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슨 Nov 05. 2022

대체, 보고(報告)는 왜 하는 걸까?

보고의 '고객'인 리더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비슷한 나이 또래의 리더와 직원들로 구성된 스타트업의 경우, '보고'라는 단어가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상사들이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 '보고'는 아주 익숙한 단어이며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내가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신입사원 때는 현장 업무를 수행했었고, 직무 성격이 리더로부터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보고'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고 생활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입사 3~4년 차 되던 시점에 본사로 발령받아 처음으로 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이 '보고'라는 행위가 여간 힘들고 괴로운 게 아니었다.


어떤 것은 보고할 필요가 없는데 불필요하게 보고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를 안 해서 혼나기도 하고, 보고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눕혀서(가로로) 써야 하는지, 세워서(세로로) 써야 하는지, '검토 배경'에는 뭐라고 써야 할지('사장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임'이라고 쓸까...), 전체적인 그림을 앞에 넣으라는데 뭘 그리라는 것인지, 임원 분이 내가 답답한 나머지 빈 A4 용지에 본인이 생각하는 그림을 빨간펜으로 그려가며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왜 임원실에서 들고 나온 A4용지는 무슨 말을 적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낙서장으로 변해있는지... 매일매일이 고뇌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왜 리더가 그렇게 보고 받기를 원하고, 보고서를 수정하려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많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이대로 보고 받으면 되지 않나, 이 정도 데이터면 충분한 것 같은데 왜 더 필요한가"와 같은 생각들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업무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력했던 직원이었는지 점점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그렇게 무능력했던 나를 계속해서 믿어주고 키워주려 노력했던 리더 분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 분들께서는 '보고'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고, 리더와의 관계를 현명하게 맺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여나 수년 전의 나와 같은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분들을 위해 '보고'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보고'의 정의

'보고'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보고(報告)]

「명사」
「1」 일에 관한 내용이나 결과를 말이나 글로 알림
「2」 보고하는 글이나 문서. (=보고서)


회사생활 속에서 경험하며 느낀 바에 따라 '보고'라는 개념을 스스로 정의해보자면, '나의 일, 즉 해야 할 일(To do), 하고 있는 일(Doing), 완료한 일(Done)에 대해 리더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거나, 자료를 정리해서 제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리더가 보고를 받고 싶어 하는 이유

리더들은 왜 보고받기를 원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보고서를 요구하는 것일까?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의사결정이 필요한 이슈들이 많아지고,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현시점에 무슨 의사결정을 본인이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실무자 선에서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까맣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리더가 무능하거나 현업에 관심이 없어서인 경우라기보다는, 리더로서의 역할과 책임이 다양하고, 각종 회의와 네트워크 관리 등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즉, 리더 본인에게 현업의 진행상황을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고 싶어 한다. 리더 휘하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고, 그 직원들이 다루는 업무는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얻고 싶어 하고, 그로 인해 깔끔하면서도 근거자료(백데이터)가 잘 정리되어 있는 보고서 형태의 자료를 원하는 것이다.


직원 입장에서 보고를 해야 하는 이유

예전에 업무 경험이 부족하던 시절, 한 선배가 내게 다가와 이렇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너 왜 보고를 해야 하는지 알아? 리더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야. 너가 보고를 하지 않으면, 그 일이 잘못되었을 때 너 책임이 되는 것이고, 보고를 하면 리더의 책임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할 때 꼭 리더에게 보고하는 습관을 가져."


당시에는 그 선배가 나에게는 사수와도 같은 분이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보고'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일과 관련한 내용을 글이나 말로 알리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리더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나의 일을 수월하게 잘 진행하기 위해'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리더와 능동적으로 소통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지, 리더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접근하는 관점이라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있는 일, 완료한 일들을 리더에게 자주 알리면 나 스스로가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매 보고마다 다량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 힘들어지겠지만, 나의 일과 관련한 내용을 리더와 자주 소통할수록 내가 하고 있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확신을 얻을 수 있고, 한참 진행 후에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보고를 자주 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리더가 이미 많은 배경지식을 가지게 되므로 서면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쉽게 통과될 수 있다.


친구와의 관계를 예로 들면,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친구와 같이 있을 때는 특별히 나의 일상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등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리더하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벽을 치고 리더와의 대화를 불편해 하기보다 먼저 다가가 말도 자주 걸고, 나의 일에 대해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다가가 진행상황이나 고민되는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시도한다면, 리더와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보고'라는 행위에 대한 부담감도 많이 없어질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보고에도 '디자인씽킹'을 접목시켜보자

다른 글(브런치북 : 조직문화 및 HRD 실무노트)에서 '디자인씽킹'과 관련해 적은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matigevic/4


디자인씽킹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바로 '고객'이다. 특히 디자인씽킹은 고객의 'Needs' 또는 'Pain point'를 찾아내고 이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고객은 상황별로 서로 다른 개념에 접목시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HR(HRM, HRD, Culture)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경우에 고객은 '직원'이라고 볼 수 있고, 특정 업무의 본사 지원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고객을 '현장 근무 직원'이라고 볼 수 있다.


