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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He)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나의 어깨를 단단하게 잡아주었을 때

나는 그와 결혼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겨울이 막 시작될 쯤이었다. 친구의 소개였다. 그는 부산 출신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충청권에서 오랜 생활을 했다고 했다. 말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게 애매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그는 나에게 말을 할 때도 어린아이 대하듯 말했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첫 만남을 마치고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본인 기차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옆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몇 번을 마다했지만 그의 고집은 셌다. 그는 내가 버스에 타자마자 후다닥 뒤돌아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는데, 그 뒷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그래서 말투가 이상한 그를 나는 한 번 더 만나보기로 했다.


한 번 더가 몇 번 더가 되었고, 자연스레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그가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주말에만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와의 데이트는 매번 즐겁고 새로웠다. 모든 만남이 그전보다 더 즐거웠고, 나는 그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고민은 깊어졌다. 매번 행복하게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내게 뇌전증이 있다는 걸 그에게 언제 이야기해야 할까?


그를 만나고 몇 달이 지나서였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도중 나는 발작을 경험했다. 새롭게 바꾼 약의 적정한 양을 찾지 못한 탓이었다. 그날 나는 일찍 조퇴를 했고, 그 길로 그가 일하고 있는 도시로 향했다. 두 가지 마음이었다. 그날에야말로 그에게 말해야겠다는 마음과, 그저 그를 보고 싶은 마음. 그의 얼굴을 보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마지막으로라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할 말이 있어, 라고 했고 그는 알겠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갑자기 일을 조퇴하고 직장까지 찾아온다니 많이 놀랐을 법하지만, 평소 웬만한 일에도 흔들림 없는 그는 내게 왜 그러느냐고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그가 있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의 사무실 앞에는 갈대가 무성한 호수가 있었는데, 나는 그 호수 앞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얼굴에 불어오는 초겨울 바람이 꽤 쌀쌀했다. 잔디인지 벌레인지 모를 것이 발목을 간질였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좀 흐르고 일을 마친 그가 사무실 건물에서 나왔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 사실 내게 뇌전증이 있어. 몇 년 전 대학원 다닐 때 생겼어. 원인은 몰라. 오빠가 나와 헤어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이해할게.


그는 나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머리끝이 바람에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호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그가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참 뒤에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러곤 내 손을 꼭 잡았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나만의 손난로라고 부르던 그의 손이 그날따라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그 벤치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연애를 이어가다 결혼했다. 한 번은 혼자 있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는 바람에 소위 눈탱이밤탱이가 된 적 있었다. 속상해하는 나를 그는 '눈티밤티'라 부르며 여행을 데리고 갔다. 그때 여행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최근에 다시 본 적이 있는데 나는 눈 주위에 퍼런 멍이 들고 흰자위에 실핏줄은 다 터져 빨갛게 물이 든 채로 그의 품에 안겨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멍과 상처로 울긋불긋했지만 그의 품 속에서 분명 빛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말투가 이상하다. 그는 여전히 추운 날 나의 손을 따뜻하게 덥혀주며, 내가 '눈티밤티'가 되더라도 웃을 수 있게 한다.


뇌전증을 얻고 지난 10년 동안 별의별 일을 겪으며 어느 정도 마음의 맷집을 쌓아온 나지만 여전히 '이것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이 있다. 그건 바로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 남편 앞에서만큼은 증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뇌전증에 관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QnA #5

Q: 뇌전증 환자 수는 어떻게 되나요?
A: 뇌전증 유병률은 인구 1,000명 당 4~10명으로 한국에는 약 36만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습니다. 

(출처: 뇌전증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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