로 정하여, 자연스럽게 현충일과 이어지는 소위 당시에는 없었던 황금연휴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 점이 너무 좋았고, 새 학교, 새 교실, 새로운 친구들에 한껏 들뜬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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