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단
'성적은 비탈선 모양으로 오르지 않는다. 성적도 성장도 계단식으로 일어난다.'
교실 안의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나누어온 말이었다.
단어를 아무리 외워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던 학생에게, 문제를 충분히 푼 것 같아도 to 부정사를 극복하지 못하던 학생에게, 오르지 않는 성적의 원인을 찾다가 그마저 포기하고 싶다던 학생에게, 모두에게 약이 돼준 말이었다.
눈에 띄는 점프가 일어나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이내 다리가 아프고 힘들 것이다. 멈추지 않은 것이고, 나아가는 중이니 곧 계단의 끝에 도달할 것이며 다음으로 올라설 게 분명하다.
학생들의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 여러 번 묻는다. 올라설 수 있는 건지.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있는 건 아닌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유난히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일 같다. 깊지만 단단히 남은 흔적, 세 번의 계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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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깜빡이지 않을 때면 레이저가 발사될 것 같은 큰 눈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등부 강의를 처음 시작한 학원에서 고3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것도 남학생만으로 이루어진 반. 빈틈없는 통제와 철저한 관리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기대에 부응할 열정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큰 몸집을 가진 고3 남학생들은 강사의 첫인상에 좌우되지 않았다. 몇몇은 공부가 바빠 신경을 쓰지 않았고, 몇몇은 상전 지위를 누리느라 자신이 세상에 중심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을 예상하셔서일까. 첫 수업에 들어가기 전, 원장님은 성인의 팔 길이 정도로 자르고 다듬은 당구채를 건네셨다. 아끼던 물건을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 내게 주신다며.
그것은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학교에서 미친개라 불리던 선생이 휘두르던 것과 꼭 같았다. 당구채였구나, 그제야 알았다. 그가 보였던 무자비함과 무신경이 떠올랐고, 그 물건이 쿡쿡 찌르고 지나갔던 자리가 쑤셔왔다. 내 손에 그 물건이 들리다니, 당황스러웠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니 말을 하지 않고 학생을 때리는 것으로 교육을 대신하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지금 느껴지는 거리감이 오히려 너무 다행이지만, 교육감 권한으로 모든 직간접 체벌을 금지한 지 불과 십 년 정도 지났을 뿐이다.
칠판 아래 세워두고 잊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 반 몇몇의 보호자들에게 항의를 받기 시작했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시켜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인데,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 내가 출퇴근만 하고 있는 게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한 학생이 수업 분위기를 흔들었다. 단어 같은 건 외울 시간도 없고, 번거로워 외우기 싫은데, 과제를 안 한다면 때리기라도 할 셈이냐 대들었다.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 항의하던 보호자들 중 그 아이의 부모가 있었다.
다음 테스트부터 틀린 개수대로 맞기로 했다. 교실의 반쯤은 내 편을 들어준다고 어차피 상관없으니 그러자 했고, 나머지 반은 그 학생의 선동에 동참하며 그러겠다 했다. 빈정대던 그 학생은 기어이 다음 시간에도 과제를 하지 않고 왔다. 그날의 단어는 총 180개, 테스트는 그중 100개, 해당 학생의 시험지는 백지였다. 시험지를 내밀며 말했다. 틀린 개수만큼 때리라고.
정말 몸으로 때우려고 한 것인지, 시험지를 읽어 보기는 했는지 물었으나, 학생은 대답 대신 두툼하고 커다란 손바닥을 내밀었다.
당구채를 들었다. 끝으로 가도 힘이 빠지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백 대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매질이었다.
학생의 손바닥도 나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학생은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았지만,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당구채를 내려놓으며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수업을 이어갔다.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학생과의 기싸움이었다면, 나는 이미 진작에 진 것이다.
나는 그 학생이 공부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내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맞고 서서 버티는 학생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 알 수 없던 마음이 어떻게 번져나갈지가 너무나 두려웠다.
