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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Jan 11. 2022

어둠이 고요한 이유

앞글인 "스타 샤이어" 글의 다른 버전이에요.

 어둠은 언제부터 고요했을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수천억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겠지. 내 마음 한 가운데에는 어둠이 고여있다. 고요한 어둠은 내가 흔들릴때면 쏟아질 듯이 휘청거리고 내가 멈춰서면 굳어버린 것처럼 가만히 앉는다. 내 어둠은 흐르는 존재이다. 내 속에있지만 나도 멀리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 어둠의 공간은 무한하다.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용솟음칠지 모르고 어떤 것이 만들어질지 나는 모른다. 그것이 어둠의 고요함 아닐까. 무언가, 어둠을 태워버릴 듯이 밝은 무언가의 등장을 모두들 소리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아침 종은 정확하게 세 음절이다. 나는 기억한다. 한 걸음씩 내딛는것처럼 첫걸음에는 꿈속에서, 둘째 걸음에는 눈을 감은채로, 셋째 걸음에는 눈을 뜬채로 세 음절을 듣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이 밝으면 커튼 사이로는 푸른 빛깔이 축 쳐진 모양으로 걸터앉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을 하늘 같다. 가지에 힘없이 널려 휘청거리는 가을하늘. 요 근래, 하늘이 그모양이다. 어쩌면 내 마음이 그모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가지는 분명하다. 내 삶은 더이상 말이 없다.

 하루는 온종일 지하철처럼 정지한 듯이 흘러간다. 내가 들어간 방들은 모두 공기로만 가득 찼지만 그 바깥의 하루라는 시간은 바삐 달리기만 할 뿐이다. 한숨이 날아가더니 겨울 추위 위로 하얗게 길을 튼다.

 그렇게 밤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서 얼굴을 찌푸린다. 아무 생각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잘 안다. 눈물은 내 마음 위의 하얀 벽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도약할때마다 높이의 여지를 주지 않는 낮은 하얀 벽이 나를 막아 세운다. 그리고 내가 조그만 도약을 할때마다 까만 연필로 내 단점을 끄적이기 시작한다. 지우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 끼릭끼릭 거리는 소리가 하얀 벽 아래를 안개처럼 메우니까. 나는 하얗게, 투명하게 공기 중으로 스며들어갔다. 낮이면 햇살이 내 위를 밟고 지나고 사람들이 내 어깨를 스치지만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못한다. 오늘도 어제도 단어를 외웠다. 끊임없이 기어오르는 그 글씨들이 나를 타고 올라 집어삼키려고 했다. 하지만 집어 삼키는 일은 나의 몫이다. 아마도 내가 내 자신을 잡았던 손을 놓치는 순간 모든 것들이 추락하는가 보다.

 그래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다. 눈이 오는 날이나 집에 들리는 날에는 잠깐 햇볕이 들었다. 그런 순간에는 어둠을 까맣게 잊게 된다.


 "나는 도대체 왜 힘든거야?" 어느 밤에 내게 물었다. 새벽이었는데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다. 그날밤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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