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제 Jun 02. 2021

할머니와 호동이와 튼튼이

병아리만 한 책임감과 그것을 다부지게 마감하던 손에 관하여

  

내가 알량한 책임감으로 무지하게 벌인 일을 할머니의 굵은 손이 다부지게 마감한 일이 얼마나 많던가. 할머니의 이유 있는 반대를 잔소리로 치부했던 숱한 날, 끝내는 할머니의 책임감 안에 숨어서 모른 척하곤 했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병아리 두 마리를 덜컥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그날따라 학교 후문이 애들로 바글바글했고 빤쮸문방구의 빤쮸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애들은 잘 놀리고 잘 놀림당하는 빤쮸아저씨를 만만하게 생각하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큰 빤쮸아저씨를 유심히 바라보다 이유가 뭔지 알아차렸다. 아저씨의 감싸 쥔 손안에서 눈부셔하던 자그마한 병아리 두 마리. 웅성거림의 이유를 몰라 막연히 두려워하다 안심했던 그때, 서서히 주변 소리들이 들려왔다.


 학교 밖에서 귀염 깨나 받고 지낼 저학년 아이들이 병아리를 귀여워하는 귀여운 소리. 조금 큰 아이들이 집에 병아리를 데려가도 될지 모르겠다며 친구들에게 은근한 확신을 구하는 소리. 그리고 쭈뼛쭈뼛 엄마에게 전화하는 소리. 집에 가져가면 혼날 것이 분명해 애처롭게 구경만 하며 끙끙 앓는 소리. 그리고 각자의 사정은 알아서 생각해, 난 여기서 이렇게 귀여울 테니까! 하는 듯한 병아리들의 삐약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5학년이던 나는 같이 하교하던 친구 두 명이 손쉽게 병아리를 사는 것을 보고 잠깐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만 강아지 털 알레르기 있댔는데, 아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있고 아니 털이란 털 알레르기는 다 있다고 했는데.(다 뻥이었다.) 병아리를 사가는 아이들, 시무룩하게 돌아서는 아이들이 명확하게 갈리고 어느새 박스 안엔 병아리가 몇 마리 남아있지 않았다. 보다 못한 빤쮸아저씨가 이미 병아리 이름까지 짓고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만 하던 내게 덜컥 병아리 한 마리를 안겨주었다.


 내 손바닥과 가슴팍에 의지해 열심히 작은 몸을 부풀리던, 처음으로 내 것이 될 수도 있는 살아있는 생명. 그 보송보송한 연노랑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쓸어내려 보았다. 쓸어내리면 쓸어내리는 대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던 그 작은 몸이 너무 소중해 나는 일탈을 결심했다. 빤쮸아저씨는 내 결정을 크게 반기며 작은 박스에 병아리 한 마리를 덤으로 더 넣어주었다. 그날 각자의 방식으로 병아리 두 마리씩을 안은 우리들은 하굣길을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건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호동이와 튼튼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좀 긴장한 채로 집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미끄덩한 책상 유리 위에서도 씩씩하게 걷는 호동이와 튼튼이가 닭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장 봐온 것들을 꺼내놓느라 호동이와 튼튼이가 삐약대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들키는 것보다 자백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재빨리 선수를 쳤다. 학교 후문에서 병아리를 팔길래 사 왔다고, 한 마리 사려고 했는데 빤쮸아저씨가 한 마리 더 줘서 500원에 두 마리를 샀고 이름은 호동이와 튼튼이라고, 그게 뭐냐면 강호동처럼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이라고, 할머니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따따따 말해버렸다.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차라리 할머니가 욕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무서웠다. 침묵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잔뜩 조였던 마음이 자연히 풀어졌다. 키워도 되는 건가? 할머니도 병아리를 좋아하나? 어쨌든 긍정적인 쪽으로 할머니의 침묵을 해석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방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것들을  어디서 키울 테냐고, 시끄러워서 밤엔 어떻게 잠을 자려냐고, 갖다 버리거나 어디 줘버리라고 따따따 몰아붙였다. 할머니는 괜찮았던  아니라  말을 장전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호동이와 튼튼이가 구석으로 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둘레둘레 막아가며, 할머니의 말까지 열심히 막았다. 내가 - 안다고, 상자에다가 먹이랑  넣어서 저쪽 방에 두고 밤에는   닫으면 된다고. 내가 - 하겠다고. 할머니는 나와 말이  통하겠다 싶었는지  알아서 해라  신경   테니까. 하곤 돌아서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 아싸. 나는 그 말을 허락으로 알아들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와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에게 역시나 따따따 설명했다. 할머니가 나 알아서 하래!라는 내 말에 엄마와 언니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해가 저물기 전에 엄마가 조용히 벽이 높은 상자를 주워와서 병아리 집을 만들어 주었다. 할머니 말대로 호동이와 튼튼이가 밤새 삐약 거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병아리가 있는 방문을 더 꼭 닫는 것뿐이었다. 가족들이 깰까 봐 삐약 소리에 온 신경을 쏟다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온 식구가 외출한 가운데, 집에 할머니와 병아리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가 병아리들을 갖다 버릴까 봐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까지 날 듯 뛰어왔다. 집에 왔을 때 먼저 방을 쓸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고, 뒤이어 호동이와 튼튼이의 삐약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병아리가 지겹게 울어 싼다고 역정을 냈다. 비죽비죽 웃음이 새 나왔다. 호동이와 튼튼이를 상자에서 꺼내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날 밤도 호동이와 튼튼이는 여지없이 삐약 거렸다. 그러나 전 날과 달리 문을 닫으니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나는 안심하며 깊은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 좋은 예감이 엄습했다. 호동이와 튼튼이가 있는 방문을 열어보기가 겁이 났다. 엄마를 불렀다. 삐약 소리가 안 나서 무섭다고. 엄마는 대신 방 문을 열어주었다. 병아리 두 마리가 모두 죽어있었다. 맨손으로 건드릴 수도 없어 나무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니 딱딱한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밀어본 작은 몸뚱이는 탄력이나 유연함이라곤 전혀 없이 빳빳하게 슥 밀려났다.


