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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Oct 14. 2021

만원의 행복

밤을 밝히고 공부하는 너희를 응원해


 
   시험기간이었다.

밤을 길게 늘이고, 새벽을 서둘러 깨워 책을 펴는 학생들이 도처에 살아 숨 쉬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고등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 의무인 자율 학습을 4-5교시하고, 학원으로 이동해 강의를 듣고, 마치고 나면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까지 조금 더 공부를 했다. 하긴 요즘의 고등학생들도 의무적인 자율학습이 아닐 뿐, 장소가 다를 뿐이겠지만.  

  그 시절의 학원은 열 두시는 물론 한 두시까지도 운영을 했다. 학생들은 이동이 귀찮거나, 시간을 아껴야 하는 날엔 학원에 남아 다음날이 되도록 자율적으로 학습을 하곤 했다. 눈부신 조명이 낮 인양 살아있는 곳이라면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해야 할 공부가 많이 남은 고3 반의 수업을 마친 날이었다. 학생들은 수업하던 교실에 좀 더 남아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 했다. 고3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붙이는 것조차 시간 낭비니, 부여잡은 공부 흐름을 지킬 수 있게 우리 모두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기로 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공부에 빠져든다. 묵직하게 가라앉는 공기를 따라 무거운 몸도 의자 깊숙이 내려앉는다. 창 밖의 가로등은 하나 둘 흐려지고 어둠은 더욱 짙어가는데, 머리 위의 조명은 돌아가는 시계도 본체만 체 아랑곳 않고 밝은 빛을 내리쬔다. 한 밤의 몽롱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또렷한 총기와 충돌하며 열기를 뿜어낸다. 교실엔 결계가 생겨난다.


    그러다 한쪽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했던 교실에 소리가 들리면 종소리 없는 쉬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렇게 공부가 잘 된 다던 교실에서 일부러 소란을 피우고 적막을 깨우는 시시한 말들과 재촉하는 시선들이 내게로 모인다. 석식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무렴 고등학생의 하루는 네 끼 식사로도 부족하다.

   그런데, 때마침 학원 건물 앞엔 학생 선생 할 것 없이 모두의 밤을 완벽하게 채워줄 떡볶이 포장마차가 문을 연 날이었다.

 

   지갑을 열어 만 원 한 장을 꺼냈다.

그때는 포장마차 떡튀순 회식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배달 최소 금액에도 못 미치는 만 원.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로 모이는 시선들을 달래자면 제법 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고3 에게는 쉬지 않고 후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니.

   선생님의 지갑 사정이야 어떻든 한 밤의 책상 앞을 지키는 아이들에겐 소소하고 달달한 즐거움이었다. 만 원이 지갑에서 나오는 걸 확인하면, 속삭이던 목소리들의 볼륨을 커지고,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도 켜고 다리도 쭈욱 늘린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신다. 야식이 있을, 쉬는 시간 시작이다.


   익숙하게 가위바위보, 마지막에 남은 두 사람이 포장마차로 달린다.

5명이니까 가볍게 5인분! 까만 비닐봉지 두 개를 나눠 들고 돌아와 책상 위에 던져놓고 꼬치로 빨간 떡을 찍어 들기까지 5분도 안 걸린다. 손 빠른 포장마차 사장님의 활약과 계단을 두세 칸씩 오르내리는 그들의 활약 덕분이다.


   다시 정적.

                                                                                                                                                 어묵과 파를 콕콕 찍어 입에 넣은 뒤 여유를 찾은 미소로 나와 눈을 맞춘다. 둘둘 나눠 앉은자리 사이로, 깍두기를 자처한 유진이는 양쪽 비닐을 넘나드는 중에도 공평하게 먹느라 가장 바쁘다. 빛보다 빠른 손들도 깍두기의 꼬치에는 망설임 없이 순서를 내어주는 친절을 보이고. 아이들의 휴식이다.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해 해가 지고 다음 날의 해가 나오겠다 싶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고3. 입시하는 학생들을 바라보자면 물론 안쓰럽게도 하다. 그런데 이 팍팍한 교육 현실을 원망하며 핏대부터 세우자 들면, 그 현실의 당사자들을 그저 처음부터 불행을 달리는 의문의 패배자로 정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뭘 좀 해보기도 전에 그런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 되는 기분은 별로일 것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노력한다.

   생애 한 번쯤 전교 1등을 목표 삼기도 하고, 지금보다 잘해서 부모와 선생님 친구들에게 인정도 받기를 원한다. 그저 학생인 동안에 열심히 하고, 친구가 하니까 하고, 어떤 과목은 영 보기 싫지만 다른 과목은 재밌기도 하고, 엄마가 속상해하니까 하고, 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맘 편하려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공부를 하고, 배움이 어울리는 시절을 살아간다.

   아이들이 가진 동기를 가려듣지 않으면, 동기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열심히 산다. 먹고 자고 웃고. 엉덩이가 납작해지도록 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걷고 뛰고 놀고 톡 하면서 공부를 하는 중에도 바쁘게 산다.  학생의 시절을 채워가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주어진 삶을 담담히 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일상이 의연한 것은 자신의 삶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안쓰러워하기보다 지갑을 열기로 했다.

퇴근이 늦어진다는 치명적 단점에도, 12시까지 1시까지 하면서 교실을 열어달라는 부탁은 반가웠다. 노트를 빼곡히 채우는 손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교재를 들고  와 소곤소곤 질문하고, 나 역시 소곤소곤 답을 돌려주고 나면 우리 사이가 오래 끓인 떡볶이 국물처럼 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덩달아 다음 날 수업 준비는 더 알차게 할 수 있었다.

   

  떡볶이는 빠르게 사라졌다.

앞 쪽 자리 앉은 학생은 배가 부른지 꼬치를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

 

 “야, 치우게 가위 바위 보 해. ”

 “십 분이나 지났어. 마지막까지 먹은 사람이 치워.”


 “그냥 둬, 내가 치울게.”


  깍두기가 마무리까지 끝낸다. 물을 마시고, 비닐을 풀었던 자리는 물티슈로 닦고 다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 떡볶이를 오물거리던 깍두기 유진이도, 먹는 건 좋지만 치우기는 귀찮던 얌체도 한 낮보다 밝은 입시생의 밤으로 돌아갔다.


   

   수험생에겐 무심한 체하며 좋아하는 야식을 건네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아이들의 몫이니까.   


   떡볶이가 있는 장면이니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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