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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아니면 살기? 살기!

뇌전증 환자로 '살기로' 결심하다

약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나서 다니는 병원을 바꿨다. 그리고 새로운 담당 의사선생님과 상의 끝에 새로운 약을 복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약, 담당의, 병원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까지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나는 깊은 좌절과 우울감, 분노로 지은 감옥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나야?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난거지?


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가 되곤 한다. 그렇게 선택받은 자는 위대한 일들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어둠의 존재를 무찌르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 그가 선택받은 데에는 다 대의를 위한, 마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왜 내가 선택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왜 내게,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내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받은 자가 됨으로써 세상의 그 어떠한 불의나 불공평도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거나 사람들의 생명이 안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세계에는 혼란, 파괴, 무질서만이 생겨났다. 매일 밤 나는 내가 왜 계속 살아가야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잠에 들었다. 그쯤 나는 종교적 믿음에 귀의하라는 엄마의 말에 악다구니를 쓰곤 했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신이 계시면 이런 일이 지금 내게 일어나겠냐고.


나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선택받은 자가 됨으로써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좌절과 우울을 반복하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네셨다. 타라 브렉의 "받아들임"이라는 책이었다. 내게 그 책을 권하는 엄마의 말투가 너무나도 조심스러워서 그 무렵 엄마에게 매일 패악질을 하던 나조차 엄마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는 말했다. 네가 한 번 꼭 읽어보면 좋겠다고. 


나는 그 책을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이딴 책 읽어서 뭐해.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었다. 그건 어떻게든 구원을 바라는 나의 본능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이딴 책 읽어봤자 달라지는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달라지는 게 제발, 제발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을 쏟으며 페이지를 넘겨갔고, 완독할 때 쯤에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뇌전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처음이었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인건.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지고 평온해짐을 느꼈다. 현실을 인정하고 마음에 가득 차있던 눈물을 훔치자 가족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가족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 집에서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나의 엄마. 

행여나 내가 또 구급차에 실려간 걸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만 와도 기절할 듯이 놀라는 엄마. 

내가 첫 점심 회식 때 발작을 한 뒤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내 점심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한 엄마. 

매일 나에 대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엄마.


나의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어두운 감정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뇌전증 환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뇌전증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 #3

Q: 뇌전증은 완치가 가능한가요?
A: 네, 가능합니다. 환자 10명 중 7-8명은 약만 잘 복용하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고, 이중 3명은 2-5년 뒤에 약을 끊어도 재발이 없어 약물치료만으로도 완치될 수 있습니다. 

(출처: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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