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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Nov 17. 2019

프롤로그

  런던&아이

문득 한국의 청명한 초 가을날이 떠오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에 빨랫줄 줄줄이 올라앉아있던 고추잠자리 떼를 바라보며 살금살금 걸어가 잠자리의 날개를 살포시 잡고 웃던 나. 영국의 여름을 보낼 때면 어린 시절 초가을 날 깔깔깔 웃으며 뛰놀던 내가 생각난다.

영국의 여름은 옛날 한국의 초가을 같다. 미세먼지 한 톨 없이 맑은 하늘, 뭉게뭉게 줄줄이 이어지는 구름들 속에 밝게 빛나는 햇살을 맞으면 아이와 손을 잡고 걷기만 해도 날씨 하나에 가슴이 설렌다.


겨울 내내 이제 막 돌 된 딸과 집안에 갇혀 여기가 영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게 육아에만 빠져있었다. 하루하루 무얼 먹을지, 무얼 먹일 지만 고민하며, 어린 시절 해리포터를 보며 영국에, 런던에 가고 싶다던 꿈 많던 소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4년 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던 중 런던 여행을 하면서, 내셔널 갤러리와 영국 대영 박물관등 런던의 수많은 갤러리를 관람하면서 굉장히 흥분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다비드 상을 내 눈 앞에서 그것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세계 각국의 유물들을 일부러 찾아가도 보기 어려운 것들이 영국엔 다 있었다. 얼마나 많은 약탈을 한 거야?라는 슬쩍 영국에 대한 원망 아닌 비난을 늘어놓는 것도 잠시 뿐, 어쩜 이 유물들이, 이 문화들이 영국이기에 잘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책에서 봤던 것들, 수없이 암기하려 했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해 있는 곳. 내 아이에게는 책으로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게 하지 말아야지, 외워서 이해하는 문화가 아닌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여행의 끝자락엔 아이를 낳으면 영국에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와 런던의 갤러리를 매일매일 보러 올 수 있다면,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큰 꿈을 꾸며 이루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쩜,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돼서도 테이트 모던의 전시된 그림들과 조각들을 보면서 엄마로서가 아닌 여자로서 내가 행복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이 영국에서 시작됐다. 생각보다 녹록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와 함께 울고 웃던 지난날들을 기록하며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을 궁금해하는 엄마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아냈어요! 라는 작은 희망을 전해주기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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