체벌은 가장 손쉽게 학생을 포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폭력성은 자신 안에서 전염된다. 말과 행동이, 생각까지도 낯설게 변해간다. 한두 대의 가벼운 터치라고 해도 누군가를 때릴 수 있다는, 물리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학생과 선생 사이의 위계를 착각하게 만든다. 가볍게는 필요하고, 한 두 번은 괜찮고,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데, 아니다, 어떤 이유로도 괜찮지 않은 일이다. 휘두르는 팔, 그 팔을 바라보는 눈, 그 모든 걸 관망하는 정신이 상처를 입는다. 체벌은 전적으로 유해하다.
아이들에게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맞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때리는 것도 안된다. 악용하는 사건들로 혼란한 뉴스가 빈번하고 선생님들이 곤란을 겪으시지만, 어쨌든 잘못을 할 수 있고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도 그게 무엇이든 맞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때려서는 절대로 공부하게 만들 수 없는 데다, 서로의 몸과 마음이 백 배는 더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응원하는 편을 택했다. 모든 기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나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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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영재는 중3, 남학생이었다.
그동안 공부는 않고 도망 다니다, 운동을 계속하려면 영어도 같이 해야 한다는 보호자의 조건 때문에 마지못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호자는 선수가 될 것도 아니면서 종일 운동만 하는 아이가 걱정이었다.
영재에게 운동은, 뛰며 노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왜 그렇게 까맣게 그을렸는지도 몰랐다. 흩날리는 머리칼이 귀찮아 항상 삭발이었다. 영어 수업은 그저 운동을 계속하기 위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새로 시작한 수업에 대한 적응을 위해 운동을 가지 않고 바로 왔다. 학령에 비해 기초실력이 부족했지만 부지런히 해보기로 했다.
적응기를 보내고, 원래의 스케줄로 돌아가 운동이 끝나자마자 영어 수업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영재는 땀에 흠뻑 젖었고, 절었고, 쾌적하지 않았다. 끈적한 손은 노트에 들러붙고, 입과 얼굴을 말랐다. 허기진 배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고, 교실의 공기는 가만했다. 노곤해진 눈은 바로 뜨고 있기 힘들었다.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그리고 냄새. 땀냄새와 성장기라면 피할 수 없는 냄새가 섞였다. 나는 후각에 예민하고 비위가 약한 편인데 그로 인한 불쾌를 감추지 못했다. 운동 직후에 수업은 집증 하기도 어려우니, 집에 들러 샤워도 깨끗하게 하고 땀도 식히고 배도 좀 채운 뒤 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지금의 나라면 창문을 열어두거나, 떨어져 설명하거나 혹은 농담 인양 가볍게 말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모른 척도 했을 것이다. 일단은 억지로라도 교실에 앉아있는 동안, 그 자체를 격려하는 일만 생각했을 것이다. 영어 공부도 할만하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나의 불쾌함 같은 건 어떻게든 감출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서툴렀다. 영어 문법을 폼나게 판서하는 것 말고도 학생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 많았는데, 몰랐다. ‘깨끗하게’라는 단어 말고, 차라리 ‘개운하게’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길지 않았던 영재와의 대화를 떠올리면 한마디 한마디에 후회가 든다. 딴에는 생각한다고 내뱉은 말들이지만, 실은 나를 위한 말이었고, 영재에겐 상처였을 것이다.
수업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바꾸었다. 그리고 바뀐 시간표의 첫날, 영재가 오지 않았다. 집으로 연락하니, 샤워하러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셨다. 시합에서 졌다고, 그래서인지 물소리만 30분이 넘게 난다고. 그날로 영재는 수업을 멈추었다.
물소리만 30분째라는 보호자의 말에, 후회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의 둔감함과 무례가 부끄러웠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가만히 그 물을 맞고 있는 영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물소리를 따라 흘려보내고 싶었던 것은 시합 결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안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영재들을 만났다. 성장의 증거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이들 말이다.
듣기 불편한 말이다 싶으면 삼켰다. 꼭 해야 할 말이라면 뱅뱅 돌리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솔직한 말은 차라리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화의 내용이 반갑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끝까지 들었다.
