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룬 Oct 07. 2021

맛밤 세 봉지

 독해 시간을 헤쳐나가는 방법

   수년 전 강의했던 영어 전문 학원의 토플반은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했다. 정해진 테스트를 통과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연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 2회, 하루에 70분 수업이 3교시까지였고, 내신은 각자 준비하고 준비 기간에도 토플 커리큘럼을 그대로 진행했다. 학원 측은 학생수와 상관없이 그 반의 존재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가장 넓고 밝고 쾌적한 교실을 배정해주었다.        

  2인용 대형 책상이 왼쪽 벽으로 2열, 오른쪽 벽으로는 1열 각각 네 줄씩 놓여있었다. 한 줄에 여섯 명이 앉을 수 있었지만, 수강 학생이 교실의 책상 수만큼 많은 반이 아니었기에 거리두기의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학생들은 혼자서 2인용 책상을 넓게 차지하고 앉았다. 교재가 여러 권이고, 노트와 프린트, 필통에 물통까지 살림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그래야 했다. 그중 머리를 기대기 편한 벽 쪽 자리가 가장 인기 있었는데, 당연히 일찍 오는 학생 차지였다.     


  오늘의 학생 하윤이는 유일한 5학년, 그 반에서 가장 어린 학생이었다. 언제나 왼쪽 두 번째 줄에 앉았는데, 먼저 도착한 학생들도 하윤이가 올 때까지 그 자리를 비워주었다. 하윤이는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날, 우리는 다다이즘을 다룬 독해 수업을 했다. 다다이즘은, 내게도 익숙한 주제가 아니었으므로, 전날 밤 미술사와 텍스트에 나온 뒤샹의 <샘>에 관련한 자료를 따로 공부해야 했다. 다다이즘뿐인가, 토플반의 독해 수업은 자료 조사로 수업 준비가 쉽지 않았다. 당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 평균 이상의 학습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것이었다. 이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해는 물론 문제를 풀기 위해 배경지식도 채워야 했다.


   독해 수업은 '예습'이 필요하다.

예습으로 지금까지 배운 문법과 그간 열심히 외운 단어들을 동원해 낯선 텍스트를 읽어내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얼마나 알고 모르는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가볍게 한 두 번 정도라도 수업 전에 미리 읽어 두어야 한다. 예습을 하고  강의를 들어야, 제대로 (혹은 잘못) 이해한 것을 배울 수 있다. 단어의 새로운 쓰임을 추가해 자신의 어휘장을 확장할 수도 있다. 가볍게라도 예습을 해두어야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텍스트에 그리고 수업에 접근할 수 있다. 게다가 또래들과 함께하는 수업 중에, 세상의 모든 낯선 주제를 토픽으로 다루는 독해 수업을 하며 무지를 들켜 부끄러워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  

   

   예습 없이 독해 수업을 들으면 해석하고 이해하며 수업을 따라갈 수는 있지만,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 그래서 더 위험한 '구멍 난 자신감'이 쌓인다.

   앞에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혹은 학생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해당 텍스트의 문장을 읽고 해석하며 적절하게 글의 흐름을 설명한다.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 문법 및 단어의 쓰임에 관한 포인트를 짚는다. 그 과정에서 이미 익숙해진 메타언어(관계대명사니 to부정사니 하는, 주어니 목적어니 하는, 인과니 목적이니 하는)가 반복 사용되고,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앞서 배운 내용이 다시 소환되기도 한다. 듣고 앉은 학생에게는, 어쩌면 새롭지 않다.

   익숙하게 들어본 듯하고, 오늘도 ‘들어보니’ 이미 다 아는 것 같다. 다 아는 것 같으니, 수업을 이해했다는 착각을 하고 만다. 착각한 만큼 학습 과정에 구멍이 생긴다.

   영어 공부를 제법 했다고 생각하는데 성적은 나오지 않는 이유다. 열기 가득한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내내 말한 선생님이다.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구멍 난 자신감에서 나오지 않는 성적을 원망하지 않으려면, 영어 독해 수업은 선생님의 설명을 귀로 듣기 전에 자신의 미숙한 답을 먼저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필수 예습 과제가 토플반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예습을 하려다 검색창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학생들의 키워드가 영민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재의 토픽이 어려웠다. 아이들 수준에서 제대로 이해하며 배우기란 벅찼다. 물론 대강 이해하고 기술과 요령으로 문제를 풀 수는 있었다. 시험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결하는 과정은 좀 더 지나고 해도 될 일이었다. 예습은 그만두고, 배경 지식 공부를 따로 한 뒤 복습을 더 하기로 했다.

