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기보다 넓어지길
중3이 된 연재가 1학기 기말고사를 혼자 준비하겠다고 했다.
학교 진도와 시험대비 진도를 나란히 하면 복습과 동시에 준비도 될 테니,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동안 내신 준비한 경험이 있어, 방법도 알고 영역별 공부량도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본인이 생각한 공부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그 과정이 어떻게 실현될지 궁금했다.
교과목으로서 영어는 같은 학년, 학급 내에서도 개인별 학습 수준 차이가 있는 과목이다. 그래서 내신 대비 기간에 진행하는 일률적인 진도나 반복 테스트가 일부 학생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다. 때문에 평균 교육과정보다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학생들은 잠시 등원을 멈추기도 한다. 학원은 보기 좋은 대비 교재를 만들고, 늦게까지 자습실을 열고, 수시로 보강을 하거나, 질문 해결 보조 선생님을 상시 배치한다. 시험기간에 생겨난 일시적 이탈이 여차 저차 퇴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휴원을 막고 성적 향상에 기여하고자 한다. 오히려 시험 기간이라면 학원이 더욱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학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같은 학원을 2년 이상 다닌 학생들에게 공부 독립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공부 독립이란, 지금까지 배운 방법과 요령을 자기만의 공부 방법으로 삼아 직접 해보는 걸 말한다. 만세를 부를 정도로 거창하기보다 가볍게 스스로의 학습에 적용해보는 과정 정도이다. 학원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교실의 아이들에게, 단지 성적을 올리는 것 말고도 배움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관념적인 대화일 것 같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비법 전수의 이야기도 들리곤 했다.
낯선 대화를 나누고는 시키는 대로 하다가도 문득 과정들을 자신의 학습에 비추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수업 시간은 물론 학원 생활 전반을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일정에 따라 계획표를 만드는 방법을 관찰하고, 지루한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성적을 올리자!' 보다는 '공부 독립'에 더 끌려하던 아이들을 보는 게 반가웠다.
하지만, "어디 한 번 혼자 해볼까?" 하는 다짐이 말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모두 다 잘못하여 시험을 망칠 가능성, 그로 인한 속상한 자기 마음, 보호자의 꾸지람을 임을 고스란히 감당하겠다는, 무거운 부담들을 감당하면서까지 시도하고 싶은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연재는 공부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본인이 뭔가를 해볼 수 있고, 그보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실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고심을 하는 듯싶더니, 마침내 연재는 다짐한 것이다.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상담은 어렵다. 이번엔,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냐는 걱정은 물론, 당신이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했다. 당장의 성적이 우선이기도 하니, 괜한 바람을 불어넣은 원망을 들을 수도 있었다. 이 경험의 가치는 나에게만 큰 의미 일지도 몰랐다. 보호자 아닌 선생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연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기특한 시도를 응원하는 솔직한 마음과 이 경험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 차라리 고등학교 가기 전에 시행착오를 겪는 게 낫지 않겠냐는 작전용 멘트까지 동원했다.
따로 한 번씩 학원으로 불러 준비 상태를 체크해주는 선에서 허락을 받았다. 학생이 학원에 들락이면 퇴원 가능성도 줄 테니 학원에서도 연재의 수강기간을 미뤄주었다. 그냥 달라던 시험 대비 자료를 받기 위해, 연재는 일주일에 한 번 씩 나왔다. 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진도를 확인받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험이 끝났다. 혼자 시험 대비를 해 본 소감을 물으니 한 달이 어떻게 지난지도 모르겠단다. 기억에 없는 시간들이라며. 시험의 결과, 어떤 과목은 망했고, 어떤 과목은 학원을 다닐 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 어떤 과목은 완전 잘 봤단다. 스터디 플래너가 알록달록 찬란했다.
다시 돌아온 연재는 혼자 하거나 학원에서 하게 될 시험 대비 방법의 선택지를 가진, 이 전과는 다른 학생이 되었다.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 경험으로 만든, 공부와 관련한 다양한 시도를 직접 해본 학생들은 오히려 수업 시간에 오롯이 집중한다.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공부 독립을 시작한다.
호의적인, 보호자의 질문과 관심이 필요하다.
공부를 많이 했는지 묻기보다,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묻고. 다 맞았는지가 아니라, 틀린 문제에 대해 질문해보았는지 물어야 한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가 하는 모호한 질문보다, 어떤 스타일의 설명이 이해가 잘 되었지 물으면 아이들이 교수 방법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학사 일정과 학습 진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물어야 아는지 같은 일에 지도가 필요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 책을 펴라고 말할 때까지는 무엇을 할지 어디를 배우는지 아무 생각도 없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습관적으로 하던 과제를 할 뿐, 복습의 효과나 그다음에 배울 것에 대해서 아예 생각할 '생각'도 하지 않는 학생도 적지 않다. 알아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진도가 나가니, 그저 그렇게 할 뿐이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이런 일관된 수동적 학습 태도가 성실하다는 칭찬에 가려지기도 한다. 오늘 무엇을 배우는지 교재는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움직여야 한다.
사교육이 가진 편리함에 붙들리지 말고 그 시간과 방법을 자신에게 이롭게 활용해야 한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공부를 '할까 말까'에서 시작된 고민이 '어떻게 해야 할까'로 번질 때쯤, 전반적인 공부의 감각이 생겨난다. 그런 감각들이 쌓이고 차이가 과목별 특징이나 공부 방법이 구별되면서, 아이들은 자기 공부를 시도하고 싶어 진다.
자신만의 공부 계획을 실천하고 나면 시험 점수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 중간에 막아서지 않으면 네버엔딩 모험담이다.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실감하고,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질문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말에 기대지 않으며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이해한다면, 이 학생은 공부 독립을 누리는 중이다. 점수화된 결과의 의미를 무시할 수 없지만, 스스로 과정과 결과를 돌아보는 아이들의 다음은 나아진다. 그다음의 다음은 다른 면에서 성장할 것이고. 또 그다음에는 새로운 시도가 있을 것이며, 더욱 강한 용기를 낼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스펙트럼은 점차 넓어질 것이다. 성적도 올라갈 테지만, 이쯤이면 성적은 상관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공부 독립은 목표 시점이 중요하지 않다. 그 시점에 이를 때까지 필요한 능력을 끌어 모으는 ‘과정’이 의미를 갖는다. 성취 경험은 물론 시행착오의 교훈들이 차곡차곡 채워질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 수 없다. 본인에게 적절하지 않은 방법들을 과감히 지워나가는 현명한 선택도 경험할 것이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아이 스스로가 주체가 될 것이다.
지금 무엇인가를 이루고 완성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해 하나씩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을 살고 있다.
우리 어른들도 실은 그러고 있고.
과정을 지켜봐 주는 것은 현재의 아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든든한 응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