아이들의 발달과 변화를 '다 그렇다'거나, '다 지나간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적어도 나만은 그들의 현재를, 그들이 원하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재가 더 나은 선생님을 만나, 편하고 즐겁게 공부하며, 좋은 기억들을 덧입길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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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지영이는 예원중을 거쳐 서울 예고를 다니는 그림 전공 학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술을 전공은 예체능 분야에서 교과 성적 경쟁이 치열했다. 지영이는 그림 실력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교과 성적 때문에 번번이 나가야 할 자리며 기회를 놓치곤 했다.
학교에서 하루에 하나씩 7-8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 작품을 완성하고, 하교 후 화실로 가 하나의 작품을 더 그린 뒤, 늦은 밤 나와 책을 펼쳤다. 긴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한 호흡을 유지하는 훈련이 잘 되었던 덕분으로, 한 밤의 수업도 졸지 않고 잘 버텨냈다. 기특하고, 대단했다.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 있었다.
수업을 하다 잠깐씩 쉴 때면, 지영이는 침대 밑의 상자를 꺼내 어렸을 때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림에 쓰이는 신기한 재료도 구경시켜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들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지영이의 그림에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었다.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하나의 작품이 캔버스에 내려앉는 과정을 그린이에게 직접 듣는 경험은 근사했다. 전시 소식을 들으면 작품 옆에 붙일 작은 초콜릿이나 한송이 꽃을 포장해 살짝 다녀오기도 했다. 지영이의 재능과 그 재능을 피워나가는 모습에 나는 반했다.
앞에 둔 그림을 보며, ‘그림은 참 좋다, 그런데……’
지영이의 그림에는 ‘그런데’가 자꾸 따라붙었다. 최선의 결과이자 하나의 완성된 세계인 그림이, 영어 수학 같은 교과 성적 때문에 빛을 잃으니 안타까웠다. 그들의 조바심은 그 빛을 사그라들게 했다. 불공평한 압박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지우지 못하면서, 조금만 더 힘내자며 지영이의 등을 밀었다.
나의 열정도 넘쳤다. 묵묵히 애를 쓰는 지영이를 보면, 나의 부족함이 아이의 행보에 걸림이 되지 않아야 했다. 교재 준비도 수업 연구도 두 세배는 더 공을 들였다. 그 어느 때보다 숫자에 집착하며, 학생의 성적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둘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지만, 뛰어난 예술가의 교과 성적은 그 노력에 비례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은 그리는 일 만으로도 충실했고 충분했다. 교과니 성적이니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자체가 가혹한 요구였다.
고3이 되어 시간은 더욱 부족했고, 결국 그림에 더 집중하기로 하면서 우리 수업을 멈추기로 했다. 어떤 면으로는 포기였다. 힘들고 어려우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지만 지영이는 수능의 결과가 뻔할 텐데 속상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 지나고 이다음에 보자고.
수능도 지나고 입시의 과정도 모두 끝나도록 기다려 이듬해 봄에 연락을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지영이의 번호는 없는 번호가 되었고, 심지어 폰이 바뀌며 이전 번호들을 잃는 바람에 보호자의 전화번호도 사라져 버렸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지영이를 지켜보며,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를 그만큼 잘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최선과 좌절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므로 괜찮았다. 지영이의 시간 이후로 나는, 현재의 모습이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선생이 되기로 했다. 아이들이 가진 각자의 고유함을 발견해주고, 감탄하며 응원하는 사람. 괜히 그런다 싶어 머쓱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사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는 말과 태도는 어떤 시기의 아이들에겐 위로가 된다. 모두 그들에게 배웠는데, 아이들의 눈빛을 통해 격려로 되돌려 받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 사실을 더욱 굳게 믿는 사람이 되었다.
기억 속 얼굴은 흐려지지만 두툼한 손바닥, 까끌거리는 삭발 머리, 캔버스 앞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뒷모습은 한참 더 기억하게 될 장면이다. 후회하고 반성하며,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만들어준 그들의 흔적이니까. 씩씩하게 지나온 계단이니까.
비탈이 아닌 계단의 모양을 따른다는 성장 이야기를 아이들은 꽤 좋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진이 존재한다는 상상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할지언정,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멈추지 않던 아이들은 결국 제 길을 발견했다. 나아갔고. 다음 계단으로 올라섰다.
덕분에 나도 여전히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