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동료 직원의 오늘 와이셔츠 색은 기억나시는가요?

by 구자룡
가슴 펴고 얼굴 세우고 살자는 말이다.


오늘 회사에서 내 옆자리의 동료가 무슨 색 와이셔츠를 입었는지 아는가? 내 앞자리의 동료가 안경을 썼다면 그 안경은 무슨 색이고, 모양이 어떤지 아는가?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와서 앉으려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내가 조금 빨랐다. 자리에 앉긴 했지만 순간 뻘쭘하다. 아마 앉으려던 다른 사람도 느낌은 같았을 것이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 기억나는가? 이 모두가 기억나고 머리에 남아 있다고 하면 정말 대단하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 없다. 연예인이거나 SNS 스타 거나, 타인에게 불편함을 끼치지만 않는다면 나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관심 있는 존재는 아니다. 서글픈가? 그렇게 느낄 필요 없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 없으니 조금은 가슴 펴고 얼굴 세우고 살자는 말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이 사자성어는 언젠가 내가 그 해의 화두로 삼았던 말이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를 화두로 삼았다는 것이 그리 내세울 일은 아니다. 나에겐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하고 싶은 일들이 쌓여간다. 하고 싶은 일이 쌓여 간다는 말을 바꿔 표현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제때제때 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도 같다.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쌓여가나를 보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하려 하면 조금 창피했다. 이제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이걸 해야 하나라고 생각되기도 했고, 늦게 시작한 페이스북에 사진 하나 올리면서도 악플이 붙으면 어쩌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뭐 그렇게나 유명 인물(?)이라고 그랬나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낯을 두껍게 가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후안무치(厚顔無恥)를 화두로 삼았었다.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지나치면 정말이지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데,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 그저 나 정도 사람이면 조금은 낯을 두껍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0년대 태어나서 작금의 50대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SNS에 프로필 얼굴 사진 하나 올리는 것도 꺼려진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서도.. - 그러고 보니 나의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건물 사진이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오랜 기간의 조직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50대들은 아직도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자체가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만약 많은 50대들이 이를 깬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나는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지 않는다.


조직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상하관계에 어느 정도 확실하고, 지시 이행에 대한 의무감(?)이 몸의 곳곳에 배어 있는 50대들이 스스로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두려움과 창피함 둘 다를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 누군가는 - 가족이거나 애인이 아니라면 - 없다. 나는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지 않는다. 언제나 색이 있는 와이셔츠를 입는다. 빨간색에 가까운 와이셔츠도 있다. 내가 와이셔츠의 색깔을 바꾼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세월에서의 회사에서 나의 와이셔츠는 하얀색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정도 되어서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기도 했지만, 주는 하얀색이었다.


언젠가 아내가 목 부분에 줄무늬가 있는 분홍색 계열의 와이셔츠를 사다 주었다. 나는 이 와이셔츠를 입기를 꺼려했다. 왜? 우리 직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와이셔츠를 입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었다. 실제로 우리 직원들이 나의 와이셔츠에 대한 시선이 있기나 했을까? 그렇게 한참을 그 와이셔츠는 옷장 속에 걸려 있었다. 어느 여름에 애들 방학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들어가 있었을 무렵 - 당시 나는 멕시코에 근무 중이었음.,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옷장을 열어보니 입을 와이셔츠가 그거 하나밖에 없는 걸 보았다.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그 와이셔츠를 꺼내서 입고 출근을 하였다. 막상 입고 보니 보기에 좋았다. 그날 그 와이셔츠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무관심한 척했는지, 아니면 그저 속으로만 생각을 했을지 몰라도 아무도 없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우리 직원들이 어떤 와이셔츠를 입었는지 관심 있게 보았다. 다들 칼라풀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히려 하얀 와이셔츠를 입는 것이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후 나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하얀색 와이셔츠는 입지 않는다. 그저 이제는 색이 있는 와이셔츠가 좋다. 색깔이 있는 와이셔츠를 처음 입었던 그 날 아침은 정말이지 후안(厚顔)이 절실하게 필요한 날이었다. 와이셔츠 색깔 하나 바꾸는데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마는. 내 인생에서는 대단한 일 중 하나였다. 20여 년을 주중에 회사 유니폼을 입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도 거른 적이 없는 하얀 와이셔츠를 색깔이 들어간 와이셔츠로 바꾸는 일이었다.


막상 바꿔보니 좋았다. 그러니 뭔가 시도하려 할 때 두려움과 창피함 중 하나는 기본으로 빼보자. 창피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안 주고, 크게 거슬리지 않고, 윤리적,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하면 내가 뭔 짓(?)을 해도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까지는 관심 없다. 약간은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된다는 거다. 오히려 약간은 철판을 깔고 살아가는 편이 마음도 편하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 없다. 자신들이 살아가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까지 가질 마음의 여유도 없다. 연예인들의 삶이 아닌 다음에야...


시대가 변했으니 SNS 등을 통해서 개인이 살아가는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 줄 수도 있고, 실제로 인스타 등을 보면 삶 자체를 아주 디테일하게 지속적으로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좀 과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실은 부럽기도 하다. 10년만 젊었어도.. ^^ 지금이라도 할 수는 있으되, 아직도 나는 후안(厚顔)이 되려면 멀었다. 그래도 여러 가지 시작도 하고 시도도 하고는 있다. 그거면 됐다.


요지는 만약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냥 뭔가 새롭게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자.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시도하고 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는 말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