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1
새벽 4시 30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진다는 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올빼미형으로 산지 수십년, 먹는 것 보다, 노는 것 보다 아침잠이 중요했다. 떠오르는 태양보다 저무는 태양이 익숙했고, 새벽빛으로 별이 사라지는 하늘보다, 촘촘히 별이 박혀있는 하늘이 나와 더 잘 어울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고 하지만, 나는 그닥 벌레에 관심이 없었고 벌레를 잡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그저 흐르는 시간에 올라타 흘러갈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새벽 운동을 위해 새벽 기상을 선언했다.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의지력과의 싸움이었고, 몸은 습관의 관성에 저항했다.
냐는 내가 빠릿빠릿한 인간인 줄 알고 살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더딘 사람이었다.
새벽 기상의 처음은 누운자리에서 눈을 뜨는 것부터였다. 스피닝을 한 마디씩 더 탔던 것처럼 나는 하나의 행동이 가능해지면 거기에 하나의 행동을 더 보탰다.
알람이 울리면 누운자리에서 눈 뜨기, 눈을 뜨고 일어나서 앉기, 앉아서 기지개를 한 번 펴기, 자리에서 일어나기,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기, 그렇게 느려터진 속도로 나의 새벽을 맞았다.
새벽의 세상은 지금까지의 나의 세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색달랐는데, 그 중에서도 새벽의 공기의 맛은 나를 가장 설레게 했다.
그 맛은 어제까지의 걱정이나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의 얽힘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게 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새벽 기상이 점점 습관이 되면서 나는 삶의 여러 영역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시작했다. 흘러가는대로 시간에 끌려다니던 수동적인 나의 하루를 설계하고 이끌어 나갔다.
새벽 운동이 끝내면 그 성취감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 그건 곧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그 자신감은 나의 집중력을 최고조에 달하게 해주었다.
시간에 쫓기며 항상 바빴다던 나의 아침에 충분한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가 나의 하루를 길게 만들었다.
나는 새벽 기상으로 시간의 풍요로움을 선물 받았다.
어느날 새벽, 정적 속에서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셨던 아빠.
당시에는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아빠에게도 새벽은 자신만의 시간이고, 하루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 고요한 시간 속에서 가족을 생각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셨겠지.'
나를 깨운 새벽 또한 단순한 생활 패턴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였다.
그 변화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새벽의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