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잊혀지는 아카이브
아카이브는 본래 잊지 않기 위한 장치입니다.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록하고, 기록을 통해 존재를 이어가려는 인간의 시도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디지털 아카이브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화는 접근 가능성을 확대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기록에 접근할 수 있게 됐죠. 국가기록원 웹사이트를 열면 수십만 건의 기록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디지털화된 사진, 문서, 영상들이 서버에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심의 집중이 일부 아카이브에만 몰리는 비대칭 구조가 형성됩니다. 잘 알려진 국립중앙박물관의 e뮤지엄은 수많은 방문자를 끌어모으지만, 지역의 작은 박물관 웹사이트는 한 달에 조회 수가 몇백 건에 불과합니다. 같은 공공아카이브임에도 관심의 격차는 극명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보존되더라도 잊혀질 가능성이 내포됩니다. 아무리 디지털화가 접근성을 확장시켜도 관심의 불균형으로 일부 아카이브만 살아남는 비대칭 구조가 형성됩니다. 즉, 접근률이 낮은 아카이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록이 무한히 쌓이는 디지털 공간에서는,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접근되지 않는 기록, 검색되지 않는 데이터, 클릭되지 않는 페이지는 결국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저장하지만, 기억은 여전히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서버에 안전하게 보관된 기록이 실제로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보존은 됐지만 기억되지 않는 기록, 이것이 디지털 아카이브가 마주한 역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