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아님/습작글/ 글이 산으로 가서 조금은 엉망이라 느낌)
요즘 많은 사람들이 호텔바캉스-호캉스를 떠나는 것 같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기분을 한정된 자금으로 달랠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연휴에 강릉으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호텔 숙박으로 채워보았다. 어린이날을 맞아 '으른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급스럽고 쾌적한 공간에서 근사한 대접을 받으며, 짐짓 여유를 한껏 부려보는 거다. 글을 쓰다보니까, '으른놀이' 혹은 '공주님놀이'였던 것 같다. (우리 가문의 새 이름과 역사를 지어내기에는 상상력이 부족해서, 우리 외가 집안이 영일 정씨로 고려시대의 충신 정몽주의 집안인 걸 기억해내고 좋아하는 중이다. 나는 귀족집안 아가씨였던 것인데 알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속에서 가난한 웨이트리스이자 작가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중에, 돈을 모아 하룻밤을 호텔에 쉬러 온 것이다. 이런 설정이 나를 피식 웃게 한다) 공주님 혹은 아가씨인 나는 내가 가진 옷중에 제법 태가 나는 연하늘색의 옷을 갖춰입고, 가방중에 가장 귀여운 프라다 미니백을 매고 쉐라톤 팔라스 호텔로 갔다. 날씨가 좋았고, 흥이 났다. 먼지 한톨없는 로비에 도착하자 눈이 즐거웠다. 호화로운 곳에서 살짝 긴장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친구 하라와 나는 일년에 한번씩은 호캉스를 가는 것을 우리 우정의 연례행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몇년 전 부터 더위와 추위로 힘든 계절이면 호캉스를 찾았다. 기억해보자면, 겨울에는 장충동의 그랜드엠버서더 호텔을 찾았었고, 여름에는 용산 노보텔 호텔을 찾았다. 올해는 날씨가 좋은 오월에 호캉스를 찾았다. 마음도 넉넉한 어린이날을 낀 연휴였다. 호캉스 메이트인 하라와 몇년전까지는 모든 일정을 함께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나는 며칠전 북한산 등반으로 심신이 몹시 지친 상태였고, "꿀휴식"을 목적으로 호캉스를 찾았다. 수영복과 운동복을 챙겨오긴 했지만 말이다. 하라와 나는 정말 편한 친구사이라는 걸 요번 호캉스로 또 깨닫게 되었다. 서로 조금은 다른 성향을 지녔지만, 의식적인 노력으로 배려해야 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존중되는 관계다. "난 수영하고 피트니스 좀 할려고, 너는 어떻게 할래?" / "난 늘어지게 낮잠을 자려구" / "그래! 나 운동갔다올게!" 공간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친구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난 호사스러운 호텔 침구 속에서 달디 단 낮잠을 자게 된다.
좋은 공간에서 혼자 덩그라니 있으니, 행복한 안락함이 느껴졌다. 객실이 다소 작게 느껴지긴 했지만, 특히 원목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 목수분이 귀하게 만든 테이블같았다. 진한 나무색이 인상적이었다. 나무로 만들었는데, 디자인은 왠지 모르게 도시적이라는게 신기했다. 만약에 내가 수중에 돈이 조금더 많았더라면, 맨날 이런 호텔 객실에 틀어박혀 글을 썼을꺼다. 쾌적하고 고상한, 또 고요한 침묵이 감미롭게 떠도는 공간에서 말이다.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 이름모를 타인들이 정성들여 깨끗하게 관리해둔 침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청결한 화장실. 왠지, '이런 종류의 고독이라면 꽤 근사한걸?' 하고 느꼈다. 그리고 역시 인간은 빵만으로는 못살아 - 장미가 필요해 라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고속터미널 근처의 호텔이었으니, 꽃시장에서 꽃을 한아름 사다 객실 한켠에 놓아두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 글을 쓰는 지금 생각이 든다. 하룻밤 낭만이겠으나, 그런 마음의 양식들이 나를 살찌운다. 나는 혼자 사각사각거리는 호텔 객실의 이불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혼자만의 여유로운 그 순간에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다, 글을 쓰며 다시 떠오르는 촉감과 기분들이. 호캉스는 어른의 호사라는 생각이 든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의 호사.
내가 호텔에서 좋아하는 서비스를 두개 들자면, 조식과 바(Bar)이다. 호텔 조식은, 연어킬러인 내가 연어를 옴팡지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언제든지 사랑할 수 있을만한 서비스다. 정갈한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연어에 여러가지 소스를 끼얹어 상콤하게 섭취하는 데에서 나는 정말 풍요로운 행복감을 맛본다. 갓 구운 크로와상과 후추를 살짝 뿌린 감자스프는 또 어떻고? 바삭하게 구운 짭짤한 베이컨과 부드러운 노오란 에그스크럼블에, 발음해보면 즐거운 이국적인 이름의 햄들. 그리고 내가 가진 서양 전반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팬케이크가 있었다! 팬케이크 위에 하얀 생크림을 얹고 메이플 시럽을 예쁘게 뿌렸다. 그리고 후르츠링은 알록달록한 색감이 예뻐서, 또 약간 미각적 사대주의자가 된 기분으로 먹어주었다. 오렌지주스와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빠질 수 없었다. 이렇게 맛있게 하루를 열 수 있는 서비스가 조식이라면, 밤의 운치를 더해주는 것은 바이다. 정말이지 '으른놀이'를 할만한 곳이 바가 아닐까? 어둑어둑한 밤같은 곳에 조용히 피어오르는 초들, 아름다운 색깔의 술들, 나른하게 퍼지는 재즈음악. 나는 때로 격식을 갖춰 옷입기를 좋아하고... 쓴 술은 어른들이 마실 수 있는 것이니까. 오늘을 위해 오렌지 칵테일 드레스를 준비해 갔으나, 아쉽게도 바가 영업을 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상 속 특별함에 대해 쓰다 보니, 기분이 좋다. 투박한 내 글솜씨로는 그 호사를 다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사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계층문제나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충돌 등의 의제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었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쉬었다. 내가 조심스레 생각한 것은 "돈이 최고야" 가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장미 한송이를 가질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작고 하찮은 나의 바람이었다. '공주님 놀이'다 '아가씨 놀이'다 우스개소리로 썼지만, 절반은 진심이다. 우선 내가 먼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호캉스 예찬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했는데, 어딘가 산으로 글이 노를 젓고 있다. 우리엄마는 나를 공주님으로 키웠고, 언제나 밥도 천천히 우아하게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우리 할머니는 한 접시에 반찬을 너무 넘치게 담으면 안된다고 가르치셨고, 우리 외할머니는 아프다는 말씀을 안하시고 조용히 인내하시며 투병을 하시다 임종하셨다. 그런 가르침들을 곱씹는다. 내가 귀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가끔 내가 귀하다는 기분을 여러가지 루틴으로 느끼는 일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