 엄마, 어떻게 해 무서워. 창백한 얼굴로 엄마에게 난생처음 목격한 죽음을 처리하도록 미뤘으나, 곁에서 보다 못한 할머니가 먼저 까만 비닐봉지를 가져오더니 턱. 턱. 병아리 두 마리를 집어 담았다. 할머니는 뒤이어 내내 역정을 내며 병아리 박스를 비워냈고, 다시는 이런 것 사 올 생각하지 말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나는 찍소리 못하고 할머니가 부산히 비워낸 병아리 박스를 손쉽게 접어 버리기나 했다. 그것이 500원에 두 생명을 사 온 나의 알량한 책임감이었다.


 할머니는 호동이와 튼튼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짐작했을 것이다. 따따따 몰아붙이기 전의 침묵은 곧 이렇게 돼버릴 앞날을 짐작해보고 체념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침 온기를 잃은 병아리 두 마리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어리석게도 누가 호동이고 튼튼인지 제대로 구분조차 하지 못했었다. 알량한 책임감에서 피어난 그리움도 그리 깊지는 않아서 호동이와 튼튼이를 금방 잊어버렸다. 이후에 내게 호동이와 튼튼이란 음악 시간에 리코더로 날아라 병아리를 연주할 때에 회고할 잠깐의 경험 그뿐이었다.


 그날 할머니는 그 작은 생명을 처리하는 책임감을 감당하려 아침부터 버거운 일을 해야 했었다. 내가 알량한 책임감으로 무지하게 벌인 일을 할머니의 굵은 손이 다부지게 마감한 일이 얼마나 많던가. 할머니의 이유 있는 반대를 잔소리로 치부했던 숱한 날, 끝내는 할머니의 책임감 안에 숨어서 모른 척하곤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할머니의 불변한 책임감 안에 누워 맘 편히 발을 까딱이던 나를 필요 이상으로 모질게 대한 적 없었다. 수습하기 어렵게 헤쳐놓은 주인 없는 일들엔 더더욱 정성을 들여 말끔하고 단정하게 수습해놓았다. 그로 인해 시간을 두고 회상하는 내 어린 날은 자주 부끄러운 각성의 기록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옷가지나 쓰레기 같은 것이 아니라 호동이와 튼튼이에 관해서라면. 고작 이틀 살자고 태어나버린 그 안타까운 작은 숨들에 관해서라면. 그 둘을 마지막 거두어 묻은 손이 할머니의 굵은 손이었던 것은 차라리 다행인 일이라고, 그것은 호동이와 튼튼이가 태어나 겪은 일 중 가장 덜 수모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몸을 거둔 손이 철없이 예뻐할 줄 밖에 모르는 어린 손이 아니라서. 생명을 그 무게만큼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짧동한 손이 아니라서.


 이제 제법 영근 손으로 할머니가 하던 일을 조금씩 흉내 내는 지금, 할머니에게 빚진 숱한 날의 책임감을 감당할 기회가 올 때에 최대한 기꺼워하며 나설 수 있기를.



.


이전 04화 이 병신, 못 커도 이르케 못 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