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잊혀지는 아카이브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입니다. 제한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모델 이론으로 경제학에 기여했고, 인공지능 및 인지심리학 연구로는 1975년 튜링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정보가 소비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정보를 받는 사람의 관심이다. 그러므로 정보가 풍부해지면 오히려 관심이 부족해지고 만다."
출처: <세컨드 브레인>, 티아고 포르테, 쌤앤파커스, 2023.
이 간결한 문장은 현대사회의 역설을 꿰뚫습니다. 정보가 늘어날수록 세상은 더 풍요로워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관심'이 희소해집니다. 정보의 바다는 깊어지지만, 그 속을 탐색할 시간과 에너지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오늘날은 초단위로 새로운 데이터가 생성되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전환은 정보의 생산비용을 거의 0으로 수렴시켰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세계 곳곳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적 자원인 시간, 주의, 관심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사람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습니다. 정보는 무한히 늘어나지만, 그것을 소비할 인간의 능력은 그대로입니다.
결국 정보는 '관심'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관계에 놓입니다. 클릭 수, 조회 수, 노출 알고리즘이 새로운 경제의 언어가 된 지금, 관심은 곧 자원이며 자본입니다. 사이먼의 통찰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보 과잉 속에서 관심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자 경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논리는 당연히 정보를 다루는 아카이브에도 적용됩니다. 정보의 생애주기와 유통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아카이브의 정보가치, 경제학적 논리와 가치도 함께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록의 가치가 '보존 여부'로 결정됐습니다. 남기느냐, 버리느냐의 문제였죠. 종이기록 시대에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 때문에 무엇을 남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저장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모든 것을 저장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접근 여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아무리 잘 보존된 기록이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그 기록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기록의 가치는 보존에서 접근으로, 소장에서 이용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