 

   머리가 좋아도,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를 미리 많이 했다 해도, 열 살 열두 살 열여섯 살이 되어야 익는 공부머리가 있다. 지금은 절대 안 풀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렵지 않게 답을 적게 되는 문제들이 있고, 전에는 무슨 말인지 1도 모르겠더니 이제는 곁눈으로 보고도 이해되는 배움이 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머리도 준비되면, 어려워도 속으로 울먹이기보다 한 번 해볼까 싶은 용기가 솟는다. 지금 당장이 아닐 수 있고, 옆집 아이보다 늦어질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순간은 미리 준비한다고 일찍 맞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속도와 관심 수준에 들어맞는 공부와 만나야 했다.


   5학년을 포함했던 토플반은 그런 기다림을 고려하고 만든 반이 아니었다.

사실은 당장에 토플 점수가 필요한 학생들도 아니었지만, 마치 돌아오는 주말에 토플 시험을 볼 것처럼 어떻게든 수업을 해나갔다. 나의 설명이 길어졌고, 나만 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유명사들을 골라내 암호를 풀 듯 해석했고 학생들 대부분은 교실을 나가며 암호를 잊었다. 수업 시간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다행이었다.  


   다다이즘을 끝으로 그날의 수업이 끝났다.

배고프겠구나 하니, 눈이 마주친 하윤이가 가방을 휙 돌려 옆주머니에 꽂힌 맛밤 세 봉지를 보여주었다.


  “하윤이, 맛밤 좋아하는구나?”

  “중간에 배고플 때 먹으라고 엄마가 싸줬어요.”

  “세 개나?”

  “쉬는 시간마다 하나씩 먹으라고요.”

  "배불러서 밥 못 먹는 거 아니야?"

  "바로 수학가요. 저녁은 이따가 집에 가서 먹고요."

  “그런데, 왜 쉬는 시간에 안 먹었어? 얼른 먹어야겠네.”

  “하나씩 입에 넣고 먹었는데요. 빈 봉지예요!”

  “언제?”

  “다다이즘 그거 할 때?!”


   기억 속 하윤이는 웃고 있지만, 우리의 대화가 오늘의 기억에서처럼 명랑했는지는 모르겠다. 고단한 수업 준비,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부딪치던 마음, 자신의 부족함으로 오해하고 절망할까 봐 앞서던 걱정들. 여러 이유로 나에게 너무 버거운 수업이었다. 대화가 명랑하지 못했다면 목소리 작은 하윤이보다 오히려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업 끝에 주고받는 배고픔에 대한 안부가 우리를 안전하고 편안한 자리로 데려갔다. 다다이즘을 지우고 그날의 키워드로 등극한 하윤이의 맛밤 덕분에 더 가볍게. 수업 시간 내내 달아올랐던 얼굴들이 제 색을 찾고, 가방을 지고 일어서는 다른 학생들은 1층 편의점으로 갔다. 맛밤을 사 먹으러.



   밥은 제 때 먹고 다니며 공부하면 좋겠지만, 몰래 오물거리는 재미 덕분에 힘겨운 수업을 견딜 수 있다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영양 만점 맛밤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다이즘이 잊히는 그 순간에 든든한 배부름은 남았겠지.


   하윤이는 토플반의 커리큘럼을 끝까지 마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한참 후 국립현대미술관에 뒤샹의 <샘>이 왔다. 그 작품 앞에서 다다이즘의 심오한 사정보다 하윤이의 맛밤이 떠올랐으니...


   할 수 있는 공부의 수준과 양, 한계는 아이들마다 다르다. 공부 환경의 선택지도 다르고, 경쟁이 치열한 동네에서 강사일을 했지만 그 선택지를 다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경우의 수가 많고 다양하고 달라서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고민은 여전히 익숙한 경험들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가능성 위에 놓인 선택들이 아이들의 몫이기만을 바란다.

자신의 선택으로 어떤 공부를 시도했다면, 그래서 버티고 있다면 성과나 결과에 상관없이 일단 괜찮은 일이라고. 주어진 기회를 자신의 일상으로 옮기는 것을 용기라 말해주고, 힘겨운 수업을 헤쳐나가느라 티 나게 오물거릴지라도 눈 한 번 감아줄 수 있는 쌤으로 남아야 할 뿐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세상에 말이 안 되는 수업은 없다. 배우는 것과 남는 것이 좀 달라져도 괜찮고.


이전 01화 8시간 걸렸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