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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27. 2020

혐오스러운 괴물고기의 일생

물고기가 사람을 만났을 때 1 <괴물>

*** [봉준호의 동물들]의 연재 글로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의 중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



“어릴 때 한강에서 괴물과 비슷한 물체를 봤다.”는 봉준호는 2000년 2월 미군 영안실에서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480병을 한강에 무단으로 방류한 맥팔랜드(Mcfarland) 사건을 자신의 영화 <괴물>로 끌고 들어온다. 더글라스(Scott Wilson 분)는 “한강은 무척 크다(Han River is very broad)”라고 말하며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던 포르말린을 버리라고 지시한다. 독극물은 그대로 수도관을 타고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2002년 6월 잠실대교 부근, 낚시꾼들(맹봉학, 손진환 분)이 찝찝하게 생긴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친다. 한강은 흐르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윤 사장(권혁풍 분)은 한강 다리 난간 바깥으로 몸을 넘긴 채 아래를 내려다본다. 물속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것’이 있다.


한국 사람에게(특히 서울 사람에게) 한강의 의미는 단순한 ‘강’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강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읍의 젖줄이었고 ‘한강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이다. 그 반면에, 희망을 잃은 이들이 신변을 비관하며 몸을 던져 삶을 마감했던 곳, 사회적 죽음과 성장의 민낯이 비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의하면 감독은 한강의 이런 남성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일상 공간의 한강만 남겨 놓는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옛날에는 한강에서 낚시도 하고 빨래도 했고, 겨울에 강이 얼면 걸어 다니기도 하고,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기도 했다. 현대인들에게 한강은 달리기, 자전거, 인라인 등 스포츠를 즐기고, 강바람을 쐬며 맥주 한잔을 즐기고, 각종 축제와 행사를 즐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휴식처다.


더글라스의 말처럼, 한강은 크다. 넓고 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물에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다. 누구나 한강 다리를 건널 때 한 번쯤은 지하철 차창으로 아래를 보면서 ‘만약 저 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들여다볼 수 없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 보이지 않는 것은 두렵다. 영화 속 한강은 괴물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과 마지막에 죽는 장면, 두 시퀀스를 제외하고 내내 비가 내린다. 남일(박해일 분)이 학교 선배인 뚱게바라(임필성)를 찾아갈 때도 도시의 아스팔트는 비에 젖어 있다. 감독은 흐르는 강과 내리는 비로 화면을 축축하게 적신다. 신발로 물이 들어와 젖은 양말을 신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찝찝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감독은 흥분한 개와 평화롭게 나는 철새를 활용해 화면과 장면을 풍성하게 꾸민다.


괴물은 백두대낮에 느닷없이 나타나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먹는다. 도망치고, 넘어지고, 끌려가는 사람들. 난리통에 놀란 개도 흥분한 나머지 바지를 물고 늘어진다. 도널드 하사(David Joseph Anselmo 분)와 힘을 합쳐 괴물을 공격하던 강두(송강호 분)는 딸 현서(고아성 분)의 손을 잡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강두는 넘어지는 바람에 현서의 손을 놓치고, 괴물은 혼자 남겨진 현서를 꼬리로 감아 납치한다. (봉준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괴물>은 가족 납치극이다.) 괴물은 유유히 강 건너편으로 헤엄쳐 이동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잔잔해지는 한강 위로 화면 오른쪽에서 하얀 철새 떼가 날아든다. 감독은 이 새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 넣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낮의 대학살이 지나간 한강을 평화로운 풍경으로 되돌려놓는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나타나 생명을 죽이거나 도시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괴물>은 기존 괴수영화 장르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괴물의 신체적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괴물은 어류와 양서류를 조합해 디자인됐는데 그의 미끈미끈한 피부로 보아 피부호흡에 의지하는 비중이 높아 물 밖에서 오래 머물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 6~7세, 몸길이 13.7m, 무게 500kg, 사람으로 치면 십 대 사춘기, 돌연변이로 태어난 이후 만성적으로 엄청난 허기에 시달림, 탄생 이후 부모 개체가 없고 행동과 본능을 어떻게 발달시켜야 할지 인지되거나 학습되지 않았음, 의지할 곳이 아무도 없는 외로움을 느낌.’ 괴물을 디자인한 장희철 디자이너가 밝힌 괴물의 프로필이다. 괴물은 물에서는 유유히 헤엄을 치고 뭍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달린다. 감독은 한강이라는 공간에 맞게, 괴물의 크기와 괴물이 할 수 있는 동작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괴물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매달려 있으면 올챙이 같고, 몸을 쭉 펴면 물고기 같고, 근육과 앞발과 뛰어가는 모습은 황소 같다.


