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식을 마치고, 공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사전 판매활동을 해오기는 했지만, 이젠 본격적인 판매를 해서 실제 제품이 팔려나가야 했다. 사전 판매활동은 언제 우리 제품이 나올 것이니, 그때 우리 제품을 사달라는 것이고, 철강판매 특성상 본사에서 원거리에 위치한 시장이라 실제 계약부터 초도 제품 인수까진 몇 개월이 소요된다. 이제부터는 잠재 고객사를 실 고객사로 전환함과 동시에 기 계약된 물량을 가공하여 납품하는 과정까지 진행되어야 했다. 준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판매에 부담은 없을 거다라는 생각은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소리다. 판매팀은 매일매일을 긴장의 연속이었다. 판매물량을 손익분기점 수준 이상은 해야 하는데 아직은 턱없이 모자랐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수량이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본사에 조기 복귀 신청까지도 각오하고 일을 진행해 갔다. 조기 복귀 신청은 인사상으로도 좋을 리가 없는 행동일 것이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판매 활동을 이어가면서, 판매 확대에 대한 각오를 법인장님께 보고 드린 바 있었다. 손익분기점 수준보다 높은 수준으로 6개월 내 달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법인장님께서는 준공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판매가 어렵긴 할 것이다. 6개월 내 달성한다는 건 쉽지 않다. 각오는 좋다. 최선을 다해 달라 하셨다.
어느 날 출근을 해서 어제 판매된 실적을 보니, 어제 판매하기로 한 수량보다 적게 판매가 되었다. 판매팀 직원들을 모두 대강의실에 모이도록 했다. 지난 일주일의 판매 계획 대비 실적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한 후에 어제 실적이 너무 적게 나갔음을 이야기했다. 직원들은 이런저런 사유들을 말하기 시작하였고, 그런 사유들은 모두 내가 납득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납득할만한 모든 사유들을 뒤로하고, 판매량을 늘려가야만 했다. 판매 목표 달성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토록 하면서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공격적인 판매 활동을 해야 한다.
지금 바로 다들 나가라 했다. 바로 지금 다 나가고, 다음날 출근하지 않아도 좋다 했다. 이번 조치의 목표는 단 하나, 판매 물량을 잡아 오라는 거다. 고객사를 만나던, 집에서 빈둥대던 좋다 했다. 물량만 늘려오면 된다 했다. 최소한 오늘은 모든 판매팀 직원들을 사무실에는 있지 못하게 했다. 다음날 다들 출근을 했다. 물량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출근하지 말라 했음에도 다들 출근을 하였다. 다시 다 모이도록 해서 확보된 수량을 점검하였다. 아주 소량 늘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철강 판매라는 게 하루 반짝한다 해서 늘고 주는 게 아니다. 이번 조치는 직원들에게 판매 목표 달성의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판매량을 늘려 갔다. 법인장께 보고 드린 6개월 내 손익분기점 달성을 실현하였다. 정확하게는 4개월 경과 시점에 달성하였다. 이후 가공 판매량이 지속 늘어났고, 가동률도 급속도로 상승하였다.
판매와 공장 관리 세팅, 설비 가동 안착 활동들이 진행되면서, 가족들도 산루이스포토시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아이들 교육은 언어가 문제였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아이들이 알아 들었을 리가 없다. 아이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스페인어를 익히도록 수도 없이 이야길 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또래의 세상에 적응해 가는 속도가 엄청나다. 처음엔 학교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숙제할 내용을 적어와서는 숙제가 뭔지도 모를 정도에서,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수업 이해는 물론이고, 종종 꿈도 스페인어로 꾸게 되었다 한다. 스페인어가 해결되니 오히려 영어가 문제가 되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외국어를 하려면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 영어를 하고 스페인어도 해야 하는 거다. 학교에서 영어 수업도 하긴 하지만, 집에 와서 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였다. 이를 극복해준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세월은 하루하루 지나갔고, 2008년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12월 중순 정도가 되면 경제활동이 멈춰진 듯하였다. 12월 중순부터 다음 해 1월 중순까지 한 달간을 정부도 기업도 업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국계 투자가 많이 들어오면서 기간이 짧아지는 현상도 보이지만, 통상 2주는 공장 가동도 중단하고 휴가를 보낸다. 우리는 공휴일만 쉰다. 고객사별로 휴가 일정이 달라 일괄 휴가를 사용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판매팀의 경우 담당 고객사가 쉬는 일정에는 휴가를 선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한국에서 온 직원들은 다들 한 단지에 모여 살았다. 우리 집도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단지에 있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니, 가족 포함 다 같이 나가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들어오기로 하였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음식점 대목으로 생각했었다. 오산이었다. 다들 아르헨티나식 식당이 좋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이런! 문이 잠겨 있었다. 그냥 가려는데, 뒷문 쪽으로 누군가가 나오길래 물어보니, 오후에 영업을 끝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일찍 끝내냐, 크리스마스이브 아니냐고 하니,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렇다는 거다. 다들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기 위해서 일찍 끝냈다고 한다. 다른 식당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몇 군데 더 찾아다니다가 포기하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몇 병 사고, 집에 있는 라면 있는 거 다 들고,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라면 먹으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냈다. 그래도 다들 모여서 같이 끓이고, 같이 먹고, 마시고 하니 또 하나의 추억이 그려졌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문구가 유행했던 기억이 있다. 방송에서도 여러 번 나오곤 했다. 아주 오래전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집안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놀러 나가고, 집에는 두 분만 계시는 경우가 많았다. 다들 여자 친구, 남자 친구 만나러 나가고,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이브 기분을 내기 위해 나가고 해서 집에는 두 분만 계시는 거다. 명절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우리의 명절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멕시코에 살아가면서, 멕시코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유대는 정말 탄탄하다. 삶이란 것이 문화라는 것이 일괄 모두 해당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멕시코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끈끈함은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다.
전에 우리 직원에게 가족이 몇 명이냐 하니, 1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그 사람들 이름은 다 아느냐 하니 안다고 했다.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 3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웃으면서 가족 수의 기준이 뭐냐고 하니, 1년에 몇 번씩 가족 모임을 하는데, 그때 모이는 수가 가족수의 기준이라 한다. 그게 기준이라면 이해가 갔다. 멕시코는 가톨릭 국가라 볼 수 있다. 90% 정도가 가톨릭 신자이니 그렇다 봐도 무방할 거 같다. 최근에야 멕시코도 달라졌지만, 멕시코의 우리 아버지 세대(‘30~’ 40년대 출생)에서는 자녀 수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니, 우리 직원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살아 계시다면, 가족 모임에 100명까지는 어렵지 않게 모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거의 명절 수준의 날이 되면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파티를 하는 거다. 멀리 나가 있던 가족들도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서 파티를 즐긴다. 그렇게 2008년도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