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돌아와서 난 뭐가 달라졌나?

역시 난 한국인이다. 바로 적응했다.

by 미스터 킴

벨기에에서 천일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한 달 가까이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지냈다. 차도 팔았고, 이삿짐도 배에 실어 보냈다.


또한, 집세 보증금(3개월분 월세 예치금)을 받기 위해 원상회복 청소를 했다. 아이들이 낙서한 벽을 하얀색 페인트칠로 깔끔하게 회복시켰고, 못 박은 자국을 석회로 메우기도 했다.

군대 있었을 때 내무 검사받았던 것처럼 걸레질을 반복했으며, 현관에 지저분한 이끼들과 잡초도 일일이 모두 뽑았다.


집주인 프란시스 부부는 친절하고 낙천적인 피아니스트라 피아노를 잘 치는 내 와이프와 아티스트끼리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은 와이프와 피아노 합동 연주를 하거나, 장난스럽게 베틀을 할 때에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평소 그러한 친분이 쌓여온 사이였기에 에따델류(집 상태 점검으로 일부 금액을 보증금에서 삭감하고 돌려주는 인스펙션)에서 온정적으로 대해줄 것을 은근히 믿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였다.

냉정하게 꼼꼼히 점검한 결과, 우리 예치금에서 800유로를 차감할 수밖에 없었다. 빌트인 인덕션과 냉장고의 일부 손상, 보안 시스템의 미작동, 주방 청소 불충분 등이 차감된 원인이었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저항할 수 없는 합리적인 시설상 하자였다.


그렇게 여러 항목의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이웃집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차도 마시고, 기념촬영도 하고, 선물 교환도 했다. 특히 딸 으니의 로컬 유치원을 소개해줬던 옆집 노부부와는 눈물도 붉히기도 했다. 우린 그 집의 딸 야외 결혼식에 초대되어 참석하기도 했었다. 적어도 한시간만에 끝나는 한국 결혼식보다 낭만적이고 차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한국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한국에 오니 감정이 복합적이었다.

역시 내 고향에 오니 마음부터 편하구나. 전화 한 번이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구나.

한편 회사에서 있을 경쟁, 아이들은 학교나 사교육 시장에서 있을 경쟁, 앞으로 빠듯한 생활 걱정도 함께 생겼다.


서울에 진입한 택시 안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완전히 변했고, 한강대교, 이수교차로는 그대로구나. 와우, 잘 있었니? 서울의 너희들 꽤 보고 싶었단다. 지금 당장이라도 너희들을 일일이 방문해서 만지고 속속들이 느껴보고 싶단다."

라고 난 속삭였다.


난 떠날 때 들었던 음악 'All by myself'를 크게 틀고, 택시 안에서 이 다시 만남의 시간들을 즐겼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지금. 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 '벨기에에서 천일동안'의 기억들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 지금의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1. 느긋함에서 급함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도 모르게 '닫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서 있지 않고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심지어 두 칸씩 걸을 때도 있다.

지하철에 출퇴근 시간에 앉아서 가본 적이 없으며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줄을 선다. 서울은 정말 인구가 많다는 걸 실감한다. 한 번은 지하철 퇴근 시간에 걷다가 광화문역 옆에 전시된 책들을 보기 위해 멈춰 섰다.

순간 등속도로 걷던 수많은 사람들이 접촉 사고를 낸다. 결코 이 피크 시간에는 멈추지 않고 같은 속도로 걸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추월하는 사람이 힐긋 쳐다보고 투덜거리며 지나간다.


2.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눈치를 봐야 한다.


나의 브런치 작가 활동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이 의외로 있었다. 공무원은 최대한 자기 노출에 알레르기 반응이 많은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무원도 사람이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성찰이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의 공감과 소통이라 생각한다. 획일적인 것, 평균적인 것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닌데, 마치 그게 정답인 양 강요하는 사람도 있어 섭섭하다.


3. 어딜 가나 카메라가 날 보고 있다.


CCTV로 인해 치안 문제가 많이 해결된다는 장점이 있다. 벨기에에서는 소매치기, 도둑 등 잡범이 많지만 이런 카메라 설치가 안 되어 있어 잘 잡을 수 없다. 심지어 화장실도 유료이기에 야간에 맥주 마시고 노상 방뇨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는 이런 잡범이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하지만, 천장 위에 붙어있는 수많은 카메라를 보면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다. 하루는 코를 후비다가 카메라와 직접 눈이 마주친 적이 있어 황당하게 돌어서야만 했다.


4. 휴지통이 적고, 화장실이 깨끗하다.


우리나라 거리는 깨끗한 편이나, 휴지통이 적어 엉뚱한 곳에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경우를 본다. 화장실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무료라서 무지 편하다.

유럽은 아이들과 여행 시 수시로 화장실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뺏기고 동전도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 아무래도 집시 같은 부랑자가 많아 화장실 관리인을 두고 유료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5. 아이들 놀이 문화가 다르다.


벨기에에서는 아들의 놀이는 축구, 수영, 배드민턴, 자전거 타기였으나, 한국에서는 키즈카페, 코인 노래방,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

딸은 벨기에에서 공원 산책, 발레, 공주 옷 입기 등을 좋아했으나, 한국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친척, 학교 친구 방과 후에도 만나기 등을 선호한다.


그밖에 우리 나라 사람은 뉴스 특히 정치 기사에 관심이 높고 화끈하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특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가끔 혼자 소외되곤 한다.

솔직히 정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소외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 또한 시위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 광화문 앞에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 간 거의 전쟁 촉발의 현장 등은 유럽에서 보기 힘들어 나에게는 좀 낯선 풍경이었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고 갈등구조도 복합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도 그 속도와 발전에 맞춰 나도 빠르게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저 우리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조금씩이라도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시 난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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