이번에 <괴물>을 다시 보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괴물 등에 튀어나와 있는 게 지느러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물고기 세 마리가 박혀 있었다. 나는 장희철이 공개한 괴물 디자인을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봉준호는 휘감을 수 있는 긴 꼬리, 먹고 뱉을 수 있는 입을 제외하고는 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장희철은 어류와 인간, 갑각류, 파충류, 네 발 짐승을 조합하는 그림을 2년 반 동안 2,000개나 그렸다. 감독이나 디자이너나 처음에는 ‘이 세상에 없는 이종 생명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에 알게 된 ‘박혀 있는 물고기’는 어류와 양서류를 조합한 최종 디자인 단계에서야 모습을 보인다. 이 물고기들은 처음부터 봉준호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도대체 이 설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괴물 등에 물고기가 박혀 있는 모습은 시각적으로도 괴상한 느낌을 준다.


나는 괴물 디자인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다가 심해아귀(devil fish)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심해아귀를 검색해 보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무시무시하게 생긴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그 사진의 심해아귀는 모두 암컷이다. 암컷은 평균 몸길이가 40cm 정도고, 수컷은 암컷의 10분의 1 (2~4cm)도 안 된다. 심해아귀의 생식은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놀랍고 무섭다.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암컷의 몸을 물어뜯는데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둘의 피부가 합쳐지고 혈관이 이어지면서 한 몸이 된다. 암컷은 수컷의 눈이나 내장 등 모든 기관을 녹여 흡수하고, 수컷은 오직 생식기능만 남게 된다. 수컷은 몸 형태만 유지한 채 암컷과 한 몸이 된다. 수컷이 암컷의 몸에 평생을 ‘기생’해서 사는 것이다.


다시 <괴물>로 돌아오자. 2002년 낚시꾼들이 처음 괴물을 잡는다. 작은 컵으로 괴물을 건진 그들은 “찝찝하게 생겼네.”, “그런데 꼬리가 대체 몇 개야?”라고 말한다. 왜 찝찝하게 생겼다고 했을까? 왜 꼬리가 여러 개일까? 작은 컵에 들어가던 크기의 괴물이 어떻게 사람보다 몇 배 더 커졌을까? 나는 앞서 소개한 심해아귀에게서 괴물이 자라온 과정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어느 날, 독극물이 강에 흘러들어 많은 물고기들이 죽지만 그중 돌연변이 한 마리가 살아남는다. DNA 정보가 달라진 돌연변이는 심해아귀의 암컷처럼 다른 물고기들이 기생해서 살 수 있는 ‘숙주’가 된다. 꼬리가 여러 개 달려 있는 것은 화학약품 때문에 꼬리가 갈라진 게 아니라 다른 물고기 여러 마리가 기생하며 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혀 있는 물고기들은 곧 돌연변이의 몸으로 흡수되고, 돌연변이의 몸집은 점점 커져 지금에 다다른다. 괴물 디자인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괴물의 발을 보면 발톱이 있는 발가락 바깥쪽으로 모양이 다른 지느러미가 달려있다. 이것은 괴물의 몸으로 흡수된 물고기 부위를 그대로 살린 디자인으로 보인다.


