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기(14)_갑자기 달라지기

'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by 최순돌

2025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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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앞두고 좀 무리를 했다. 방학 전까지 꽉꽉 채워 수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요즘은 거의 사라진 방학 숙제를 냈다. 방학 숙제는 두 가지였다.


1. '심스페이스'라는 어플을 사용하여 날마다 마음 일기 쓰기

2. 주도적으로 책을 한 권 골라 읽고, 독후감상문 한 편 쓰기


'심스페이스'를 무료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을 등록하여 아이디와 비번을 배부해야 했으며, 독후 감상문을 한 편이라도 쓰도록 하기 위해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두라고 감상문 양식을 한 장씩 인쇄하여 나누어 주어야 했다. 나름으로 방학 직전까지 고생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어우~"


였다. 반응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숨기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듯한 표현을 대놓고 하는 것을 들으니, 그들을 방학 때까지 괴롭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좀 허탈해졌다. 하지만 어설프게 타협하는 것이 제일 안 좋은 교육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심지어는 방학을 위한 국어 학습 단톡방까지 만들어서 날마다 의욕을 북돋았다. 그리고 결과는 위에서 보듯, 아예 단톡의 내용을 읽지 않는 학생도 있고 그중 아주 소수는 그나마 반응이라도 보여주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쨌든 단 한 명 정도는 반드시 이 여름에 갑자기 달라지게 될 것을.


선생님이 읽고 있는 책을 자랑하며 독서기록 열심히 하라고 하고, 마음 일기도 빼먹지 말라고 카톡으로 다정하게 괴롭힌 다음날 아침. 방학이 아니면 듣지 못했을 오전 9시 라디오에 '원슈타인'이 게스트로 나왔다. 평소 좋아하는 뮤지션이었을뿐더러, 마침 평소에 궁금하기도 했던 '원슈타인'이라는 이름의 뜻을 본인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귀를 쫑긋하게 되었다.


"중학생 때 공부도 안 했고, 책을 읽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억지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책이 프랑켄슈타인이었어요. 엄청났죠. 그날부터 제 이름 정지원의 '원'과 프랑켄슈타인의 '슈타인'을 따서 '원슈타인'이 되기로 했어요."


내가 사실 전날에 카톡으로 방학숙제 하라고 괴롭히면서 보낸 문구가 이랬다.


억지로 하는 것들도 언젠가 힘이 됩니다^^ '억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고집이 있어야 잘 안 될 일도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긍정적인 고집을 응원할게요!


억지로라도 하면 피와 살이 된다는 이야기를 나름 역시 다정하게 괴롭히느라고 한 이야기인데, '원슈타인'이 나의 이야기를 다음날 바로 뒷받침하는 것만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억지적이 교육활동에 걱정되는 지점은 있다. 김윤경 선생님의 책에는 '사회정서교육'의 내용에 대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친구 사랑 엽서 쓰기, 다도 배우기, 세족식 같은 생색내기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행사로 어떤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것은 교사가 더 잘 안다. 단지 그 활동으로 아이들이 변화하는 어떤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을 뿐이다. 어떤 새로운 제안을 하더라도 상명하달식의 교육 기획은 교사가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여 주는 종이 더미만 만들어 낸다.'


'생색'은 '체면' 쪽의 뜻도 있지만, '활기 있는 기색'의 측면의 뜻도 있다. 생색이라도 내야 할 때, 그중에 갑자기 변화하는 학생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다만 상명하달식이나 피로한 문서중심주의는 분명히 경계를 해야겠지. 그래도 막연한 기대가 막연하기는 하지만 교사에게는 또 그 막연함이야말로 팍팍한 교육 현장에서 일종의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임을, 그리고 그 꿈이 정말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이 자리를 빌려, '원슈타인'에게 억지로 '프랑켄슈타인'을 읽히신 어느 교사 분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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