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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제 Aug 06. 2020

인생은 할머니처럼

너를 너답게 하는 건 예쁘고 하찮은 말이 아니야


'어이구 이쁘다'


 내 기억이 시작되는 곳엔 젊은 할머니의 음성이 있다.


 아침마다 딩동댕 유치원의 뚝딱이를 뒤로 하고 진짜 유치원에 등원해야 하는 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었던 어느 날, 칠흑 같던 한밤 중 저릿한 아랫도리에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 할머니를 흔들어 깨운다.


"할머니, 나 오줌 마려"


 왠지 혼이 날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그러냐며 저어기 요강에 가서 누고 오라고 말한다. 오줌을 누는 동안 할머니가 다시 잠에 들까 무서워서 아랫배에 힘을 주며 급하게 오줌을 흘려보냈다. 한 번 시작된 오줌 줄기는 끊기질 않지, 사방이 어두워 무섭기는 하지, 초조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자지 말라고 외치며 요강을 부여잡고 있는데, 그때였다.


"어이구 이쁘다" 


 할머니는 내가 볼 수 있도록 몸을 돌려 눕고선 그렇게 말했다. 가뜩이나 비몽사몽 한 중에 할머니의 낯선 칭찬은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내복을 입어야 했던 초가을 밤의 스산한 공기와, 그 밤의 정적을 깨던 졸졸 물소리와, 요강과 닿아 차갑던 엉덩이의 감촉.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토록 생생히 기억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의 칭찬이었다.


 내게 할머니의 칭찬은 그토록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설령 그 날 처음 소변을 가리게 된 대신 할머니 입에 과자 하나를 넣어줬다가, 또는 익살맞게 TV 속 개그맨을 따라 했다가, 그것도 아니면 예사 그리던 그림을 그려 놓곤 사실 할머니를 그린 것이라고 아양을 떨다가. 무엇이 됐건 관계없이 할머니가 '어이구 이쁘다'라고 해주었다면 단언컨대 그 날은 통째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이 글의 도입부 역시 그 날의 이야기로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엔 부모님의 맞벌이로,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아빠의 때 이른 죽음으로 평생을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커가는 동안 할머니들이 손녀 손자를 공주님, 왕자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는 것을 된다고 해주는 존재가 할머니라니! 책이나 드라마에서 손주더러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할머니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난,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것이 허구가 아님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평정한 우리 가족은 낯 뜨거운 소리라면 재채기를 하듯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는 '사랑'이란 말을 쓰기가 어려워 오른쪽 끄트머리에 겨우 '알럽유' 'I♡U' '알라뿅' 등을 암호 적듯 적어내곤 했다. 그렇게 자란 할머니의 손녀는 스물한 살, 제대로 된 첫 연애를 하며 난생처음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껏 무용한 단어였던 그 말이 내게 와 꽂히는 순간, 나는 아득해졌다. '고마워'라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표현이란, 그저 멀리 있는 반찬 그릇이나 슬쩍 밀어주면 그만인 것이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통성명을 하는 자리가 늘어나며 나는 물들듯 칭찬과 표현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갔다. 듣기 좋은 말은 정말로 고래도 춤추게 만들었고, 텍스트와 귀여운 이모티콘들로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인기를 얻었다. 첫 직장에서는 그간 숙련한 말로써 줄줄 흐르는 학생 티를 가려보려고 애를 썼다. 괜찮기도, 후회스럽기도 한 날들이 빠르게 지나는 가운데 첫 회식 날짜가 정해졌다. 루프탑 바에서 보는 팀원분들은 정말로 어른 같았고, 어른의 대화에 끼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어려웠다. 온통 말에 둘러싸여 입술만 뻐끔대던 내가. 마음먹고 말할 기회가 주어져도 신입 사원스러운 말만 반복하는 내가.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음에도 배를 잡고 웃던 내가. 미치도록 수치스러워 돌아오는 지하철 내내 괴로워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녹초가 된 채로 집에 도착했다. 조용히 문잡이를 돌려 열고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손에 힘을 주어 문을 닫는데, 냉장고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미쳤다고 지금 들어오냐'는 할머니 목소리가 대번에 눈 앞에 다가온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아 대꾸도 않고 오로지 빨리 눕고 싶단 생각만이 간절하다. 겨우 씻고 이불속에 발을 디미는데 훈훈한 열이 발을 감쌌다. 이불 가운데 정갈하게 뉘인 전기장판은 정확히 '취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할머니였다. 머릿속에서 오늘 처절하게 실패한 '말'의 현장이 자동 재생되려던 찰나, 할머니가 데워놓은 이불속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간단해졌다. 

 

 할머니처럼 살아야겠다. 


 할머니는 무엇이든 입이 아닌 몸을 움직여했다. 여자만 사는 우리 집에 누가 전등이라도 고쳐주러 오는 날에 할머니는 2시간 전부터 부산히 움직여 과일을 사놓고 얼음을 얼렸다. 우리 가족 누구라도 아픈 기색을 보이면 할머니는 성경책만 한 마실 가방과 챙 있는 모자를 단단히 장착하고는 병원에 가자고 소리를 쳤다. 수능 땐 미신이고 뭐고 원기회복에 가장 좋다는 미역국을 도시락 한 가득 담아 주셨으며, 연일 야근에 뻗어 주말 오후 2시에 일어났을 때 가스레인지 위엔 할머니가 끓여놓은 닭죽이 있었다. 할머니는 미루는 법이 없고, 부족장처럼 두 팔,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가며 가족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냈다. 그것이 할머니의 삶이었고 할머니 자체였다.


 할머니가 매일매일 몸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삶은 하루하루 사랑을 살아내는 경험치가 쌓이는 과정이라 믿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는 찐으로. 인생 경험치 만렙인 사람. 말이면 뭐든 편히 보여줄 수 있다고 믿던 내게,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평생에 걸쳐 부지런히 보여준 사람. 할머니는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할 법한 흔한 칭찬도 잘 하지 않지만, 그런 할머니 손에 자란 손녀는 할머니와 같은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너를 너답게 하는 것은 예쁘고 하찮은 말이 아니라고. 매일 삶으로 보여주는 할머니가 있는데, 어찌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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