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에 아이가 변한다.

미운 오리 새끼,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러운 백조다.

by 미스터 킴

딸 으니는 나이가 4세라 처음에는 이웃집에서 추천해 준 현지 어린이집을 다녔다. 집에서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었다. 벨기에는 불어와 네덜란드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어는 제3 외국어에 해당된다. 따라서 로컬 어린이집 선생님 중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난 픽업해서 데려다줄 때마다 딸은 대화도 안 되는 곳에서 8시간을 낯선 아이들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가 안되니 딸이 잘 지냈는지, 싸우지는 않는지 등 아무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퇴근하면 으니에게 직접 일일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달라, 역시 걱정하던 데로 딸아이의 첫 적응은 쉽지 않았다. 그 10여 명 되는 꼬맹이들 무리 안에서도 텃세를 부리는 두 아이가 있었다. 바로 베아뜨 리츠와 요한나였다.


벨기에 아이들 틈에서 딸 으니는 유일하게 검은 머리의 아시아인이니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고 있었다. 어딜 가나 기득권 무리들은 신규(신뺑이) 입성한 사람을 군기 잡거나, 서열에서 막내로 내리는 경향이 있다. 감옥에서도 그렇고 군대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회사에서도 그런 편이다. 베아뜨 리츠는 그 꼬맹이 조직에서 병장, 요한나는 상병 정도 되는 계급의 조직 내 서열이었던 것 같다. 으니는 막 들어온 이등병인 데다 피부와 눈동자 색까지 다르니 얼마나 신기하고 괴롭히고 싶었을까 짐작이 간다.


난 으니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고, 어느 날 어린이집 공연이 있어 학부모로서 참석을 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내 딸 으니만 무대 위에서 춤을 추지 않고 멀뚱히 서서 몸만 베베 꼬고 있는 것이다. 중동 나라에서 온 다른 친구 한 명도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으니처럼 적어도 가만히 서 있지는 않았다. 기분 좋게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너무 가슴이 미어져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난 생각했다.


'아이가 우울하고 왕따로 힘들어한다면 차라리 어린이집을 안 보내고 집에서 자체 교육하는 것이 낫겠다'.


난 그 날, 벨기에 맥주를 잔뜩 마시고 뒤뜰에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추워서 깬 기억이 난다. 입이 돌아갈 뻔할 정도로 많이 속상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으니도 서서히 적응을 했고 기득권 아이들도 미운 오리 새끼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

나도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베아뜨 리츠와 요한나에게 다정한 눈빛을 지속적으로 보내 주고 불어로 예쁘다고 칭찬해주며 간식도 주면서 친해지기도 했다.

아이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가 시간을 두고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 아프다고 조급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엄마 혼자 독박 육아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의 시각으로 함께 공감해야 그 아이는 아빠를 든든한 백으로 생각한다.


결국. 으니는 1년 넘게 그 어린이집을 다니다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됐는데, 그때 베아뜨 리츠와 요한나가 딸 으니의 가장 친한 절친이 되어 있었다. 그 병장과 상병인 기센 언니들은 우리 딸을 더 이상 미운 오리 새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멋진 빛깔의 백조로 보고 있었고, 전학 이후에도 으니를 그리워했다는 후문이다...


딸은 이동해 간 초등학교 1학년 때 기대 이상으로 잘 지냈으며, 한국에 온 후에도 여전히

아빠를 친구처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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