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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Feb 22. 2020

쮸니 베리 푸푸의 모든 것

개를 다루는 완벽한 방법 4 <기생충>

*** [봉준호의 동물들]의 연재 글로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의 중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그리고 극빈자가 한 공간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선악을 알 수 없는 인물들과 선도 악도 아닌 그들의 행동이 얽혀 생기는 한바탕 소동은 비극적 사건으로 치닫는다. <기생충>은 기우(최우식 분)의 대사처럼 영화 전체를 치고 나가는 흐름과 리듬, 기세가 매력적인 영화다. 봉준호는 배우, 소품, 배경, 조명으로 잘 빚어낸 화면에 음악, 소리를 불어넣어 오직 영화로만 가능한 가장 영화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의 작품뿐 아니라 그 어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바로 ‘개를 다루는 완벽한 방법’이다.  


여는 글인 ‘동물들의 초대장’에서도 밝혔듯이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을 주제로 글을 쓰자고 마음먹게 된 것은 <기생충>을 보고 난 후였다.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지만 극장 문을 나와 영화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비중 있게 나오는 개들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기생충>을 다시 봤다. 개들이 나오는 장면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고, 절대로 이 개들을 빼놓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개들이 화면에 많이 나와서 그런 게 아니라, 개들이 하나하나 이름이 불리며 소개되었기 때문이랄까? -연교(조여정 분)가 충숙(장혜진 분)에게 이름을 알려 주는 장면이다.- 내가 개들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그들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쮸니(견종:푸들), 베리(견종:비글), 푸푸(견종:포메라니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개들은 나에게 와서 글이 되었다.


우선 박 사장네 사람들이 세 마리 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연교는 기우가 처음 과외를 하러 왔을 때는 푸푸를 안고 있고, 기우를 배웅할 때는 쮸니를 안고 있다. 연교는 개를 좋아하고, 아마 이 집에서 처음 개를 키우자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개를 안는 등 어설픈 모습으로 보아 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동익(이선균 분)은 개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퇴근한 동익이 집에 들어올 때 세 마리 개들이 그를 반기며 달려오지만 동익은 잠깐의 시선도 주지 않는다. 개들은 동익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을 따르는 걸로 봐서 이 저택의 진짜 주인이 동익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혜(정지소 분)와 다송(정현준 분) 두 아이는 잠깐씩 개를 안거나 같이 놀아 주는 정도다. 이 집에서 개를 제대로 돌볼 줄 아는 사람은 문광(이정은 분)밖에 없다. 개밥을 주고, 개와 산책을 하고, ... 모든 일은 문광의 몫이다.



쮸니, 베리, 푸푸 세 마리 개는 각각 등장인물을 상징한다.


세 마리 개는 각각 박 사장네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연결이 된다. 쮸니는 다송으로, 연교의 대사에서 그 힌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떠날 때, 연교는 충숙에게 “쮸니는 산책할 때 줄을 길게~ ‘다송이 강아지 버전이 쮸니다’ 생각하시면 돼요”라고 말한다. 주인 없는 집에서 술파티를 벌이다가 박 사장네 가족이 돌아오자 기우는 다혜의 침대 밑으로 숨는다. 잠시 후 쮸니가 침대 밑에 머리를 넣고 앉아 기우를 보고 있다. 쮸니의 이런 행동은 기택(송강호 분)과 충숙에게서 같은 냄새가 나는 걸 알아챈 다송의 모습과 겹친다. 연교가 참관수업을 하러 푸푸를 안고 기우와 2층으로 올라가자 쮸니는 부엌으로 들어와 문광에게 놀아 달라는 듯 ‘왕왕’ 짖는다. 다혜의 첫 수업을 마치고 연교와 기우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송은 문광과 신나게 인디언 놀이를 하고, 정원에서 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푸푸는 연교다. 푸푸의 견종인 포메라니안은 작고 귀엽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개로 연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푸푸는 연교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로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연교는 푸푸를 가장 많이 안아 주고, 세 마리 개 중에서도 항상 가까이에 둔다. 문광이 세 마리 개와 산책을 하고 돌아왔을 때, 연교가 두 팔을 벌려 제일 먼저 맞이하는 건 푸푸다. 캠핑을 떠날 때 연교는 충숙에게 푸푸에게만 특별한 간식을 챙겨 주라고도 한다. 게다가 둘은 식성까지 닮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영화에 나오는 세 마리 개의 조합에서 ‘응? 왜...?’라는 생각이 들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개는 베리다. 푸들과 포메라니안은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애완용’으로 키워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려견으로 많이 키우고 있는 견종이다. 반면 베리의 견종인 비글은 과거에 작은 동물을 사냥했었던 습성이 남아 있어 반려견으로 흔하지 않고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나 아파트에서 키우기 쉽지 않다. (몇몇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푸들과 포메라니안이, 미국에서는 비글이 반려견 인기 순위의 상위권에 올라있다.) 이 개들이 어떻게 이 집에 와서 살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연교가 베리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교는 푸푸와 쮸니에게는 사랑을 주지만, 단 한 번도 베리를 만지지는 않는다.



