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룬 Oct 28. 2021

공자의 제자

가르치고 배우는 일, 우리 함께

  주현이는 K고등학교 전교 1등이었다.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성실한 줄 알았지만 전교권인 줄은 몰랐다. 말 수가 적고, 좀처럼 서둘지 않았다.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는 쉬는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급할 게 없었달까. 안경 너머로 눈을 자주 맞추는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이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책상 가까이 앉아 필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현이는 한자 덕후였다. 틈만 나면 고개를 책상에 파묻고 펜을 꼭 쥐고는 무언가를 쓰고 있었는데, 그건 언제나 한자였다. 놀라운 것은 수업 내용을 한자로 필기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입모양으로 획순을 세고 붓으로 난을 치듯 삐침까지 살리면서 정성껏 하는 영어 수업의 한자 필기라니.

   처음 보는 한자가 수두룩해, 설명한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지 명심보감이라도 복습 중인지 감시 불가였다.


  "주현아 쌤 이름의 한자도 알아? 흔하지 않은데.”

  -  슥슥.

  "그 글자 좀 어려운데..."

  “그래도 간간이 나와요."

  "선비네 선비야. 너도 알지?"

  -  씨익.


  바쁘디 바쁜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입시생이기보다 멀리 떨어진 세계에서 온 공자의 제자 같은 가만한 수업 태도는 늘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낯을 가리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유난하지도 않았다. 서두르지 않지만 느리지 않아 제 할 일이 제시간에 맞춤 맞게 끝났다. 수업 중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이내 나를 보고 있었고. 주현이가 보이는 태도는 낯설었고, 흥미로웠다.


  "너무 궁금한데, 물어봐도 될까. 어쩌다 한자인지? "

  "음, 손으로 글씨를 쓰면 눈으로 읽을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져요. 쓸 때마다 새로운 글자 같기도 하고.”

   “이유가 너무 멋진데!”

 

   아름답다니! 이런 학생을, 이런 사람을 살면서 얼마나 만나게 될까. 오랫동안 그 답을 가져온 사람답게 머뭇거림은 없었다. 안경 너머의 눈이 웃고 있었다. 나는 그저 놀라 커진 눈을 했고 말이다.

  

   글자의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지만, 수업 중 필기로 실현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다. 열정과 애정이 얼마나 크면 그런 낭만적 공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까. 보아야 할 책과 적어야 할 필기가 잔뜩이었다. 급한 마음 없이 온전히 즐기며 하나씩 써 내려갈 수 있다니. 그 사람의 시간이 너무나 부러웠다.



   주현이네 팀, 문법 선생님이 문제를 일으켜 새 선생님으로 바뀌게 되었다. 학원에서는 새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 팀의 독해 수업 중이던 나에게 주현이의 의견을 물어줄 것을 요청해왔다. 이전의 문법 선생님의 문제가 학생들에 대한 고압적 태도에 있었고, 일이 커져서 학원 측은 선생님을 바꾸고도 안절부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질문을 학생에게 하는 건 정말 곤란한 일 아닌가. 모양도 빠지고. 하지만 월급 받는 자로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움직였다. 대신 슬며시 떠보지 않고 솔직히 묻기로 했다.


"주현아, 학원에서 새로 온 문법 선생님이 어떠신지 너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네."

"왜 저한테요?"

"주현이가 전교 1등이라서?!."

"아..."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아직 들을만해요."

...

"그런데, 저는 이전 선생님도 괜찮았어요. 목소리가 엄청 크셔서 한 번에 전달되더라고요."

"지금 선생님은 목소리가 작으셔?"

"아니요. 적당하세요.

 지금 선생님한테는... 뭘 배울지 아직 찾는 중이라서요."

"아직 배울 게 없어? 응?! 문법은?"

"문법은 수업 잘하고 있죠. 그것 말고도 뭐든 하나씩은 배울 게 있거든요."


   꼭 그렇게 한자로 가득 적힌 책들에나 나올법한 말이었다.

세상 누구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옛 말을, 고전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주현이. 그 말을 하는 태도는 장난기 없이 진지했고, 으스댐 없이 솔직했다. 그런 걸 어떻게 학생에게 묻냐고, 거절하던 내가 무색하리만큼 짧고도 담백한 대화였다.   

 

   보내고 돌아서니, 나에게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궁금했다. 마지막까지 묻지 못했지만.

   그보다 나에게 변화가 일었다. 그날 이후로 어떤 학생에게든 하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났다. 이전에는 가르치는 모든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선생이 되고 싶었고, 가르치는 일로 인정받고자 애를 썼다.  비장했기에 어깨가 무거웠고 힘도 많이 들어갔다.

   그런데 시작이 어렵던 대화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렀고, 난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전보다 수월해졌다.


   배움이 어울리는 나이의 아이들은 많은 선생님을 만난다.

  악명을 떨치는 사람도 만나고, 인생의 멘토도 만난다. 기념일이면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 특정 과목에 빠지게 만드는 전문가도 만난다. 세상엔 나은 길로 안내하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사교육 필드엔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들이 정말 많고, 그들을 선택할 수 있다. 돈이 쓰기 때문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선택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잘 가르친다, 못 가르친다 단숨에 평가하고, 별로다 괜찮다 어느 한쪽으로 결정짓는 일은 신속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발을 넣는 것 또한 선택이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단번에 답을 낼 수 없는 일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새 선생을 만나게 되면, 성적을 기준으로 혹은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서둘러 단정 짓기보다, 자신과 잘 맞을지를 가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질문과 답이 오고 갈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소통의 방식과 유형이 사람마다 다르니, 자신과 잘 맞을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한 시간 만에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 일단 무엇이든 배울 것을 찾아보려는 자세로 수업을 듣는 것이 선생님을 발견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배우려는 자세로 선생님을 겪으면, 생각지 못한 배움을 얻기도 하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기도 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냉정한 판단 자체를 목적 삼지 않아도, 본인에게 잘 맞는 선생님을 찾아낼 수 있다. 잘 맞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신뢰할만한 안내자가 곁에 있다면 아이들은 마음껏 배우고 즐길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은 근사하다.

이 일을 하며 내가 가르치는 것은 영어 문법일 수도, 긴 글을 읽는 방법일 수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하는 경험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부분을 알아채고, 채우는 것을 돕고,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완전과 완성을 향해 함께 달려주는 일이다. 여전히 부족한 한 사람이지만, 먼저 그 길을 경험하였기에 그래서 응원해도 되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자리에 선다.

  배우는 일은 한계가 없다. 역시나 근사하다. 과정을 함께 겪고 나면, 선생과 학생 둘은 언제나 나아진다.

   배움을 나누고 있다면 누구나 선생이다. 얼마든지 학생이고 싶을 따름이다.   


  주현이를 만나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얼굴을, 남들이 뭐라든 자신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학원의 교실에서. 하나씩은 배울 게 있다던 말은, 하나로 충분하다는 위로가 되었고. 내내 고마웠다.


   공자의 제자는 나의 학생이었고 선생이기도 했다. 그는 멋들어진 필체로 한자를 즐겨 쓰곤 했다.





이전 04화 필통 구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