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기(15)_정신병 커밍아웃

'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by 최순돌


2025년 7월 29일



나만의 '금요일 퇴근 루틴'이 있다. 그것은 꼭 금요일에만 있는 루틴인데, 퇴근하면서 내 책상을 유심히 훑어보고는 마지막으로 사진을 하나 찍어 두는 것이다. 평일에는 찍지 않는다. 아무래도 평일은 내일 금세 다시 출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 안심하는 듯한데, 이상하게 금요일이면 뭔지 모르게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책상을 맴돌다가 사진 한 장을 꼭 찍고서야 겨우 퇴근을 한다. 다시 볼 일이 없는 사진인데 말이다. 그 사진 중에 하나를 처음으로 이번에 브런치를 작성하며 써먹어 보았다.

그런데 저번 금요일은 퇴근이 좀 힘들었다. 마침 금요일에 조금 일찍 학교를 나서야 하는 출장이 잡혔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숨 가쁘게 수업을 몰아서 하고 급하게 짐을 챙겨 출장지로 향하려는데, '금요일 퇴근 루틴'을 충분하게 밟지 못해서 그런지 몸은 책상을 뜨고 머리는 계속 책상을 맴돌고 있는 이상한 꼴을 한동안 보이고야 말았다. 그게 이번에는 주변 선생님들에게도 티가 좀 많이 났는지, 주변 선생님들이 나를 보면서 조금 웃으셨다. 그제야 나도 조금 웃으면서 했던 말,


"아, 제가 정신병이 좀 있어서요."


농담 반 진담 반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이었다. 사실 그간 강박이나 아스퍼거 등에 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스펙트럼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동료들에게 너무 TMI적인 나의 이야기를 꺼냈나 싶어서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나름 오랜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물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 대해 알리는 것은 그때 당시에 내가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나부터라도 그때의 나를 존중해 주자는 것이었다. 게다가 웃자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또 차라리 이번 기회로 나의 정서와 행동 특성에 관한 커밍아웃이 어떠한 삶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내 동료나 또 나의 학생들 중에도 저마다의 특별한(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루틴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런저런 서로의 정서와 행동 특성에 대해서, 짧은 시간이나마 인정하고 알아주려고 하는 것이 예방으로서의 사회정서교육의 하나가 아닐까?


어쨌든 갑작스러운 정신병 커밍아웃이 나름 영향력이 있었는지, 오히려 커밍아웃 이후로도 동료들과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회식으로 함께 술을 먹다가 사실 나도 횡단보도의 흰색만 밟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알코올의존증, 성인 ADHD 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저마다의 아픈 구석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앓지 않는 수준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예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아직도 문득문득, 이런 이야기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을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굳건해지고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임상 실험을 통해서, 나의 인생 데이터를 다른 학생들에게 사회정서교육의 이름으로 전해주자고 마음을 먹고 있다.


김윤경 선생님은 사회정서교육과 학교의 Wee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정신건강 보호, 증진을 위해 2012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학생 정서, 행동 특성 검사를 실시하며 위기 학생을 관리하고 있다. Wee 프로젝트는 1차로 각 학교에 있는 Wee 클래스를 통해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상담 등의 조치를 하고, 지역 교육청에서는 Wee센터를 통해 위기 학생에 대한 진단과 치료 조치를 하며 학업 중단 학생을 위해서는 Wee 스쿨을 만들어 더욱 적극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Wee 프로젝트는 일반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 예방보다는 위기 학생에 대한 대처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에서 사회정서학습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회정서교육을 통하여 서로의 정서와 행동특성에 대한 스펙트럼을 나누다 보면, 그 정도에 따라 Wee 서비스나 그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아야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도 학생과 다름이 아니다. 다만 전보다 더욱 솔직한 커밍아웃들 속에서, 그나마 대처 이전에 예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확률도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예전에는 나의 정서와 행동 특성을 꼭꼭 숨긴 채, 문제 상황에 빠진 아이들에게만 마치 의사가 된 듯 잘 해결해 주려고만 하기 바빴는데 이젠 함께 아플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최대한 예방적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의 사회정서교육은 한 편의 윤동주의 시를 닮았다. 내가 윤동주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서시'도 아니고 '별 헤는 밤'도 아니고 바로 '병원'이다. 실제로 그 유명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은 '병원'이었다.


오늘은 윤동주의 '병원'을 나누며, 다가올 금요일을 미리 준비해 보려고 한다. 이 시 한 편을 나누며, 지나친 시련과 피로 속에서도 성내지 않을 각오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사회정서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병원


- 윤동주 -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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