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나 혼자만 라이벌
"백오십......"
교무실 한가득 선생님 한 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수능을 마치고, 학생들은 각 반 담임선생님 자리 옆에 앉아 순서대로 원서를 쓰는 중이다. 그때, 누군가 저 멀리서 교무실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한 학생의 수능점수를 공개했다. 모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고, 나 역시 나보다 점수가 높은 아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바로 '현모혜진'이었다.
사진 속의 우리는 모두 4학년 1반이었고, 아람단이었으며, 합창단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 학교는 한 학년이 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4학년에서 6학년까지 적어도 한 번은 같은 반이 될 가능성이 높긴 했다. 그중 현모혜진은 나와 초중고 동창이며 나의 기억 속에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현모혜진이 좋을 때도 있었고, 싫을 때도 있었고, 부럽고 샘이 날 때도 있었고, 심지어 무서울 때도 있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구성된 가장 흥미진진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있는 힘껏 달려 결승점에 도착하면, 각 순위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해당자를 찾아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신다. 손 등에 찍힌 '1'이라는 숫자가 세상 그 무엇보다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대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1등과 2등을 오가게 되었다. 문제의 상대는 역시나 현모혜진이다.
당시 개인전 달리기는 두 가지 형태로, 기본 달리기와 장애물 달리기로 구성되었다. 그중 장애물 달리기는 사다리 통과, 훌라후프 돌리기, 포대자루 뜀뛰기 등 단계별로 나뉘어 있었다. 각자 나름의 전략이 필요했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안타깝게도 나는 현모혜진과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나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는 그 애의 등이 야속하고, 내 느린 다리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장애물 달리기는 조금 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단계 사다리 코스만 잘 통과하면 할만할 것 같았다. 중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운 좋게 모든 장애물을 앞서서 통과하고, 마지막 결승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 등 뒤로 현모혜진이 나타났다.
우리는 마치 샴 쌍둥이처럼 한 몸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왼쪽 어깨로 온 힘을 다해서 현모혜진을 막았고, 절대 비켜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달렸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에게 '네가 비켜주지 않아서....'라는 말을 했는데,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내 손 등 위에 찍힌 도장만 바라봤다.
나는 자주 현모혜진 집에 놀러 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많은 친구들 집에 놀러 간 기억이 있다. 심지어 최이사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골든벨 집에도 가봤으니, 세어보라고 하면 스무 군데는 넘을 것 같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모혜진 집에 놀러 갔는데, 갑자기 TV에서 뉴스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지금처럼 하루 종일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 4시쯤 되어서야 방송을 했다.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온다. 국적불명의 비행기 한대가 우리나라 상공으로 침입했고, 아직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시 현모혜진 집은 학교를 기준으로 오른쪽이었고 왼쪽이었던 우리 집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뉴스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러다가 엄마 아빠랑 헤어지고 전쟁고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도 나를 데려다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 사건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분명 현모혜진 집에 놀러 갔던 날이고, 아저씨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오버랩되는데, 나는 누구 집에 놀러 간 거지?
이후, 현모혜진이네는 우리 집 아래 골목으로 이사를 왔다. 아저씨가 직접 설계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구조가 복층이었고, 지금까지 내가 본 이층 집과도 달랐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자기 방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오빠만 2명 있어서,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는데, 내 물건이라고는 작은 책상 하나뿐이었다.
어느 날, 현모혜진이 자신의 방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온갖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서 한쪽 벽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풀잎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그 위에 무당벌레를 오려 붙였다. 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번 현모혜진이 부러웠다. 내 미적 감각을 총동원하여 재주를 발휘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현모혜진은 나보다 더 미대에 갈 것 같은 인물 중에 하나이다. 사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전자는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파이고, 후자는 자기 작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파이다. 나는 철저하게 후자에 해당한다. 나는 전혀 미대생같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언제쯤 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될는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MARI가 듣고 '너 깬다'라고 했던 슥태열이야기, 중학교 때 내가 엄청 좋아했던 정원장 사촌 형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영원한 오빠 장국영 이야기.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얘기만 있는 것 같고, 현모혜진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긴 하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현모혜진이 여고 관악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던 일, 과 TOP으로 제일 먼저 취직한 일, 뒤늦게 디자인 공부를 해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한 일, 그리고 마지막, 나의 고3 절친 음악숙선생 오빠와 결혼한 일까지도.
넓은 운동장에 빗자루를 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6학년 때, 가끔 어느 달 1일은 '조기청소의 날'로 아침 일찍 모여서 운동장 청소를 한 기억이 있다.
청소를 마칠 무렵 한 남학생이 타고 온 자전거를 한 여학생이 타고 운동장 한가운데로 움직인다. 바람을 가르면서 자전거를 타는 여학생의 모습이 샤랄라 하다. 순간, 한 놈이 번쩍 뛰어올라 달리는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탄다. 자전거는 잠깐 멈춘 듯했지만, 다시 유유히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그녀의 자전거가 저 멀리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