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나라 멕시코로 간다.

by 구자룡

태양의 나라 멕시코로 간다.


멕시코로 발령이 나기 직전 본사에서 가공센터 관리 및 투자 관련 부서에 근무할 때 어느 날 우리 부장님이 회의를 다녀오셔서 나에게 멕시코 가공센터 영업부장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하셨다. 당시 나는 중국 담당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고, 중국 소재 가공센터 건립 검토를 담당하여 투자 검토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장님께서 멕시코가공센터로 가라 하셔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중국 가공센터를 검토하여 투자 승인도 받고 하였으니,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고 하실 때는 어떤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실은 가야 한다고 하면 멕시코보다는 내가 담당했던 시장인 중국으로 가고 싶었다. 부장님께서는 "중국말은 한마디도 못하는데 중국에서 일을 하긴 어렵다."라고 말씀하셨고, 당시 팀장님도 "영어는 되니까, 본사에서의 업무 경험을 실제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라는 말씀으로 난 멕시코로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수출 전략 및 수출 판매 부서에 있었을 때도 중국 담당을 많이 했었는데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한다는 건 분명 창피한 일이다. 지금도 그때 중국어를 할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한다. 어쨌든 당시엔 내가 해외 근무를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었고, 본사에서의 일도 재미있어서 본사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외국어는 하나만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기에 영어에만 집중했고, 일본어도 시작하다가 그만두는 등 제2외국어 공부에는 소홀했다. 지금의 청년들은 2개 외국어는 기본으로 하는 것이 맞다. 그만큼 시야도 넓어지지만 기회도 많아진다. 나중에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내가 제2외국어를 소홀히 했기에 후회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08년 당시엔 우리 회사에서 멕시코도 영어권으로 분류를 하고 있어 멕시코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임에도 나는 그렇게 멕시코로 오게 되었다.


영어는 어느 정도 하였지만, 스페인어는 전혀 못했기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도 되었다. 실제로 와서 보니 우리 가공센터가 자동차 전용 가공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서인지, 고객사의 대부분이 글로벌 자동차 사들이라서, 고객사의 매니저나 구매담당자들, 직원들이 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그리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처음으로 해외 근무를 명 받았고, 그곳이 멕시코라는 것은 나를 약간 흥분되게 만들었다. 태양의 나라 멕시코로 간다. 포털사이트에 멕시코를 검색하니 역시나 치안 불안 기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시 생각엔 멕시코는 너무나 멀고 위험한 나라였다.


멕시코로 간다는 통보를 받은 날 퇴근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멕시코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니, 아내는 생판 모르는 나라이고, 치안이 불안하다는 나라에 간다는 것이 걱정은 되지만 괜찮다고 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큰애가 중3이었고,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애들도 멕시코라는 나라는 잘 모르지만, 아빠 엄마 의견에 따르겠다고 했다. 실은 다들 걱정이 되긴 했을 거다. 영화를 봐도 멕시코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언제나 지저분하거나 그런 류의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나 역시도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들어가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었다.


가족들은 한국에 두고 나만 들어가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기러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아울러 가족은 웬만해서는 떨어져서 지내지는 않는 게 좋다. 다들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가족은 같이 있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든 같이 있으려 노력을 했다. 멕시코에 살았던 11년도 여러 가지 난관들이 있었지만 가족들은 언제나 같이 있고자 했다.


난 아이가 넷이다. 우리 세대의 기준으로 봐도 대가족이다. 그래서 더욱더 멕시코라는 먼 나라로 가는 것이 더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위로 아들이 세명, 끝으로 막내가 딸아이다.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이렇게 가족들과 이야기도 하고 해서 같이 가는 걸로 결정을 하고, 그 주 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 멕시코로 가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니 아버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의 눈물을 두 번째로 본 순간이었다. 첫 번째는 군에 입대해서 첫 휴가를 나온 때였다.


멕시코 근무 명을 받은 당시 생각엔 멕시코는 너무나 멀고 위험한 나라였다. 그렇더라도 해외근무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설렘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후 가족들은 애들 학교 일정 이유로 얼마 후에 오기로 하고, 나 먼저 멕시코로 들어왔다. 10여 시간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직항이 없어 미국을 경유하여 멕시코시티에 발을 디뎌 놓았다. 집에서 출발해서 도착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저녁 시간에 도착을 한 걸로 기억한다. 멕시코 공항의 첫인상은 약간 어둡고, 뭔가 안정되지 않은 어수선함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스페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그저 시끄러운 언어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페인어는 인간냄새가 물씬 풍기는 언어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영접 나온 직원이 있었고, 그 직원과 같이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1시간 30여분 걸리는 푸에블라라는 지역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동하는 차량의 창밖을 보면서 멕시코 풍경을 보고자 했으나 밤에 이동하는 관계로 밖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도로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동을 해서 푸에블라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가게 되었고, 식당에 도착하니 당시 법인의 법인장이셨던 분과 직원 몇몇이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법인장님은 내가 본사에 있을 때 팀장으로 모셨던 분으로 내가 상당히 존경하는 분이셨다.


도착하자마자 법인장께서 시차 적응을 하려면 소주를 팍 먹고 밤에 잠을 자야 한다고 하시면서 술을 따라 주셨다.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까지 기다려 주신 법인장과 직원분들께 고마웠다. 멕시코에서 맞는 첫 식사는 한국 음식으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료의 싱싱함에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좋은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멕시코라는 지역적 한계를 두고 그 정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저녁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라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게스트하우스는 현지에서 직접 채용된 한국인 직원이 싱글이거나, 본사에서 주재원으로 파견된 직원이 가족들은 한국에 두고 단신으로 부임한 경우에 묵을 수 있게 법인에서 임차한 주택이었다. 도착 후 시차 적응도 안되고 정신도 없고 해서 게스트하우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술도 좀 많이 마셨고 해서 세수하고 발을 닦은 후에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소주를 꽤나 마셨는데도 시차가 있어서인지 새벽 이른 시간에 깼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보다 더 숙취가 심하고 술이 안 깨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첫날부터 술냄새를 풍기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게 생겼다. 어쨌든 우선은 샤워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물이 너무나 졸졸 나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멕시코 물 수급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없으니 일단 어떻게 샤워는 마쳤다. 어제저녁식사 자리에서 보았던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머물게 된 직원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게스트하우스 운영 책임 및 음식도 해주시는 아주머니에게도 부임 인사를 하면서 아침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직원들과 같이 차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출근하자마자 법인장께 정식으로 부임 인사를 드리고 차도 같이 한잔 했다. 차를 하면서 법인장께 이상하게 한국에서보다 숙취가 더 심하다고 하니 멕시코 도시들이 고도가 높아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있는 푸에블라는 고도 2천 미터 정도 되는 곳이다. 법인장님 사무실에서 나와서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영어로 인사를 했는데 다들 알아듣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센 멕시코 사람들이라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을 안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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