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발굴하고, 실행하자
길을 걷다 보면 발바닥과 마주하게 되는 낙엽들, 주말에 요리를 해 먹기 위해 사놓은 야채들, 겨울에 입기 위해 구매했던 옷가지들... 이들 모두 현재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어떤 것은 며칠, 어떤 것은 몇 주, 어떤 것은 몇 달 또는 수년에 걸쳐 점점 부패해 가는 과정을 밟는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느냐 하는 작은 차이는 있지만, 어떤 물건이든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패한다라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과학적, 철학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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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질 수 있는 물건,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물건들이 모두 부패해 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생각(Idea)'은 어떨까? 생각도 다른 물체들과 같이 생산되는 순간부터 부패한다는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창업을 하여 기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가든, 회사에 취직하여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든,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든, 여러 명의 팀원들이 달라붙어 Ideate 과정을 거쳐 생산해 낸 아이디어든, 생산되었던 당시에는 불꽃처럼 각광받았던 아이디어가 1~2년, 아니 불과 몇 달만 지나도 과거의 유물처럼 되어버리는 것을 느꼈던 경험 말이다.
분명 그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건 대박이야", "어떻게 이런 신선한 생각을 할 수 있지?" 등의 표현을 하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것은 다 아는 거잖아", "다른 새로운 것 없을까?"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자, 쉽게 익숙해지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무언가를 처음 경험하고 느꼈을 때, 그 순간만큼은 감격, 짜릿함, 놀라움 등을 격하게 느끼지만, 그다음부터는 같은 경험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 상당히 무뎌지기 마련이다.
내가 겪었던 한 가지 사례로,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근무지로 발령받은 후, 근처에 있는 식당 중 맛집이라고 소문난 몇 곳을 동료들의 소개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러 식당들을 다녀보았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을 준 곳은 한 일본라멘 집이었다. 그곳의 매콤한 라멘 맛도 좋았지만, 특히나 수제 고로케가 사이드메뉴로 있었는데, 그 고로케의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당시 감격스러울 정도로 맛있게 먹고 돌아왔던 터라, 다음 주에 기회를 봐서 다시 한번 그 식당에 들러 같은 메뉴를 주문하여 먹어 보았다. 물론 그 맛이 어디 가지는 않았지만, 처음 그곳에 들러 느꼈던 감격과 희열은 느낄 수 없었다. 먹기 전부터 이미 나는 그 맛이 어떤 맛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 음식이 어떤 맛을 나에게 안겨줄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음식은 딱 내가 예상한 기대 수준만큼만 만족을 시켰을 뿐,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선사하진 못했다.
우리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 생산해 낸 아이디어, 업무 프로세스, 사용하는 Tool 등 어떤 것이든, 처음 생산된 이후 우리가 경험하는 순간부터 그것에 익숙해져 가기 마련이고, 그중 대부분은 마치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 '빅데이터 분석', '메타버스', 'Chat GPT' 등 처음 접할 때는 익숙하지 않아 얼마나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자. 처음에는 새롭고 신기하여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 개념들을 알아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각종 미디어 콘텐츠들로부터 이런 키워드들을 계속해서 접해오고 있고,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개념들이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이미 우리 뇌는 그 개념들을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구성원들이 회사 내에서 생산된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익숙해지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들 중에는 더 이상 트렌드에 맞지 않거나, 너무나 진부해서 빨리 버리고 새것을 취해야 하는 것임에도, 이미 많은 구성원들이 비판의식 없이 무언가를 옳은 것이라 인식하고 있거나,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나태함 등으로 인해 새로운 것(새로운 사고, 가치, 질서, 제도, 프로세스 등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과거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과거에는 훌륭한 가치였고, 놀라운 사업 아이디어였기에, 당시 느꼈던 성취감과 감격은 매우 강렬했고,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가치이자 결과물이라 여기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 시기의 추억에 잠겨 사고의 울타리 밖으로(Out of the box)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창의'와 '혁신'을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을 것이다(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신뢰', '소통', '몰입', '성장'과 같은 키워드가 그런 가치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져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통'이라는 가치와 관련된 과거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부서 내의 모든 직원들이 다 함께 야근을 마치고 빠짐없이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회식을 하기도 했고, 동료 중 누군가가 이사를 하면 모두 함께 집들이를 가기도 했으며, 부서장의 부모상이 있는 경우 발인까지 함께 날을 샌 후 묘지까지 관을 이고 가며 위로의 시간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또한 부서 내의 분위기가 처지는 것 같아 보일 때에는 주말 등산 내지는 주말 워크숍을 과감히 추진하며 Boom up을 도모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이런 모습들을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혹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아직 이런 모습들이 그립고 되살려야 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들의 부활을 두려워하고 있거나 상상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 더 많지는 않을까?
옛말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 은나라 시조인 성탕(成湯)이 세숫대야에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 글자를 적고 '진실로 새로워지기 위해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을 매일같이 리마인드 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하루가 지났음에도 '어제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마주하는 세숫대야에 그 글귀를 적어놓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이는 고작 하루가 지난 것들도 버리고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는데, 우리는 10~20여 년이 지난 것들 조차 새롭게 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생각, 나의 습관,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일하는 방식,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 그리고 전산 환경과 일하는 공간 등... 모든 것을 가끔씩은 되돌아보고, 의심해 보자. 이제는 그것들을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이 되지는 않았는지...
지금은 다른 조직의 리더가 되어 있는 친한 선배가 예전에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만약 전에 누군가가 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수행한다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거야.
어떤 일을 하든, 그 안에 나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매번 해오던 업무 프로세스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일하지 말고, 무엇을 바꾸면 좋을까를 고민해보고, 실제로 바꾸어 보기도 해야한다는 의미였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 사업 방향의 전환, 시스템의 개선... 새로운 시도는 어떤 것이든 구성원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무언가 계속해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은 구성원으로하여금 조직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쓰는 평소 자주 쓰는 단어 하나를 새로운 단어를 써보는 것, 매번 똑같은 순서대로 하던 일을 바꿔서 해보는 것 등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하던 스티브 잡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 But show them and pay attention to what they say. Better yet, watch them as they use it. Really great products come from melding two points of view—the technology point of view and the customer point of view. You need both.” (어떤 제품을 원하냐고 묻지 마라. 어떤 제품을 원할지는 소비자들도 모른다. 제품을 직접봐야 그걸 원하는지 알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뿐 아니라, 조직 내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경험은 모두에게 쉽게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일하는 환경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기 전에는 그것이 진부하고 개선했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새로움에 집착하자. 새로움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당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조직과 여러분이 함께 성장하는 상승곡선을 만들어 줄 것이다.
※ 이 글은 건명원 최진석 교수님의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 나오는 "생각은 생산되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라는 문장에 영감을 받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