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난 생활을 회고해 보면서, 이제야 신앙 고백하듯이 힘 빼고 독백해 보렵니다. 분명 힘 다이어트를 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을...
1. 파리 시내를 드라이브했을 때
난 벨기에에 도착했을 때 전임자에게서 미리 산 중고차가 있었다. 그 덕분에 무거운 짐도 실어 나르고, 임시주택에서 쇼핑, 출근 시 워털루 역까지 이동 등이 모두 수월했다.
시차가 적응될 즈음인 도착 5일 후였다. WCO와의 고용계약 시작 날짜가 아직 2-3일 남아있어 주말에 난 무작정 가족들에게 편도 3시간 거리가 되는 파리로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2013년 가을에 파리 출장 왔을 때, 가족들과 꼭 다시 해보고 싶다고 결심한 것이 '바토 무슈' 유람선을 타고 센 강의 낭만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무작정 국제 운전면허증 하나 달랑 들고 가족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마치 좋은 맛집을 발견해서 가족들에게 보여주려는 흥분된 그런 마음이었다.
첫 해외 장거리 운전이라 솔직히 긴장했지만, 고속도로 그 자체는 운전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 시내에 진입했을 때부터 내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혈액의 온도는 부글부글 끓어 핸들을 잡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호등 체계, 라운드 어바웃, 일방통행 도로 등 너무 낯설고 복잡했기에...
어린 딸 으니는 계속 뒷자리에서 칭얼거리고 있어 백색 잡음처럼 청각에 방해받고 있었고, 내비게이션도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어 내 동공의 지진은 멈출 지 몰랐다. 결국, 호텔을 가는 도중에 루브르 박물관 뒤편에서 누군가 내 차를 '쿵'하고 뒤에서 박는 것이다.
내가 급정차를 한 것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뒤차가 안전거리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내 차를 박은 차는 엠뷸런스였다. 난 창문을 내려 옆에 바짝 붙은 기사에게 한쪽 모퉁이로 차를 대라고 하였으나, 그는 내가 동양인인 걸 확인하고서 이렇게 영어로 말하고 급하게 사라졌다.
"너의 범퍼는 아무 이상이 없어. 지금 난 환자 때문에 급하게 가봐야 해. 파리에서 즐거운 여행 해"
나에게 윙크까지 날려가며 여유롭게 사라진 엠뷸런스 기사를 쳐다보며, 난 소심하게 항의를 해 보려다가 다시 핸들을 꽉 잡고 천천히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큰 충격은 아니어서 가족들과 중고차 모두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유럽에서는 미세한 접촉 사고는 보험 처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 그날을 회상해보면, 속삭이게 된다. '좀 더 차분하게 힘 빼고 운전했다면 좋았을 텐데...'
2. 국제회의 발표에서 답변할 때
두 번째 PTC 회의에 접어들었을 때, 국장 Ana는 나에게 헤드 테이블에서 보고서를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
지난 회의에서 옵서버로 한 번 본 경험이 있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플로어 측에서 수많은 질문이 들어오게 될 경우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게 가장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난 예상 질의응답서를 사전에 메모해서 준비했다.
내가 처음 발표한 것은 관세 관련 용어 4-5개의 표준화된 정의(Definition) 안을 보여주고, 회원국 승인을 받는 것이었다.
영어, 불어 버전의 두 개 스크린을 띄워 놓고 의견을 받는 것인데, 의외로 나에게만 10개 이상의 질문 및 수정의견이 쏟아졌다. 발표는 힘 빼고 잘했으나, 질문 및 의견에 대한 답변은 너무 의욕이 앞서 내 역할을 벗어날 정도의 주장으로 결국 합의점을 보지 못했다.
의장은 내 어젠다를 보류시키고 그 PTC 회의의 마지막 날 어젠다로 연기시켰다. 결국, 빈약한 논리와 힘 들어간 나의 에티튜드를 보고 플로어 측은 더욱 강하게 나를 밀어부쳤고, 5개의 정의 중 오직 한 개만 승인되는 것에 족해야 했다.
결국, 다음 회의부터는 내가 아는 범주에서 사심 없이 답변하고, 자신 없는 내용은 국장이나, 부국장에게 마이크를 넘겨 수월하게 승인받을 수 있었다.
또한, 마음을 비우고 불필요한 의욕을 앞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영어 발음 톤도 훨씬 신뢰감 있게 청중에게 전달된다는 사실까지도 새삼 깨달았다.
국제회의는 200여 명 되는 플로어와의 기싸움이다. 발표자가 수세에 몰리면 심리적으로 붕괴될 수 있다. 플로어는 발표자가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에, 긴장한 모습에 공격 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난 발표나 워크숍 때 입술을 풀거나, 어깨와 눈동자에 들어간 힘부터 뺀다.
3. 한인 가족의 체육대회 때
모든 스포츠는 힘을 뺐을 때 성과가 높게 나타난다고들 하는데 적어도 나에겐 정말 그랬다.
한 번은 감기몸살이 너무 심하게 걸려 다음 날인 주말에 예정된 골프 대회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약을 먹고 콧물과 재채기가 진정되는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나가기로 했다. 생각치 않게 그 날은 내 개인 기록을 경신하여 우승한 날이 되었고, 그 이유는 힘 빼고 일정하게 스윙을 했기 때문이다. 18홀을 치는 동안 나의 멘털 상황은 일정하였고, 스윙도 80% 정도의 힘만 꾸준히 유지하였다. 절대 무리수는 없었고, 거리의 변동폭도 미세하였다.
한편, 한인 가족들은 1년에 한 번 모여 한인회장 주재로 사생 및 체육대회를 한다.
본인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의욕만 앞세우다 보면 큰 부상을 초래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기에 난 최대한 힘을 빼고 축구를 했더니, 혼자 5골을 넣게 되어 최종 6:1로 이겼다.
개인적으로 그 날의 MVP가 되었던 영광스런 기억이 난다. 축구선수 차두리도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는 드리블이나 킥에서 힘을 빼고 동작을 가볍게 한다는 생각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삶의 일상에서, 소통에서 '뭐든지 힘을 빼야 나아집니다'라는 걸 요즘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아이들과 놀아줄 때도 꼭 힘 빼고 수평적인 눈높이에서 하려고 노력하며. 직원들과 소통하거나 업무 할 때도 무리하지 않고 과욕 부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부부간에 대화할 때도 조금만 힘 빼고 대화하면 확실히 싸움이 덜한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가 조급하거나 일방적인 욕심을 부릴 때 오히려 역효과가 나거나 반항심만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차분하게 타일러줘야 아이들도 따라온다는 생각이다. 물론 여행에 있어서도 욕심을 내려놓고 출발하기 전부터 '힘 다이어트'가 필수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