 베리는 저택, 가족들, 세 마리 개의 조합에서 어울리지 않는 개다.


베리를 쓰다듬고 챙기는 사람은 문광이다. 그래서 베리는 근세(박명훈 분)다. 유독 튀어 보이는 베리처럼 근세는 이 저택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다. 베리가 단독으로 나오는 장면이 많기에 ‘베리=근세’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푸푸와 쮸니는 연교가 안은 상태로 처음 나오지만 베리는 동익의 등장 씬에서 처음 나온다. 세 마리 개가 퇴근하는 동익을 반갑게 맞으며 달려갈 때, 맨 뒤에 있던 베리는 쮸니와 푸푸를 앞장서서 제일 먼저 동익을 맞이한다. 동익이 2층으로 올라갈 때, 동익의 옆으로 올라가려는 다른 개들과 달리 베리는 동익의 바로 뒤에서 꼬리를 흔들며 그를 따른다. 기택네 가족이 문광을 쫓아낼 계획을 세우는 시퀀스에 기우가 문광에게 복숭아 껍질을 뿌리고 문광이 베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장면이 있다. 이는 문광이 곧 이 집에서 쫓겨나게 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될 근세의 상황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박 사장을 죽인 기택은 도망칠 곳을 찾다가 근세가 살던 지하실로 숨는다. 그곳에서 기우에게 모스 부호로 편지를 보내고, 기우가 그 편지를 해석하면서 기택의 회상 시퀀스가 시작된다. 이 시퀀스에 영화 전체에서 가장 튀는, 화면을 90도로 기울여서 죽은 근세를 보여 주는 컷이 있다.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근세의 다리에서 얼굴까지 훑어내리고, 베리는 근세의 옆구리를 찌른 꼬챙이에 꽂혀 있는 베이컨을 뜯어먹고 있다. 베리의 행동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고 피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아무리 고기가 맛있더라도 개가 저렇게 태연히 베이컨을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동물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어느 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준호는 <괴물>에서 괴물의 등장에 놀란 개가 주인의 다리를 물어당기는 장면을 넣었다. 나는 동물들의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감독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이 컷은 죽어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거꾸로 세운 것부터 부잣집에 기생해서 살던 극빈자가 부자와 같이 공생할 수 없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려는 연출 의도가 분명한 장면이다. 여기에 개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성경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를 빌려 왔다는 리뷰처럼 각자의 해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궁금했던 건 따로 있었다. 왜 쮸니와 푸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하필 베리가 이 역할을 맡았을까?


