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께레따로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by 구자룡

2009년 멕시코에서 맞는 추석은 짜장면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비가 차창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면서 이동 중이었다. 비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졌고,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판매팀 차장이 운전을 하고 있었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뒤에는 우리 가족들과 판매팀 차장 가족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서 산루이스포토시에서 2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께레따로(Queretaro)로 이동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기분 좋게 떠들고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추석 연휴였다.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였지만 멕시코에서는 그저 평상시와 같은 주말의 하루였다. 2009년 한국의 추석은 토요일이었다. 우리가 짜장면을 먹기 위하여 이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토요일로 시차는 있지만, 추석이다. 우리는 이번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를 의논했고, 한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는 게 좋겠다고 해서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동 중이었다.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께레따로에 가까이 갈수록 비가 심하게 쏟아졌다.


멕시코의 면적은 약 196만km2, 세계 10위라고 다음에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약 10만km2이다. 그러니 멕시코는 한반도의 약 9배, 남한의 19배 정도 된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지금 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비가 오고 있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어떻게 전국적으로 비가 올 수 있느냐는 거다. 멕시코는 넓긴 넓다. 우리가 출발했던 산루이스포토시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었다. 이동 중에 비가 쏟아져서 돌아갈 까도 생각해 봤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는데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산루이스포토시에는 2009년 당시 한국식당이 없었다. 이후엔 주택에서 하숙집을 겸해서 한국음식을 판매하시는 분도 있었고, 우리 게스트하우스 운영이 중단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해 주시던 분이 한국식당을 오픈하셨지만, 당시엔 한국음식을 밖에서는 먹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짜장면을 하는 한국식 중국식당은 말할 것도 없다. 통상 우리나라 사람들이 멕시코에 오면, 특히나 지방도시에서 일정기간 근무하신 분들에게 어떤 음식이 제일 생각나느냐 물어보면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수제비, 칼국수, 짜장면을 언급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 가족들 역시 짜장면이었다. 추석을 맞아 산루이스포토시 법인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짜장면을 먹어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멕시코시티의 경우엔 한국 식당이 몇 있고, 짜장면도 먹을 수 있지만,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짜장면을 먹기는 어려 웠다. 주변을 검색하고,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하니, 2시간 거리에 있는 께레따로에 짜장면을 하는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멕시코이지만 우리로서는 추석날인 토요일에도 영업을 하는지 연락 후에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기대에 부풀어 출발하던 길에 비를 만나게 된 거다. 어렵게 어렵게 우리가 찾고 있던 음식점 주변까지 왔는데, 식당이 있을 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역시나 가정집이었다. 주변에서 전화를 하니 한 주택으로 들어오라 했다. 하숙집 형식으로 운영하면서 주변에 사는 한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다. 짜장면을 먹으러 왔으니, 짜장면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 짜장면을 주문하고 나니, 사장님이 추석이라고 송편과 떡 몇 가지를 가져다주셨다. 짜장면은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그 면발이나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먼 멕시코 땅에서 이 정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도 먼 거리를 비를 뚫고 와서 먹는 짜장면에 재미도 있으면서, 맛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듯 보였다. 이렇게 2009년 멕시코에서 맞는 추석은 짜장면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산루이스포토시로 돌아와서 다들 아쉬웠던지, 자연스럽게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를 몇 병 사서 다들 둘러앉아 마시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러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게임의 제한 시간을 정해 두었는데, 토요일엔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길다. 그러니 아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아이들은 맞은편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 들어갔고, 어른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좀 더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이사한 단지는 집이 한 15가구 정도 되는 소규모 단지다. 게스트하우스도 같은 단지에 있어 출퇴근 카풀도 용이하고, 서로가 멕시코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처음에 집을 알아보는데 부동산업자가 단지 내 집을 소개해 주었고, 그 집이 우연히도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해 있는 단지였다. 집주인은 스위스에서 몇 년 살다가 온 사람이라고 하였고, 인상은 좋아 보였다. 멕시코에서는 월세를 내는 임대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세 제도는 없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추석 명절에 대한 이야기, 멕시코에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 에피소드 등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직장에서 만나서 직제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고, 서로 가까이 살면 불편할 수도 있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을 보는데, 주말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기엔 꺼려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 일이야 하면 되는 거고, 이외의 시간은 그저 먼 나라 멕시코에 와서 같이 고생하는 동료이자 한국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니 시간만 되면 모여 앉았고, 주말엔 아쉬움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로 나누었다.


