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사람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끔은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취향을 잘 알 것이라고 믿었는데, 엉뚱한 제안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아내라는 사람은 의견이 척척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가끔은 의견이 달라 마찰이 종종 발생한다. 외식을 먹으러 가더라도, 쉬는 날 주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도 단 한 번에 ‘오케이’로 승인된 적이 없다.
아내라는 사람은 대학에서 같은 학과를 전공했고 생각이 비슷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다른 데가 많은 사람이다.
칫솔질하는 강도도 다르고, 치약을 짜는 양도 다르며, 위생 관념도 너무 다르다. 목욕 후 욕조를 닦고 나오지 않으면 아내는 나를 벌레 보듯이 하니 말이다.
나는 늘 피곤해하는 아내의 뭉친 어깨와 굳은 목을 주물러 주지만, 아내는 지금껏 손이 닿지 않는 내 등을 한 번도 밀어준 적이 없었다.
그런 아내라는 사람과 어느덧 연애한 지 어느덧 20주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 대략 15년이 되었다.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바로 3월 25일.
벨기에에서 이 20주년을 맞이하여 뭔가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바쁜 일상 때문에 모른 척 지나가거나, 말로만 아내를 비행기 태우며 지나가던 일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낯선 해외에서 아내가 묵묵히 잘 적응하고 아이들 교육과 놀이를 위해 열심히 육아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나도 모르게 가수 ‘린’의 운명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시상에 빠져 순식간에 아래의 시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당신은 나의 운명
그저 당신은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20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당신은 나의 운명이었음을 소리 없이, 침묵하며 불러봅니다.
20대에는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곁이 되어 주었죠. 불안정한 청춘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주춧돌이 되어 주었죠.
30대에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석 같은 나의 아들 딸 허니, 으니를 선물한 당신. 비록 늦었지만,
운명처럼 가족의 행복을 도맡아온 당신.
40대에는 타지에서 함께 하는 시간들에 감사해요. 소리 없이 애쓰는 당신에게,
만난 지 20년이 되는 당신에게, 그대 덕분에 행복하게 산다고
광야에서 웃으며 불러봅니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세상이 변해가도, 내가 눈을 감아도, 그대만을 아낀다는 것을 아시나요.
앞으로 어떠한 시련과 폭풍이 있더라도 겁나지 않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그것 또한 당신과 나의 운명이라 믿기 때문에...
반짝거리며 날아가는 피아노 소리와 같이 잔잔한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처음 낭독할 때 아내는 전혀 긴장감 없이 삐딱하게 앉아 듣더니 점점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리고 끝날 때쯤 눈가에 무언가 고이더니 그새 얼굴을 숨겨 버린다.
더군다나, 아들과 딸이 옆에서 함께 듣고 있었다. 그들은 큰 감동이 없어 보였으나, 아내는 정 반대였다. 함께 한 20년의 세월이 압축적으로 드라마같이 흘러갔다.
낭독이 끝나고 케이크의 촛불은 꺼졌고 듬직한 두 어린 자녀의 축하 카드를 받았다. 두 자녀는 엄마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표정이었으나, 케이크에 대한 식욕이 훨씬 더 강해 보였다. 그들이 케이크를 해치우고 있는 동안 난 아내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3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저축한 돈을 털어 갖고 싶어 하던 가방을 하나 사 주었다. 20주년 그 선물은 타이밍 있게 주지는 못했지만, 한 달 가까이 아내의 자존감 회복 속도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가방은 아직도 한 번도 아내와 함께 화려하게 외출을 못 하고 깊은 옷장 속에서 이유 없는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