<괴물>의 영어 제목인 <Host>에는 ‘숙주’라는 뜻이 있다. ‘숙주-기생’의 설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 단어는 괴물이 처음 등장하고 한강을 통제하는 장면에서 뉴스 멘트를 통해 언급된다. “이번 한강 괴생물체도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보유한 호스트, 즉 숙주 생물체임이 확실시된다고 밝혔습니다.” 괴물은 ‘바이러스의 숙주’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인간 사회로 퍼져 나간다. 도널드 하사에 대한 검사를 마치고 괴물에게 바이러스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지만 미국은 그 사실을 숨긴다. 바이러스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있다’는 공포를 조장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괴물>은 바이러스라는 숙주에 기생하고 있는 국가, 권력, 외부세력 등을 향한 비판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도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처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생각보다 쉽게 감시망을 피해 빠져나가는 강두네 가족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허술한 공권력 등에 대한 봉준호만의 풍자와 유머가 녹아 있는 영화다.



인간의 시선이 아닌 괴물과 물고기의 눈으로 영화를 보면 영화가 색달라진다.


이 영화를 ‘다르게’ 보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영화에는 괴물의 시선으로 촬영된 컷이 몇 개 있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괴물은 한강에서 뛰어내린 윤 사장을 먹게 되고 인육의 맛에 눈을 뜬다. 한강 똥물의 물고기만 먹다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알고서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 사건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한동안 한강이 폐쇄되자 괴물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 때문에 한강으로 들어온 방역차 직원(백도빈 분)과 배가 고파 매점 서리를 하던 세진(이재응 분)이 괴물의 허기를 잠시나마 달래 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전트 옐로를 사용하려는 미국과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시위가 한강변에서 열린다.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는지 괴물은 냉큼 강변으로 달려 나와 머리를 들어 건너편을 바라본다. 와우! 맛있는 음식이 엄청 많이 있다. 춤을 추는 풍선인형은 축제를 알리는 신호다. 괴물은 오랜만에 포식을 즐기러 유유히 강을 헤엄쳐 건넌다.


하나 더,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물고기의 눈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강에서 사는 물고기다. 어느 날, 독극물 대란에서 살아남은 괴물고기(일반 물고기와 구분 짓기 위해 ‘괴물고기’라고 하겠다.)가 나타난다. 숙주가 된 괴물고기에게 처음에 우연히 물고기 몇 마리가 접촉을 했고, 그들은 곧 괴물고기 몸의 일부가 되었다. 괴물고기가 점점 커지고, 무서운 입을 갖게 되면서 괴물고기는 물고기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우리는 괴물고기의 묵직한 무게, 날렵한 움직임, 위협적인 생김새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한 번쯤 작은 물고기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고 싶기도 하다. 내 앞에 괴물고기가 나타나면 잡아먹힐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기생해서 그 힘을 느껴 볼 것인가? 시위대의 반대에도 정부와 미국은 에이전트 옐로를 사용한다. 괴물고기가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데 툭, 등에 박혀 있던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괴물고기의 몸에 기생하던 물고기가 빠진 구멍을 확인할 수 있다.) 물고기는 살아 있는 듯 팔딱거린다. 그 움직임 때문에 확인이 어려운데 물고기의 왼쪽 눈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트에서 파는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행동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이다. 괴물고기의 왼쪽 눈도 기형이다. 눈이 없는 물고기와 눈이 기형인 괴물고기는 좌우 균형이 무너진 채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괴물고기에 기생하는 물고기는 바로 우리, 인간이다. 눈이 먼 채로 폭주하는 거대한 힘에 편승한 인간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보기만 해도 흉측하고 징그러운 괴물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이 영화의 영어 제목 <Host>는 <기생충>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부잣집에서 기생하는 근세(박명훈 분)는 숙주인 동익(이선균 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인 지하실에서 나와 존재를 드러내자 그는 죽게 되고 숙주인 동익도 죽음을 맞게 된다. 이같이 운명을 같이 하는 ‘숙주-기생’의 설정은 <괴물>부터 시작된 듯하다. 기생하던 물고기가 떨어져 나오자 괴물고기는 삼 남매의 잇단 공격에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한강은 계속 흐른다. 시간이 흘러 괴물고기가 사라진 한강, 물고기들은 다시 찾아온 평화를 기뻐할까? 아니면 인간을 잡아먹을 정도로 위대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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