리더는 부지런해야 한다. 정말로 부지런해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판매팀 차장이 발령을 받아 멕시코를 떠나게 되었다. 이번 판매팀 차장은 나에게 철강가공센터 판매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본사에서 커다란 규모의 장사를 하던 사람이 실제 고객사향으로 판매를 진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들이 판매팀 차장을 만나면서 가공센터 판매의 know-how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었다. 현재로서야 멕시코 시장에서의 철강산업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할 정도가 되었다고 스스로가 자부해 보지만, 당시엔 난 극초보자 였다. 얼마 후 나의 스승이자 판매팀 차장은 멕시코를 떠났다.


내가 이 법인에 근무할 당시 나와 같이 근무한 판매팀 차장은 3명이었다. 지내놓고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하다. 판매팀 차장은 판매팀 전체를 끌어가면서 판매 실무를 담당한다. 중요한 포지션이다. 내가 신기하다고 한 이유는 이 세 사람의 차장이 법인 건설 초기부터 안착까지 각각의 역할에 너무나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거다. 준공을 마친 법인 운영 초기엔 판매실적관리, 발주관리, 물류운송관리 등 각각의 양식을 가지고 프로세스 세팅을 해야 한다. 본사의 프로세스나 관리양식이 워낙 잘 되어 있고, 가공센터 구축에 대한 많은 know-how가 탁월하게 갖추어 있긴 하지만, 멕시코라는 지역특성에 따라 이를 현지 상황에 맞게 재 조정하고 때론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초기엔 판매 확대와 더불어 매일을 프로세스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초기부터 같이 해온 판매팀 차장은 매일을 야근을 하면서 나와 호흡을 맞추었고, 양식을 확정하고 프로세스를 그려 나갔다. 때론 강하게 때론 우직하게 일을 해 나가는 차장이었다. 당시 초기 세팅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할 수 있다. 이후 차장이 발령이 나면서 나는 내심 아쉬움과 섭섭함과 걱정이 같이 몰려들었다. 나와 초기부터 같이 고생하고 웃고 떠들고 하던 차장은 멕시코를 떠났다.


멕시코를 떠난 차장 후임으로 또 다른 차장이 부임을 하였다. 나는 그 차장을 잘 몰랐었기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판매팀 차장이 첫 출근을 하였다. 인사를 하길래 사무실로 들어오도록 해서 커피를 권했다.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상당히 적극적이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 웃긴다는 것이 몸짓이나 움직임이 아니고 말을 잘한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탁월한 듯 보였다. 커피를 마신 후에 나와 같이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고,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내면서 보니 우린 지금 판매를 공격적으로 진행해서 물량 확대를 할 시기에 아주 적합한 사람이었다. 지치지 않는 사람이라 해야 하나? 열심히 아주 열심히 고객을 개발하고 직원들을 끌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이 시기에 진행한 판매 확대로 인해 우리 가공센터 가동은 더 이상 고객사 주문을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월은 간다. 시간이 날아간다 했던가. 얼마 후 두 번째로 나와 같이 일을 했던 차장 역시 발령으로 멕시코를 떠나게 되어 나는 세 번째 차장을 맞아야 했다. 우리 법인은 초기 세팅기, 성장기를 거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나 역시 가공센터 관리 및 판매 업무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시기이기도 했고, 멕시코에서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세 번째 차장은 전임 차장과 다르게 조용하면서도 일과 사람들을 합리적으로 잘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했던 차장들을 그저 좋게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각각의 시기에 적합한 사람이 배치됨은 법인과 나의 복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법인이 발전하기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새로운 차장과 전임 차장의 차이는 출근 시간에 알 수 있다. 전임 차장이 출근을 하며, 나에게 인사하러 오기 전에 출근했는지 안다. 직원들에게 우렁차게 아침인사를 하니, 그 소리가 내 사무실까지 들린다. 후임 차장은 출근해서 나에게 인사를 할 때까지 모른다. 스타일의 차이다. 안정기에 딱 적합했다.


세명의 차장을 보면서 리더십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과연 리더십의 정설이란 게 있는 건가? 평시에 그렇게 교과서적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이, 전시라 할 수 있는 현장에서는 형편없는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다. 우리는 기업이니 실적으로 말하는데, 실적이 나쁜 기업의 수장이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리더십이 좋다 할 수 있는가?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모기업의 수장이 실적이 나쁜 계열사 사장을 교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1년 후에 나오겠지만, 그 회사의 실적이 나아진다면 탁월한 리더십에 탁월한 판단이었다 할 것이다. 실적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뭐라 할지는 충분히 예상된다. 누가 뭐래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체를 끌어가면서 실적을 낼 수 있는 리더십이 가장 탁월하다. 그러기 위해서 리더는 부지런해야 한다. 정말로 부지런해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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