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공장 건설도 마무리되어 준공식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었다. 직원 채용도 필요한 거의 모든 포지션이 채워졌다. 판매팀의 회의는 매일 영어로 진행됐고, 철강판매 경험이 없는 직원들은 교육부터 해야 했다. 많은 할 일 리스트들이 매일 적어지고 지워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지내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부법인장님, 판매팀 차장, 통역 겸 생산부 직원,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식사 라야 라면, 햇반, 냉동만두가 주식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멕시코시티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한다. 한국에서도 가족들과 발령 사유로 1달 정도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7개월여를 떨어져서 주말 가족으로 지내 보기는 처음이다. 것도 멕시코에서.
금요일이 되면 부법인장님과 차장, 나 이렇게 셋이서 멕시코시티로 이동할 차에 오른다. 운전은 셋이서 돌아가면서 하면 되는데, 판매팀 차장이 제일 젊다는 이유로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다. 오고 가다가 휴식을 위해 멈춰서는 곳에서 마시는 커피나 음료 값은 부법인장님이나 내가 지불하게 된다.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이렇게 역할 정리가 되었다. 멕시코시티로 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가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회사 직제상 서열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먼 멕시코 땅에서 공장 건설을 관리하고, 매일을 같은 공간에서 부대껴온 정으로 서열보다는 더 끈끈한 인간적인 뭔가가 더 있었다. 길이 좋지 않아서 차가 너무나 흔들렸고, 오가는 이야기 속에 푹 빠지기도 해서 잠을 청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금요일 오후에 멕시코시티로 가는 길은 가족들을 본다는 기쁨도 같이 섞여 있어서 금방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의 주거단지가 달라서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선다.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반겨주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일요일 오후까지의 시간을 가족들과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학교 생활을 잘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인터넷 설치도 되었도, TV 설치도 되어 하나하나 멕시코 생활에 가족들이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오기 전의 설렘이 섞인 두려움도 많이 없어지고, 주변의 도움도 받고 해서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한 달 전엔 멕시코 생활에서는 필수라 할 수 있는 자동차 구입도 마친 터였다. 차량 구입을 하면서 절차상으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진행을 했음에도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고, 팍뚜라라는 멕시코 특유의 세금계산서 제도로 난감해지기도 했고, 차량 옵션이 우리가 요구한 대로 되지 않아 잠깐의 아규도 있었지만, 구입은 완료되었다. 아내와 주말마다 차량 구입을 위해 대리점을 돌아다녀 보면서 미국계, 일본계, 유럽계 자동차사들의 대리점마다 영업을 하시는 분들에 각각의 차이점이 있었다. 지금은 기아차 생산공장이 멕시코에 들어오고, 현대차 판매 대리점도 들어오고 했지만, 당시엔 한국차를 구매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미국계는 고객이 들어서면, 영업 담당자는 고객이 담당자 본인에게 다가가서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고객이 담당자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문의하면 그때부터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교육을 받았겠지만 자동차를 꼭 사달라고 강요하는 눈치는 없다. 일본계는 고객이 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영업 담당자가 달려 나온다. 일본계라 해서 영업 담당자가 일본 사람은 아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영업 담당자는 멕시코 사람이다. 문으로 고객을 맞기 위해 달려 나와서부터 안내가 시작된다. 역시나 강요는 안 하면서 차량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결정만 하시라 나머진 다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는 인상도 강하게 풍겨준다. 유럽계는 고객이 들어서서 담당자에게 다가갈 때까지 기다리는 건 미국계와 같다. 차이는 잠깐 앉으라 하고 좀 더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차이는 나의 주관적 판단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방문하는 대리점들은 그랬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11년 전의 일이다.
한참 후에 우리 공장이 위치한 산루이스포토시에서 법인차량을 추가 구매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은 안내가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정말 친절하다. 나중에 살아가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기본적인 친절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길을 물어보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좋은데,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르는 길을 가르쳐 준다. 종종 모르는 본인이 이야길 하다가 정 안 되겠으면 다른 사람을 불러서라도 이야기해 준다. 종종 스페인어를 이해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스페인어로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처음으로 해외 생활을 해보기도 하고, 언어도 스페인어라 걱정을 했었던 나는 멕시코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부친 이삿짐도 가족들이 들어오고 한 두 달 있다가 도착을 하고, 자동차 구입도 마쳤고, 이제 멕시코에서 살아갈 준비는 다 되었다. 토요일엔 가족들과 장을 보러 다녔다. 근처에 대형 마트에 가서 식료품도 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장을 보고 와서는 장을 본 식료품으로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다음 주엔 내가 오면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도 이야기하고 하는 와중에 벌써 일요일이 되었다. 일요일엔 오후에 이동을 하는데도 아침부터 아쉬움이 밀려온다. 왠지 아침부터 뭔가 빠뜨린 것 같고, 뭔가 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오후가 되어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막내는 매주 언제나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아내도 막내의 울음에 눈물을 비친다. 다음 주면 오는데 매주 같은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몇 달간 주말 가족이 지속되면서 한국에서도 안 하던 주말 가족을 멕시코에서 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아내와 주말 가족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 학교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 당시-아마 지금도- 산루이스포토시에는 국제 학교가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외엔 멕시코시티라는 대도시가 갖는 편리성인데, 차가 없이는 어딜 가는 게 극히 제한 적인 상황에서는 이 편리성은 그리 큰 고려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은 아이들 학교였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아이들을 반드시 국제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우선은 산루이스포토시 주변 학교를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로컬 사립을 알아보아야 한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역시나 설명을 해주는 선생님도 너무나 친절했다. 학생 중에 외국인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프랑스인 학생이 있다고 했다. 수업에 영어는 어느 정도 사용되는가라는 물음에는 40:60 정도인데 40이 영어라 했다. 실제로는 10% 정도가 영어였던 거 같다. 85~90% 정도 스페인어가 사용되었다.
학교도 알아보고, 주택도 어느 정도 조사를 한 후, 주말에 가족들을 산루이스포토시로 오게 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주택도 보고, 주변도 둘러보게 했다. 월요일에는 오전에 학교 방문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방문하였다. 역시나 친절하게 우리 가족을 맞이해 주었고, 아내와 아이들도 학교를 둘러보았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한국인 크게는 동양인으로 처음이라 한다. 또 걱정이 올라온다.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첫 동양인 학생으로서 따돌림이나 어떤 차별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마침내 같이 있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사를 해야 했다. 우리가 이사하기로 결정을 하니, 판매팀 차장도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멕시코시티에 가자마자 이사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삿짐센터를 수배했고, 주말엔 멕시코시티에 가면 이삿짐을 정리하였다. 산루이스포토시로의 이사를 마치고, 아이들도 지난번 인터뷰를 한 학교로 등교를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산루이스포토시에서 가족들 모두 같이 4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