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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생존 경쟁

1장. 잊혀지는 아카이브

by 아키비스트J

좁은 영역에서의 치열한 경쟁


그렇기에 아카이브는 현재 생존 경쟁 중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적은 수요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는 작고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의 전쟁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카이브 업계 내부에서는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여지지만, 정작 사회 전체로 보면 소규모 니치 시장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동 정도는 아닐까, 의구심이 듭니다.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보의 풍요 속에서 기록의 생존은 관심이라는 자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심이라는 것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처럼, 먹고 사는 문제, 일차원적 감정 불러일으키기, 흥미, 돈을 벌게 해주는 것 등 원초적 욕구에 더 잘 감응합니다.

매슬로우 5단계 욕구이론 피라미드 출처: https://m.cafe.daum.net/ogolf/hiPO/289?q=%EF%BF%BD%C5%BD%EF%BF%BD%EF%BF%BD%CE

생존, 안전,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비로소 자아실현의 욕구가 작동합니다. 그런데 아카이브가 제공하는 가치는 상위 욕구에 해당합니다. 역사적 성찰, 문화적 정체성, 사회적 기억 같은 것들 말입니다. 당장의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 것들이죠.


결국 아카이브는 이용자의 주의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장 중에서도, 너무 좁은 영역에서 높은 경쟁이 벌어지는 장입니다. 관심을 얻지 못한 기록은 잊히고, 잊힌 기록은 유지 근거를 잃게 되며 결국 디지털 공간에서도 도태됩니다.



관심이 경제적 자원이 되는 순간


관심이 경제적 자원이 되는 순간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 시장의 주체가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을 얻기 위해, 더 자주 언급되고, 더 빠르게 노출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쟁이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와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서고에 쌓인 종이기록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망각되듯, 디지털 공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속도가 훨씬 빠를 뿐입니다. 기록조차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 그것이 오늘날의 아카이브가 처한 생태학적 현실입니다.



경쟁 속의 협력, 공존의 가능성


그러나 개별적인 아카이브는 급변하는 환경에 따른 생존 전략이 시급합니다. 하지만 그 전략이 공유와 협력의 형태로 전환되는 경쟁 속의 협력(co-opetition)이 이루어진다면 지속가능한 공동 성장이 가능합니다.


아카이브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관심을 얻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소비의 구조 안에 갇히는 셈입니다. 지식은 소비재가 아니라 공공재이며, 그 본질은 협력과 공유에 있습니다. 서로의 자료를 연계하고, 공동의 플랫폼을 구축하며, 보존과 주목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질서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효율이나 시장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질문입니다. 무엇이 기억될 가치가 있는가, 무엇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기록도 결국 공허해집니다.


허버트 사이먼이 지적한 '관심의 경제학'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근본적 긴장을 드러냅니다. 정보의 풍요는 기억의 위기를 낳고, 기록의 확산은 오히려 망각의 가능성을 키웁니다. 아카이브는 지금, 생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잊힐 것이고, 변화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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