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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Jan 09. 2024

#16. 마법 지팡이

염원과 신비를 직접 새겨 넣은.

★★★

바늘이 지나간 한 땀 한 땀!






   우리 집엔 세 개의 마법지팡이가 있다.

   지팡이 1호는 눈 내리는 뽀로로 마을, 다른 친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살던 통통이의 지팡이다. 이름도 귀여운 통통이는 이래 봬도 불을 뿜는 용으로 등에 붙은 손바닥만 한 날개로 잘도 날아다니며 어쩔 때는 하늘에 닿을 만큼 커지기도 한다. 신비의 용답게 마법을 부리는데 그때 끝에 별이 달린 마법 지팡이가 등장한다. 간혹 말을 잘 안 들어 마법이 거꾸로 걸리는 청개구리 짓도 하지만 친구들의 놀이터를 엄청 넓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에피소드를 시청한 날부터 아이는 막대기 모양의 물건이라면 젓가락 펜 화장품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연필 끝이 뭉개지고, 돌돌 색연필의 심은 날아가고, 아이라이너의 뚜껑은 간데없고, 짝 잃은 젓가락이 거실을 굴러다녔다.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틀림이 없어, 뽀로로랑 그렇게 어울리다가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진 아이는 급기야 밤이 와도 놀고 싶어 잠들려 하지 않았다. 

   당장 나에게 마법이 절실했다. 통통이의 마법만이 뽀로로의 친구를 재울 수 있을 테니. 

  서랍의 구석에서 남색과 노랑 펠트가 나왔다. 별 모양으로 잘라 베갯속에서 살짝 떼어낸 솜을 채우고 낚싯줄로 바느질을 했다. 한 땀을 뜨며 지팡이를 휘두르게 될 아이를 떠올리고, 한 땀을 나아가 마법이 스친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상상했다. 분명 청개구리 마법 지팡이가 될 테지만, 삐져나오는 솜을 꼭꼭 눌러 넣으며 땀을 이어가는 동안 급기야 내가 마법사를 키워내는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완성된 별을 굴러다니던 짝 잃은 젓가락에 끼우니 제법 그럴싸한 통통이의 마법 지팡이가 되었다. 대단한 마법을 부리겠다고 아이가 온몸을 휘두를 때면 별이 멀리 날아기도 했지만, 그래도 밤이 오면 지팡이도 쉬어야 하므로 제 때 잠을 잘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해리포터를 쌓아놓고 몇 번이고 읽고 겨울이면 귤을 까먹으며 영화 전편을 즐기게 되었다. 통통이의 마법은 '애들한테나 통하는 유치한 마법'이라 말하며, 실사의 마법 세계로 넘어와 입에 익지 않은 발음의 복잡한 주문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주문이 완성되어 갈수록 마법에 어울리는 '진짜 지팡이'가 필요해졌다. 아직 직구로도 마법 지팡이를 구할 수 없던 시절, 우리는 직접 지팡이 2호를 만들기로 했다.

   지팡이 좀 만들어 본 나는 신중하게 물감을 잘 먹을 마른 나무젓가락을 골랐다. 아이는 부드러운 사포 작업을 맡았다. 젯소를 바르고 말리기를 여러 번, 글루건을 돌려가며 멋을 내어 굳힌 뒤, 고르고 고른 신비한 색깔을 칠하고 말리기를 다시 여러 번. 물감이 갈라지지 않도록 잘 마른 것을 확인하고 덧칠하느라 방 한 편이 며칠 동안 작업 도구들 차지였다. 진정한 마법 지팡이인만큼 제작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했고, 어질러진 방도 참고 견뎌내는 것이 마땅했다. 

   아직도 작기만 한 아이의 손에 새 지팡이가 들렸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의 미세한 스냅까지 감지할 수 있는 염원과 신비를 가득 담은 진짜 지팡이였다.    


   3호는 이쪽 사람이 아니어도 한눈에 알아볼 마법 지팡이다.

   런던을 방문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덤블도어의 절대 지팡이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이미 지팡이 좀 휘둘러본 아이도 두 손으로 받아 든 위대한 지팡이. 하지만 훌쩍 자란  아이는 화면 속 세상에 머무르기보다 자기만의 세상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길어졌고, 마법의 도움을 받기보다 자신이 가진 힘을 시험해 보느라 바쁘고 분주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가장 강력하고 멋진 불멸의 지팡이는 주문을 몇 번 실행해보지도 못한 채 상자에 고이 담겨 책꽂이 맨 위에 놓였다. 어쩌다 한 번씩 고개를 들어 바라보거나, 상자를 열어 잠들어있는지 확인할 뿐이다. 


   세상엔 마법을 믿는 사람과 마법 같은 건 없다며 그들을 놀리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차이는 아이와 어른에 있지 않다. 마법은 마법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혹은 잊어버린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간혹 그 중간 어디에 믿지도 않으면서 알고 있는 척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느라 잊지 않고 있음을 꼭꼭 감추는 이들도 있지만.

   신비의 세계를 오래오래 잊지 않음으로, 가끔은 어린 시절 몸에 익힌 힘의 도움을 받아 모험도 하고 위기도 극복하며 더 신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마법 지팡이 하나쯤 품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지팡이 끝에서 새어 나오는 가능성과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꿋꿋한 용기는 모두에게 필요하니까. 


  아이를 위해 지팡이를 짓고 다듬으며, 마법사의 시절을 함께 살았다. 오랜 주문들을 되뇌며 직접 만들었던 지팡이들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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