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터의 일
인터뷰 콘텐츠를 좋아한다. 단 몇 분을 투자해 누군가의 우주를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엄청난 매력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얼마나 좋아하면 버킷리스트에 '인터뷰어 되보기'가 있을 정도였다. 우연한 기회로 회사에서 '일하는 마음'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맡으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게 됐다. 질문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남의 요리 평가는 쉽게 해도 직접 요리해 보면 라면조차 맛있게 끓이는 게 어렵단 걸 알게 된다고. 인터뷰 콘텐츠를 그리 좋아하고 많이 봤어도 내가 막상 그 인터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되니 뭘 해야 할지,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책 한 권을 만났다. 19년간 인터뷰어로 살아온 장은교 기자님이 쓴 <인터뷰하는 법>이란 책이었다. 인터뷰란 무엇인가부터 인터뷰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까지, 책에는 초보 인터뷰어를 위한 인터뷰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인터뷰를 잘했는지는 내가 아니라 인터뷰이와 인터뷰를 읽는 독자가 평가할 일이지만, <인터뷰하는 법> 덕분에 첫 인터뷰를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인터뷰를 꼭 직업으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일이 왕왕 생기곤 하는 요즘이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의 구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봤다. 나처럼 어느 날 갑자기 질문하는 사람이 된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인터뷰이에게 건네야 할 것은 열쇠입니다. '열쇠 같은 질문'입니다. 그에게 열쇠가 되어줄 질문을 건네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속을 열고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성공한 외식사업가에게 식당을 열게 된 계기와 초기의 성공 전략을 묻고 싶다면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어떻게 식당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업 초창기엔 어땠나요?"라는 질문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당을 처음 열던 날 기억나세요? 그날 하루는 어땠나요? 첫 손님 기억하세요?"라고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그를 '사업의 첫날'로 데려가는 겁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 질문을 던지는 건 답변자에게 자신의 마음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건네는 일이라는 이 낭만적인 표현 덕에, '엄청나게 날카롭고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힘을 바싹 주고 있던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인터뷰를 준비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을 수십, 수백 개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던진 질문으로 인터뷰이가 그중 한 개의 방이라도 깊숙하게 들어갔다 나온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인터뷰에 담긴다면 그 인터뷰는 성공적인 인터뷰일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에 "공감은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인터뷰를 시작하면 질문하는 사람 이상으로 답하는 사람도 긴장합니다. 오랫동안 인터뷰 경험을 쌓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마음을 먼저 이해하고, 나라면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 생각해 보기로 해요.
역지사지 태도는 질문들 간 밸런스를 유지하는 도움이 된다. 1차적으로 내가 궁금한 것 위주로 질문을 구성하고, 그 후에는 '내가 그(또는 그녀)라면 어떤 걸 물어봐주길 바랄까'를 생각하며 질문을 보완했다. 인터뷰어가 듣고 싶은 것과 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 것이 균형감 있게 버무려진 질문지가, 인터뷰 현장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인터뷰는 '오늘의 나와 당신이 만나는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질문지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것입니다. 인터뷰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것인데 어제 만든 질문지에 너무 갇히면 안 되겠죠. 질문지는 나(인터뷰어) 혼자 만든 것이지만, 인터뷰는 상대방(인터뷰이)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요.
내가 말을 하는데 상대의 시선이 나는 보지 못하는 어떤 자료만 본다, 그런데 그게 나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료라면? 그런 장면이 반복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도 슬슬 불편해질 거예요. 그래도 자료를 봐야 충실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도 늘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나, 준비는 인터뷰 현장에 오기 전 미리 충분히 하고, 가급적 현장에서는 인터뷰이에게만 집중하시기를 권합니다.
이걸 보지 않았다면, 모니터에 질문지를 띄어두고 질문 하나하나 충실히 읽어가며 인터뷰를 할뻔했다. 질문지를 거의 암기하고 인터뷰에 임한 덕에, 스크린이 아니라 인터뷰이의 눈을 바라보며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질의응답 시간이 아니라 대화의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터뷰의 목적을 잊지 않는다. 자유롭게 대화하되 줄기가 될 '중심 질문'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잠시 다른 주제로 빠지기도 할 텐데요. 그럴 때 너무 길을 잃지 않도록 중심이 될 이야기를 가운데 두는 겁니다. '난 지금 왜 이 사람을 만나러 왔지?' '이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건 뭐지?' 정도를 중간중간 떠올리면 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2-3개 질문까지는 사전에 구성했던 질문 순으로 인터뷰가 진행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 순서가 뒤죽박죽 된다. 인터뷰이의 답변에 따라 후순위에 있던 질문을 갑자기 가져와서 꼬리 질문을 하기도 하고, 예정했던 질문이 현재 답변과 중복될 것 같으면 삭제하고 다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또 답변이 너무 좋으면 그냥 넋놓고 듣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책에서 얘기했던 '중심 질문'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잠시 다른 길을 가도 내가 돌아올 곳을 기억하려 했다. 덕분에 의도적으로 제외한 질문은 있었어도 해야 하는 데 하지 못한 질문은 없었다. 질문을 구성할 때부터 열거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스토리라인을 잡고 중간중간 '닻' 역할을 하는 질문을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생각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아직은 모릅니다. 우선 한 문장을 생각합니다. 그 한 문장을 위해 오늘의 만남을 수다 떨듯 풀어내봅니다. '이제부터 정말 대단히 멋진 콘텐츠를 만들겠어!' 보다는 친한 친구에게 가볍게 전달하는 수다로 시작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우리의 마음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가 콘텐츠가 되기까지 방황하며 떨리는 우리의 동공과 마음을 잡아줄 마법의 질문을 해봅시다. "어땠어?" "뭐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마음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한 문장을 일단 빼두었다. 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만약 내 인스타그램에 오늘의 인터뷰를 단 한 줄로 소개해야 한다면 남길 그 문장 말이다. 그 문장이 곧 헤드라인이 되었고, 방대한 인터뷰의 뼈대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터뷰는 '사람'의 생각을 또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서사가 생깁니다. 여기서의 서사는 '발달-전개-위기-절정-결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연결이 어색하지 않았는지를 보는 겁니다.
호모 에디팅쿠스로서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을 겁니다. 어떤 이야기를 중심으로 둘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조금 더 큰 비중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다 작은 비중으로 전달할 것인가. 이야기 간의 연결성이 자연스러운지를 보는 겁니다. 읽는(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러운지를 확인하는 거죠.
대표 문장을 골랐다면, 이제 콘텐츠를 만들 시간. 이 순간부터는 오직 '독자'만을 생각한다. 인터뷰 콘텐츠를 읽을 타깃이 궁금할 내용, 관심을 가질 내용 중심으로 흐름을 만든다. 인터뷰를 읽기 전에는 인터뷰이를 몰랐지만 인터뷰를 읽고 난 후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 인터뷰 콘텐츠의 목적이다.
그렇게 나의 첫 인터뷰어 데뷔작, [합해서 50년차 MD의 일하는 마음] "사고 많이 치는 연습하세요"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인터뷰 시리즈의 첫 특별 인터뷰어였던 <질문 있는 사람>의 저자 이승희 님은 사전 미팅 때 인터뷰어의 매력을 묻는 내 질문에 이리 답했었다.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100% 날것으로 들을 수 있는 게 너무나 큰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내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을 인터뷰이에게도, 인터뷰를 보는 누군가에게도 의미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