'보고'의 개념에서 고객은 '리더'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고를 받는 객체이자, 그 보고(또는 보고서)를 소비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보고에 대한 '피드백'의 고객은 '구성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 행위의 고객을 리더로 본다면, 우리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가 편리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 보고라는 행위를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간지러운 부분을 속시원히 긁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고서 작성을 예로 들면 더 명확해진다. 리더들은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보고받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단 한 장의 보고서를 작성하더라도 리더가 이해하기 쉽게 디자인되어 있어야 한다. Design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두 가지 꼽자면 시각화(Visualization)와 실체화(Tangibilization)이다. 즉, 어지럽게 흩어진 지식이나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을 잘 긁어 모아, 시각적으로 눈에 잘 띄고 매력적이게, 추상적인 것을 실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잘 디자인된 보고서는 보고 행위의 고객인 리더의 Pain point를 해소해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리더의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 업무가 물 흐르듯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넓게는 조직에도 도움이 되고, 좁게는 나의 성취감과 일에 대한 보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보고문화 개선을 위해 실행하는 기업의 노력들

구성원들이 보고 및 보고서 작성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보고 프로세스의 비효율 역시 많이 느끼다 보니 기업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개선책을 발굴하고 적용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주로 적용해보는 방법을 예로 들면 '1페이퍼 보고서 캠페인, 쪽지나 포스트잇으로 보고하는 캠페인, PPT 없애기, 결재 프로세스 간소화' 등이 있다. (글로벌 컨설팅펌으로부터 조직문화 개선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아도 이미 해보았거나 예상되는 개선책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 캠페인들을 경험해본 구성원들은 알겠지만, 위와 같은 단편적인 캠페인으로는 큰 변화를 체감하기가 어렵다. 말이 나온 김에 위에 나열한 사례를 하나씩 뜯어보자면,


1페이퍼 보고서 캠페인의 경우, 1페이퍼 뒤에 여러 장의 참고자료가 붙게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차라리 4~5페이지로 잘 설명하여 한 번에 보고가 끝나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다.


쪽지나 포스트잇으로 보고하는 캠페인의 경우, 조그마한 쪽지 안에 최대한 형식을 갖추어 적고자 노력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고, 극단적인 사례로 포스트잇을 A4용지에 붙이고 프린터에 넣어 인쇄하여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PPT 없애기의 경우, 가로 형식의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게 되어 좋은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는데, 정작 PPT를 써야 하는 경우에도 PPT 프로그램이 없어 난감한 경우도 생기고, Word 프로그램을 활용해 최대한 PPT와 유사하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재 프로세스 간소화는 최종 결재권자까지 여러 명의 중간 관리자가 있는 경우, 순차결재가 아니라 모두 동시결재(최종결재권자가 중간관리자보다 먼저 결재 가능)로 하는 방법이 있고, 아예 중간 결재권자를 축소 내지는 생략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형식적으로는 결재 프로세스가 간소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중간 관리자를 Passing 하고(무시하고) 상위 관리자에게 보고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모든 보고절차는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직원들로 하여금 '보고'에 대한 부담감을 완화시켜주고, 보고절차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이런 단편적인 캠페인들이 실제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과 프로세스보다 '문화'가 중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보고에 대한 부담을 덜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장 자체에 답이 있다. 보고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보고하는 자리는 구성원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마음껏 떠들고, 애로사항이나 잘 해결되지 않는 Bottle neck들을 리더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다면 구성원들은 리더에게 보고하는 자리를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리더는 말하고 지시하려는 자세보다는 구성원의 말을 어주는 자세와 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듯이, 리더 역시 그들의 말을 중간에 끊어서는 안 된다. 공감하는 척 들어주다가 결국 본인이 하고자 하는 대로만 관철하는 것도 안 좋은 자세이다. 리더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직원이 느끼는 순간, 그 구성원은 그 후로 입을 닫게 되고, 계속되는 보고의 시간이 그에게는 고통의 연속이 될 것이다.


구성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리더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 구성원은 좋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자주, 그리고 많이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한 번의 보고를 잘 마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로 리더와 소통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구성원 본인 뿐 아니라 리더 역시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며, 리더의 성장은 또 다른 구성원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조직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슈퍼맨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도 없고, 항상 옳은 의사결정만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들은 최고의 조력자이자 동료인 구성원들의 의견을 많이 듣도록 노력해야 하고, 구성원들 역시 리더가 틀린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서포트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리더와 구성원 간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면, 조직의 보고문화가 한 단계 진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보고' 대신 '공유'

어떻게 하면 '보고'에 대한 직원들의 부담감을 완화할 수 있을까를 오랜 기간 고민하다가 몇년 전,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던 적이 있다.


회사 내에서 '보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공유'라는 단어를 쓰게 하면 어떨까


보고라는 단어가 무겁고 조심스러우며 두려움을 주는 단어라면, 그 단어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으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단어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보고'는 마치 구성원이 리더에게 일방향으로 알리는 듯한 뉘앙스의 단어인 반면, '공유'는 서로가 정보를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쌍방향으로 소통한다는 뉘앙스의 단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래 사례를 통해 똑같은 말이라도 단어 하나만 바꾸어도 훨씬 대화가 부드럽고 따뜻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 과장, 그거 보고 언제 할 거니?" vs "김 과장, 그거 언제 공유해줄 거니?"

"박 부장님, 이거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vs "박 부장님, 이거 공유해드리러 왔습니다."

"이 과장, 그거 오늘 부장님 보고 드려야 하지 않아?" vs "이 과장, 그거 오늘 부장님 공유해드려야 하지 않아?"


물론 내 아이디어는 당시 아이디어에서 끝을 맺고 말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꼭 한 번 다시 시도해 보고 싶다.


이전 18화 생각은 생산되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