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이대로 괜찮은가?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1

by 쌀방언니

1년을 봤을 때 23시 59분 59초와 00시 00분 01초 사이는 365번 있다.

그 흔한 365번 중에서 특별한 날이 있으니 그날이 바로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의 23시 59분 59초와 00시 00분 01초 사이이다.

어릴 적 나는 빨리 떡국을 먹고 한 살이 더 많아지고 싶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그해는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타종식을 보기로 했다.


잠에 취해 꾸벅꾸벅 졸다 결국 잠이 든 나를 작은 오빠가 옆에서 흔들어 깨웠다.

“지금 자면 안돼.” 라고 말하는 오빠에게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그냥 자겠다고 말했다.

눈을 뜨지도 못하고 말을 하는 나를 보며

“12월 31일 12시에 잠을 자면 1월 1일 아침에 눈썹이 하얗게 변해서 깨어나.

그러니깐 조금만 참고 12시가 지나서 종이 울리면 그때 자.”

라고 오빠는 말했다.

오빠는 아마 어린 내가 그 시간까지 잠을 참으며 기다린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나는 눈썹이 하얗게 변하는 일은 없을꺼야라고, 그건 거짓말이라고 말하면서도 몸은 벌써 일어나 세수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 나는 ‘제야의 타종 행사’를 무사히 보고 잠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로 내 눈썹이 하얗게 변하는 일 같은건 없을 거라는 걸 알지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날만큼은 그 시간에 깨어있으려는 노력을 한다.




퀘퀘묵은 지난해를 초강력 세제로 말끔하게 청소해 반짝반짝 새것으로 만들어 ‘새해’ 라는 이름으로 안겨줄 그 순간을 기다렸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묵혀두었던 잡동사니와 쓸데없는 생각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열정, 도전, 희망 같은 향기 가득한 것들로 채워지는 마법의 시간.

콩닥거리며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는 셀림과 흥분의 증거였다.


59초, 00초, 01초.

깨끗하게 포장된 선물 같은 새해가 내 앞에 놓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속으로 크게 내뱉은 말과 동시에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윽!!! 도대체 어디서 이런 냄새가…’ 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앞의 놓인 새해라는 선물 상자에 시선갔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물이 흘러나오고 벌레와 쥐 떼들이 몰려들어 썩어가는 쓰레기더미에서 나는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는 점점 짙어졌다.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지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쉬자 악취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아 도로 급하게 숨을 뱉었다. 내뱉는 숨에 이번에는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 올 것 같아 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틀어막은 손 사이로 울컥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희망? 열정? 밝은 미래? 언제 새해가 나에게 그런 적이 있었나?.'

어제의 12월 31일과 오늘의 1월 1일이 전혀 다른 인생이 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이 악취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 위에 또다시 감추고 싶은 진실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마음속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던 그것들이 썩다 못해 게워내는 토사물의 흔적이었다.


멍청하게 ‘새해’라는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을 감추려고 하다니,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이 진실을 가려주길 바랬지만 눈앞에는 악취의 진실들이 더 선명하게 펼쳐졌다.


고개가 저절로 숙어졌다. 감은 두눈에서 눈믈이 흘러나왔다.

눈물과 콧물과 목의 갈증이 뒤덤벅이 되어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진 채로 나는 오랫동안 울었다.

내 삶이 불쌍해서 나오는 눈물인지, 아빠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수는 없었다.

그냥 그대로 눈물이 더이상 안오지 않을때까지 나를 내버려뒀다.

단 한가지 생각만을 하며,

‘내 삶은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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