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단 기분이 무엇인지 알게 되다
보라매 병원의 안경 낀 그 중년 의사는 이야기하는 내내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 앞에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눈썹을 찡그린 채 떨고 있는 엄마와, 체념한 듯 보이지만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의사가 하는 말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는 나.
의사는 내게 약을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지금처럼 쓰러질 것이라고. 그러면서 진료실 책상 위에 쏟아져 있던 수많은 알약들 중 푸른 알약 하나를 골라 내쪽으로 무심히 밀어냈다. 의사는 그 약이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약 중 하나라고 했다. 부작용으로 피부 발진과 우울증, 체중 감소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약의 색깔이 어쩐지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치 조합하다 만 페인트색 같았다. 그 탁한 푸른빛의 텁텁함이 내 혀 끝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 목이 막혀왔다.
엄마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느껴졌는데 왠지 엄마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처방받은 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엄마는 내게 이제 약을 먹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엄마의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하는 반복적인 읊조림은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엄마의 휴대폰 약정을 바꾸러 집 근처 휴대폰 대리점에 함께 방문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많이 습했다. 반팔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지만 온몸에서 끊임없이 땀이 삐져나왔다.
엄마가 대리점 직원과 이야기하는 동안 가게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오른 허벅지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반점 같은 게 보였다. 뭐지 싶어서 허벅지를 들어 확인해 보니 엉덩이 밑에서부터 무릎으로 이어지는 허벅지 전체에 흉측한 불그스름한 발진이 나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그건 마치 티브이 자료 사진에서나 본 나병 환자의 피부 같았다. 서둘러 왼쪽 허벅지를 확인해 보니 마찬가지였다. 커다랗고 오돌토돌한 붉은 두드러기가 허벅지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건 며칠 전 먹기 시작한 약의 부작용이었다.
서둘러 가방 안에 있던 카디건을 꺼내 허리에 둘렀다. 카디건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 양쪽 허벅지를 모두 확실하게 가렸다. 널뛰는 심장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침착해 보이려 노력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는데 곧 머릿속이 하나의 문장으로 뒤덮였다.
죽고 싶다
나는 그때까지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고 눈물 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내겐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가족들이 있었고, 천성이 꽤 긍정적이라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금방 털어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북적거리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나는 처절하게 비참했다. 그곳을 나선 뒤의 내 모습이 궁금하지 않았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앎으로 인한 감정들은 내가 또 다른 앎을 만나기 전까지 지속됐다.
뇌전증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 #2
Q: 환자의 발작 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A: 발작은 대부분 몇 분 안에 끝나므로 환자의 발작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환자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주변의 사물을 치우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손발을 주무른다거나, 꽉 잡는다거나, 입에 액체 등을 흘려보내는 것은 오히려 해로운 행동입니다. 환자의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거나, 의식의 회복 없이 발작이 지속될 때에만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출처: 서울아산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