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밝은 영동 제일~교가 표절

by MIRA

90년대 표절은 거의 범죄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가수 이상민이 룰라의 신곡을 미국에서 만들어왔는데, 고음 부분에 표절이 발견되어 그룹을 해체했던 일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제임스라는 어떤 미국인과 함께 작곡을 했고, 그 사람에게서 자료를 받아 쓴 거라고 했는데, 이상민은 울었고,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은퇴 혹은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친구들과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모든 것이 신기할 정도로 신나는 기분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개교기념일이 정해지고, 그날에 맞추어 기념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교가'였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칠판에 어떤 악보를 그리시고, 사실 정확하게 그렸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복사기로 A4용지에 복사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종이 한 장이 아쉽던 시절이라, 초록색 오선지 칠판에 선생님께서 직접 악보를 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가 배울 새로운 학교 교가는 "태백의 힘찬 줄기, 우리를 감싸고, 동해의 넓은 물에, 푸른 꿈 가득하다~"로 시작되는 4분의 4박자에 주로 4분 음표와 2분 음표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구절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강원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태백산이나 동해와 같은 지리적인 특징을 가사에 담고 있는데, 교가를 처음 접한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강릉에 살고 있고, 태백과 동해는 아주 먼 곳인데, 왜 저 동네 이야기를 하는지, 정작 강릉이라는 단어는 교가에 왜 하나도 없는지.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당시 교가는 선생님 중 어떤 분이 작사, 작곡을 하셨고, 우리는 몇 날 며칠에 걸쳐 교가를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 밝은 영동 제일~"로 시작하는 세 번째 구절에 멜로디가 바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미파솔파미 미파솔라",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절대음감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음계는 기억나지 않는다. 직접 불러줄 순 있지만, #이 두 개 있는 걸 보면, "미피솔피미~"로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대충 정리하기로 한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미파솔파미 라라시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기껏 연습했는데, 고쳐야 한다는 사실이 좀 짜증이 났고, 무엇보다 처음 것은 자연스럽지만, 나중 것은 뭔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자라온 그 시절은 그랬던 것 같다. 표절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고, 교육적 관점에서 자신의 실수를 발견한 창작자께서 아주 정직한 태도를 보여주신 것이다.

누구도 울거나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담임 선생님께서는 어떤 노래와 비슷해서 바꾸는 거라고 설명하셨고, 우리는 새로 연습을 했고, 당시 나는 다시 외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싫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강릉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소위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 중 한 명이다. 웬만해서 굵직한 일들은 다 기억을 하는데, 의외로 중학교 교가는 하나도 기억에 나질 않는다.

고등학교 교가는 "화부산 봄꽃 피니 아름다워라~'로 시작하는 전통과 여고의 낭만을 그대로 표현한 멜로디와 가사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중학교 교가는 끄트머리 어느 부분이라도 기억이 나야 하는데, 전혀 백지상태이다.


교가는 아니지만, 서울로 유학온 학생들 사이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나는 성북구에 있는 K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고려대학교냐고 물어본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 사이에는 지역을 대충 묶어서 향우회라는 사조직이 결성되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2호관에서 '강릉 향우회' '공예미술학과 조미라' 이름이 쓰여진 대자보를 발견하게 되었고, 향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향우회는 뭐 그냥그랬다. 오빠들이 주로 많았지만, 잘생기진 않아서, 아주 즐거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감동적인 것은, 다들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집으로 헤어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모두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선배가 선창으로 노래를 부른다. 바로 '사공의 노래'였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떠나간다. 물맑은 밤바다에 배떠나간다. 이 배는 달맞으러 강릉 가는 배~"


들키진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울었다. 풍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꼭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나이 스무 살에 엄마랑아빠랑 떨어져서, 혼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고향 오빠들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때, 선배가 다시 외친다.

"한번더~" "이 배는 달맞으러 강릉 가는 배"

그 부분은 항상 돌림이라 두 번 부르는게 룰이었다.

"어기야디히여어랏차, 노를 저어라~"

1994년 어느 여름 밤, 성대 앞 캠브리지는 영국의 캠브리지보다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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