그래서 비글에 대해 찾아봤더니 비글의 습성이 근세의 상태나 행동과 닮은 점이 많았다. 비글은 왕성한 운동량으로 집안이나 마당을 뒤집어 놓기로 유명한 견종이다. 근세는 다송의 즐거운 생일파티를 망치고 저택의 정원을 붉은 피로 물들인다. 비글은 다른 개들의 먹을 것을 뺏어 먹을 정도로 식탐이 강하다. 근세는 지하실에서 살며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늘 배고픔을 느끼고 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베이컨을 뜯어먹는 것은 개의 본능이고, 아내를 죽인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하려는 행위도 인간의 본능으로 볼 수 있다. 보호자가 혼을 내면 한동안 눈치를 보며 피하는 다른 개들과 달리, 비글은 언제나 반갑게 보호자를 맞는다고 한다. 근세는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먹여 주시고 재워 주시는 박 사장을 늘 존경해 왔고, 죽어가면서도 박 사장을 향해 힘껏 외친다. “리스펙트!”



감독은 ‘동물’과 ‘동물과 관련된 물건’을 영화의 서브플롯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떠나자 기택네 가족은 술파티를 벌인다. 구김살이 없는 박 사장네 사람들을 칭찬하고, 자신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윤 기사를 걱정하고, 이 넓은 저택에서 살아보는 걸 상상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전원 취업 사기극이 끝난 상황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롱테이크 촬영을 통해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한다. ‘베리=근세’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이 장면은 더욱 풍성해진다. 기택이 “사모님이 참 순진해. 착하고... 부자인데 착하다니까.”라고 말하자 충숙이 “‘부자인데 착해’가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 거지. 솔직히 이 돈이 다 나한테 있었어 봐. 나는 더 착하지.”라며 대답한다. 이때 베리가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충숙은 베리가 다가오자 귀찮다는 듯이 한 손으로 밀쳐 낸다. 기택네 가족들에게 다가오는 베리는 배가 심하게 고픈 근세다. 만약 기택네 가족이 아니라 문광이 계속 이 집에 있었다면 문광과 근세는 밥도 먹고, 커피도 한잔 하고,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거실을 차지해 버린 기택네 가족 때문에 근세는 지하실에서 나오지 못한다. (충숙이 베리를 밀쳐내는 모습은 근세가 충숙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충숙에게 죽는 장면과도 묘하게 이어진다.)


감독은 이 술파티 씬에서 “이러다가 갑자기 박사장이 집에 온다 쳐 봐.”라는 충숙의 대사로 관객들에게 ‘정말 가족들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저래?’라는 생각을 심어 준다. 이 씬의 마지막 컷에서 기정(박소담 분)이 자기가 먹은 육포가 강아지용이라는 걸 알고 짜증을 낼 때, 딩- 동- 초인종이 울린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벨소리를 듣고 박 사장네가 돌아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니터에는 문광의 얼굴이 뜬다. 베리가 근세를 상징한다면 강아지용 육포는 근세의 먹을 것으로 연결된다. ‘개’와 ‘강아지 육포’라는 동물과 물건은 문광이 근세에게 밥을 주러 이 집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암시하는 시각적 장치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귀로 듣는 정보와 눈으로 보는 정보를 다르게 주고 있다. 관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대사를 통해서는 ‘박 사장네 가족이 갑자기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이는 동물과 소품을 통해 ‘문광이 이 집에 돌아온다’라는 걸 미리 알려 준다. 그렇게 쫓겨났던 문광이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면서 감춰져 있던 지하실이 열리고 근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생충>은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의 상을 휩쓸더니 지난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사뿐 아니라 세계영화사에 이름을 올렸다. 주요 시상식에서는 최고의 조합을 보여 준 배우들도 함께 자리를 빛냈고 수상의 기쁨을 같이 누렸다. 나는 그들 앞에 쮸니, 베리, 푸푸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려 봤다. 영화 시상식에 동물부문상이 있었다면, 동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영화제였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베리였을 것이다. “저는 그저 베이컨을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영화처럼, 살면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참 맛있었는데... 그때 다 못 먹고 반쯤 남아 있는 베이컨을 마저 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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