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수학경시대회
나는 개인적으로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대에 다니는 작은오빠의 권유로 문과에서 예체능으로 전향했고, 이후 황비홍이라고 불리던 수학선생님의 얼굴이 참 동그랗구나 하는 기억만 남아있다. 더이상 함수나 로그는 내 사전에 없는 것이 되었고 특히 미적분은, 누구세요?
이런 나에게도 나조차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일이 수학에서 일어났는데, 바로 '수학경시대회'였다. 어느 날, 1반에서 3반까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뤘고, 그 중 7명을 가려내어 수학경시대회 대비반을 구성하였다.
예상대로 우리 학년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남녀 브레인과 내 앞에 앉았던 쫑민이, 나는 그때 처음으로 쫑민이가 수학만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하지 않아서 큰 기억이 없는 계란이, 남은 2명은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컨디션이 좋았나? 예쁜 옷을 입었던가?
다음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등교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아서 수업 준비를 했다. 갑자기 옆 반 순자선생님께서 나와 쫑민이를 부르셨다. 우리는 가방을 챙겨 건너 편에 있는 과학실로 이동했고, 거기에는 먼저 온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확실했다.
선생님은 수학으로 가득찬 시험지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시간 안에 다 풀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인의 교실로 돌아가셨다.
나는 덩그러니 우리만 남아서, 하루종일 수학시험지만 풀어야 한다는 현실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분명 교실에서 친구들은 나빼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텐데, 조금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당시 수학경시대회는 운동회 시기와 겹쳐 있어서 친구들은 수업 대신 모두 운동장에 나가서 마스게임 연습을 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운동회는 크게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 동네 잔치와도 같았다. 고학년 남학생들은 권봉을 이용한 기계체조를 했고, 고학년 여학생들은 부채춤과 마스게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수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운동회 준비는 아주 즐거운 일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창밖으로 친구들이 대열에 맞추어 율동을 배운다.
'아, 저렇게 진도를 빨리 나가면, 난 언제 배우지? 잉, 못따라갈 수도 있는데......'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수학시험지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저기 운동장인데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 후, 난 일주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수학시험지만 풀고, 심지어 선생님댁에 가서 밤늦게 문제를 풀고 오기도 했다. 엄마에게 선생님 댁에 다녀와야 한다며 저녁을 먹고 빈손으로 설렁설렁 골목을 내려갔다. 마침 여브레인이 손에 뭔가를 들고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 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왔거니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음 날, 선생님께서는 그간의 성적을 발표하셨고, 하루 더 연습할 의사가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셨다. 내가 7명 중에 5등을 했고, 4등과는 총점차이가 5점이라 한번 더 확인하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결정이 빠르고, 단호한 편이다. 더이상 수학시험지는 쳐다보고 싶지 않고, 빨리 운동장에 나가 마스게임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선생님은 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다음 날, 줄 한쪽에 서서 동작을 따라하는 나를 보며 '그렇게도 하고 싶었어?'라는 말씀을 건네셨다.
친구들은 학교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조회시간에 선생님의 호명으로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니, 조금 부럽긴 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에게 수학은 그저그런 과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을 잘한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았는데, 5학년 때, 특이한 일이 한번 더 있긴 했다.
역시나 그날도 컨디션이 좋았는지 문제가 술술 풀렸다. 어떤 문제의 답이 '숫자 ㅣ'로 똑 떨어졌는데, 나는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숫자 ㅣ'을 예쁘게 활자식 '1'로 바꾸어 버렸다. 문제는 내 답을 본 여브레인이었다. 만약, 어리버리한 남학생이 내 시험지를 채점했다면, 당연히 백점이었는데, 하필이면, 여브레인이 내 시험지를 채점한 것이다.
"선생님, 숫자 ㅣ을 활자식 1로 쓰면 안되는 거죠?"
이게 무슨 소리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수학식에서 그냥 일자를 숫자 ㅣ로 써야했다. 남편은 자긴 그런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면 나에게 핀잔을 주지만,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한 문제를 틀렸고, 그날 이후 수학과 결별하게 되었다.
여브레인은 내가 당시 여학생 중에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동창이고, 고등학교 1학년때 한번 더 같은 반이 되었다. 당시 여고 1학년 전교생은 600명이었는데, 체육선생님께서 실기 80점 만점, 이론 20점 만점을 받는 학생은 본인도 처음이라며 "현이가 누구야?" 궁금해 하셨다. 확연하게 우리는 달라진 노선을 걷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동창 중에 누구누구는 S대에 갈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여브레인이다. 조MARI기자에 의하면, 아쉽게도 그녀는 H대를 갔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제주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여고 동창 엄여사는 아들을 낳았을 때 현이처럼 키우고 싶다고 했다. 현이는 여고 시절, 음악, 미술, 체육을 포함한 전과목에 우수한 인재였다.
"그런데 말이지. 엄여사, 현이어머님은 교양있으셔......너, 그거 없잖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