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반에서 4반으로

5학년 4반 춘추전국시대

by MIRA

#01 1반에서 4반으로

어느덧 우리는 5학년이 되었다. 우리 교실은 맨 위 4층 6학년 형님 반대쪽이었고, 나는 처음 부반장으로 뽑혔다. 그전까지 엄마가 학급 임원을 맡으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 순전히 내가 인기가 없어서 도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란 얘기다. 나는 부반장으로, 송슨미는 반장으로, 우리는 5학년 1반 여성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반 배정도 임원선거도 모두 끝나 이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었는데, 교육청에서 한 학급 당 학생수가 과밀하니, 3개 반에서 4개 반으로 재배정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5학년 전체가 운동장에 모였다. 반 별로 스탠드에 앉아서, 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다시 그룹을 나누어 앉았다.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새로운 반으로 재배정되었고, 거기에는 송슨미도 있었다.

조선시대 벼슬에서 좌천되어 귀향을 가는 선비가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새로 배정된 우리 반은 4층에 빈 교실이 없어서, 3층 복도 끝에 위치하게 되었고, 우리만 버려진 것 같아서, 나는 처음으로 철기선생님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은 한 가지 있었다. 중간에 서울에서 전학 온 미쓰 장이 있는데, 학기마다 임원선거에 나가도 뽑히지 않아 속상해하던 친구이다. 때마침 나와 송슨미가 떠난 빈자리에 새로운 반장과 부반장을 뽑아야 했는데, 미쓰 장이 부반장으로 뽑힌 것이다. 즐거워하는 그 애 얼굴을 보면서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 이해되었다.

나는 다시 5학년 4반이 되었고, 담임선생님은 육상부를 담당하시는 용호선생님이셨다. 키가 크셨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는데, 음주를 즐기셔서 그런지 얼굴은 좀 까만 편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물으면 용호선생님이 랭킹 3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붓글씨 때문이다.

쿠바여행은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 이상한 엽서 한장이 과사무실로 배달되었다. 퇴사기념으로 20년째 소장 중.

선생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유유자적하신 분이었다. 아마도 옛날에 태어나셨으면, 시 좀 읊고 풍류를 즐기셨으리라. 당시 우리들은 학습지 같은 유인물을 한 장씩 푸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은 그동안 벼루에 먹을 가셨다. 먹을 손에 쥐고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갈면서, 우리에게는 학습지를 풀라고 하셨다.


만약 선생님께서 학습지를 늦게 푸는 학생에게 먹 가는 걸 시키셨다면, 흔쾌히 천천히 풀었을 것이다.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한 번 갈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선생님의 붓글씨 시간이 좋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내가 미술을 전공하게 된 시작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천천히 먹을 간다. 붓에 먹물을 찍고 화선지를 반듯하게 펼치고, 글씨를 또박또박 쓴다. 붓 끝이 좌우로 움직이며 멋진 획을 긋는다. 교실 안 묵향이 가득하다.'


당시 흑상이네 건물 3층에는 '서일 서예'라는 학원이 있었다. 현모혜진의 권유로, 6학년 때 나는 엄마를 졸라 드디어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먹을 가는 것도 글씨를 쓰는 것도, 심지어 천자문을 외우는 것까지 너무 즐거웠는데, 딱 한 가지 매일매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결국 두 달을 다니다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다. 천자문 좀 외웠다고 중학교에 가서 한문 백점을 맞았고, 꼭 태교로 붓글씨를 쓰겠다 결심하여, 세상 모범적인 YOON을 낳았으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붓을 들고 있다. 도자기 컵에 꽃을 그리고, Galaxy Note20로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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