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눈이 떠진다. 2019년 1월이다. 멕시코에 온지도 만 11년이다. 10년이 넘었으니 강산도 변한다는 기간 동안 멕시코에 살아왔다. 멕시코시티의 고도가 높아서인지 잠을 자도 푹 잠이 들지 않는다. 멕시코시티의 고도는 2200~2300m이다. 우리 집은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2500m 정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위에는 가스가 들어차는 날이 많다. 11년을 살아왔으면서도 몸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익숙함을 잊지 않은 듯했다. 다시 잠을 들려고 뒤척여 보지만 눈만 감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순간 잠이 들었다. 화들짝 깨어 시계를 보니 6시 정도 된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출근을 해야 한다. 회사의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양치질 등등 화장실에서의 일을 보고 나오니 아내가 아침을 차려 준다.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른 아이들은 한국과 미국에 있어, 우리 막내와 같이 아침을 먹고 아파트 현관으로 나오니 같은 동에 사는 우리 직원이 차를 가지고 기다려 준다. 고맙다. 내가 운전을 해도 되지만, 2013년에 미국을 가족들과 같이 차로 이동하면서 빗길에서 사고가 난 이후에 되도록이면 운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 지는 일이 많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차를 타고 회사로 가면서 어제 본사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어느덧 회사 주차장에 들어서고,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경비분에게 Buenos Dias (스페인어 아침인사)라고 인사를 하고 주차장에 들어선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 등을 확인한 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회사 주방 한편에 마련된 커피메이커로 가서 커피를 가져온다. 지금은 커피를 안 마시지만 근 30여 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마셨던 음료다.
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술은 멕시코에 와서 4년인가 경과 시점에 끊었다. 철강 장사하는 사람이 술을 안 마신다는 건 나의 세대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니까 가능하다. 콜라 한 잔을 놓고도 3시간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담배는 수십 년 전에 끊었다. 건강이라기보다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조금은 낯 간지러운. 그러다 보니 커피, 차, 콜라가 기호음료가 되었다. 멕시코 콜라는 다른 곳에서 만든 콜라보다 더 맛이 있다. 멕시코는 콜라의 최대 소비국이다. 우리나라에서 살 때는 콜라를 거의 안 했는데, 부임 후 멕시코에서의 한 달 동안 평생 마신 콜라보다 더 마셨다. 멕시코에서 생산된 콜라는 김이 빠져도 맛을 유지한다.
커피를 마시고 업무를 하다 9시가 되어서 매일 진행해온 일일 판매 점검회의를 하기 위해서 회의실로 간다.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고, 내가 앉으니 회의가 시작된다. 회의라고 해야 판매 진도 데이터를 놓고 일단위로 확인하면서 실적이 올라와 있으면 그 양에 맞추어서 금일의 판매 계획을 수정하고, 안 돼있으면 사유를 따지고 대책을 논하는 자리다. 판매 회의는 30분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판매 회의를 마치고 팀장급 간부들은 자리로 돌아가고, 본사에서 파견된 부장급 간부들과 업무 진행과 본사 협의 등을 30분 정도 더 이어서 이야길 한다. 이후 이미 본사 복귀 발령이 나 있었으니 후임자에게 인계할 업무를 준비해야 한다. 난 생산 법인의 마케팅 실장(CMO)다. 우리 법인의 마케팅 실장으로 온지도 벌써 4년 차다. 멕시코에 온 지가 11년 차인데, 가공센터에서 7년을 있었다. 영업부장으로 부임하여, 법인장도 하고, 지역도 옮겨 가면서 11년을 멕시코에서 살아온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도 멕시코에서 살고 자랐다. 아이들에게는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살아가면서 언어라던가 문화 이해 라던가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역으로 조국인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어질 수도 있겠으나, 나중에 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잘 자라 주었다. 나 역시 많은 것들을 배웠고, 공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이루어 왔다고 스스로 자부해 본다. 나름 멕시코 철강 전문가로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한국사람으로서 멕시코 철강 바닥 시장부터 정부나 경쟁사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철강 시장에 대해서 나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이었다. 만 11년의 멕시코 근무를 마치고, 본사 복귀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