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낯선 얼굴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1

by 쌀방언니

흐느끼며 울다가, 소리내어 울다가, 조용히 눈물만 흘리가다, 한숨과 함께 콧물만 훌쩍거리다가 그러다가 또다시 미친듯이 눈물을 쏟아내기를 한참을 했다.

눈물이 말라 더이상 흐르지 않자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눈물, 콧물, 침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고 싶었다.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틀어 번들거리는 모든 물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세면대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굴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물이 찰랑찰랑 받히자 그대로 얼굴을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 열기를 어떻게든 식히고 싶었다.

잠그지 않은 물이 머리를 적시고 세면대에서는 물이 넘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숨을 참고, 조용히 숨막힘에 고통이 느껴질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본능적으로 산소를 갈구하는 내 몸이 가늘게 떨리는데도 나는 물속에 얼굴을 쳐박은 채로 있었다.

이대로 숨이 멎을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오는 걸 참고 참다 물속에서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악!!!!!!!"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 물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미친.......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거울 속에 비친 그녀에게 나는 한마디 쏘아붙이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뭐가 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나는 머릿속으로 이 질문들을 던지며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다이어리를 내려다 봤다.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 작년이랑 별반 다른게 없다.

가장 첫 줄에 써있는 '다이어트'. 평생의 나의 숙제.


나는 벌떡 일어나 전신 거울 앞으로 갔다.

윗옷부터 하나씩 벗었다. 브래지어를 풀고 바지도 벗었다. 나체로 서 나를 얼굴부터 천천히 차례대로 훑었다.

오래된 전구처럼 희미한 빛만 담고 있는 생기 없는 눈동자, 허벅지만큼 굵어져 있는 팔뚝, 임신 8개월쯤 되어 보이는 배, 군살이 겹겹이 쌓여 브래지어 라인을 따라 패인 자국이 선명한 등, 두 다리의 사이가 보이지 않을 만큼 굵어져 있는 허벅지, 평퍼짐하게 퍼져 축 쳐진 엉덩이, 검게 변해버린 복숭아뼈.


가슴이 먹먹해졌다. 슬픔보다는 허탈감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무관심했을까?
내 몸은 언제부터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을까?
언제부터 나를 이렇게 포기하고 살았을까?


결혼전 158cm에 45kg였던 나는 세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동안 몸무게가 70kg를 넘었다.

체중계가 70kg를 찍은 날 이후 나는 더이상 체중계 위에 올라서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는 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었고 엄마가 처음인 나는 모든 것이 서툴고 그래서 모든 것이 힘들었다.

내 몸을 관리하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나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갔고, 어느순간부터 내 몸을 돌보는 일을 포기했다. 그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고 매번 투덜대던 내게 시간은 나를 능숙한 엄마로 만들어 주었고, 이젠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때 나는 나를 챙기는 대신 나를 방치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게 더 쉬웠으니깐.'


그랬다,

나는 그때 나를 포기했다.

그때 반짝반짝 빛날 내 인생도 함께 포기해버린 것인지도...


거울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 얼굴이 눈물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울면서 쳐다본 거울 속 낮선 얼굴은 처참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내가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희망도, 모든 것을 억누르며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며 나를 죽여가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

낯선 그 모습이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아빠가 가장 사랑하던 딸로 살아가자.
나 자신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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