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가족 초청 행사
조직문화 업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조직문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추진전략을 세운 뒤, 이를 구체화할 사업들을 기획하고 실행해 보았다. 물론 실행해 보았던 사업들 모두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보다 구성원의 반응이 미지근했던 경우도 있었고, 자발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과정에서, 그 중 그래도 꽤 효과적이었던 사업들을 몇 가지 소개해드릴까 한다. 나 역시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조직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책들과 아티클들을 읽었는데, 큰 깨달음을 주는 글도 좋았지만, 실전에서 써먹어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글이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아래에 소개해드리는 내용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고, 각 회사의 내부 풍토에 따라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분의 브레인 스토밍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소개해드리며, 각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하여 활용하시길 바란다.
※ 긍정경험 실천 사례는 총 3편의 글로 구성되며, 이 글은 그 중 첫 번째 글이다.
회사의 구성원은 누구나 자신이 인정받고, 가치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싶어한다. 그것이 비단 회사 내에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로 회사 내에서도 일 잘하는 후배, 존경스런 선배, 따르고 싶은 리더가 되고 싶을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것을 건드려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의 가족이나 지인을 활용한 레퍼럴 효과를 타겟팅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된다. 구성원으로 하여금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있고, 정말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을 가족과 지인이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것만큼 그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드는 것이 없다.
"아빠 회사 진짜 좋다. 아빠 멋져!", "우리 딸, 그 동안 말 안해서 몰랐는데 회사에서 엄청 인정 받고 있구나.", "여보, 당신 진짜 자랑스럽다.", "친구야, 너희 회사 보니까 내가 다니는 회사가 너무 별로인 것 같다. 부럽네..."
구성원들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은 기억은 그 어느 경험보다 값지고 벅찬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다.
여러분이 소속된 회사가 제조업을 영위하여 특수한 생산 공정을 소개해줄 수 있거나, 항공 및 철도운항업 등을 영위하여 항공기나 기차를 소개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일반인들은 평소에 접근하지 못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구성원의 가족들에게만 특별히 꺼내어 주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에서는 매년 임직원 가족 초청 행사를 대한항공 소유의 대형 격납고에서 실시하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에어바운스와 어르신들을 위한 안마의자 등을 대량 배치하고, 무료로 식사와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식권을 나누어 주어, 격납고 안에 들어선 푸드트럭에서 마음껏 먹고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기회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하이라이트는 대한항공 항공기 관람 시간이다. 항공기의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은 워낙 고가의 좌석이라 평상시에는 앉아보기 어려운 좌석인데, 이 날은 실컷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할 수 있다. 어른 키보다 큰 비행기 바퀴 아래에서 신기해 하기도 하고, 모든걸 삼킬 것 같은 제트엔진을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다만 여러분이 속한 회사가 이처럼 많은 예산을 활용하여 대형 행사를 운영할 수 없는 작은 규모의 회사이거나, 금융 또는 부동산이나 컨설팅사와 같이 시각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을 구상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내가 속한 회사 역시 구성원의 가족들에게 시각적 또는 물리적으로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게할 무기가 마땅치 않았기에, 한정된 예산 규모 안에서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안을 많이 고민했다. 여러 시도들을 해보았는데, 그 중에서 효과가 좋았던 아이템들을 간략히 소개해드릴까 한다.
참고로 아래 프로그램들은 그동안의 가족 초청 행사 때 진행된 여러 프로그램들 중 하나였고,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지 않으면서, 참가 가족의 만족도가 높았던 프로그램들이다.
[가족사진]
여러분은 최근에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어본게 언제인가.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기억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나질 않고, 배우자와 아들과 함께는 2~3년에 한 번씩 찍고 있다. 사진관을 이용하여 가족사진을 찍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래도 사진을 함께 찍을 모든 구성원이 같은 날에 시간을 비워야 하는 점, 그리고 사진 여러장을 찍고 나서도 몇 장밖에 선택을 못하는 동시에, 그 마저도 파일로 받을 수가 없는데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Pain Point를 건드려 주면 어떨까.
행사장에 작은 공간 하나를 스튜디오로 꾸미고, 가족사진을 촬영한 후, 앨범을 제작하여 각 구성원에게 선물해주는 것이다. 평소 시간 내어 사진관을 가기도 어렵고, 웬만한 사진관에서 가족사진 한 번 찍으려면 수십만원의 비용이 기본적으로 소요되기 마련인데, 회사가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을 상당히 감사해 하고, 회사가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이 정도의 배려를 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못했지만) 앨범을 선물해 줄 때에도 따뜻한 멘트가 담긴 카드를 함께 동봉해 준다면 더 큰 긍정경험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가훈 만들기]
상당히 식상해 보이고, 트렌디하지 못한 느낌이 드는 프로그램으로 보일 수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참가자 가족들이 좋아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프로그램이 효과가 상당하다. 오히려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참여 후 설문 만족도가 가장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전문 서예가 강사님을 모시고, 각 가족들에게는 문방사우(벼루, 먹, 붓, 종이)를 나누어 준다. 가족들은 우리집 가훈을 어떤 것으로 정할지 종이 앞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아이디어에 다같이 박장대소 하는 가족들도 보이고, 가족의 인생사를 한 줄에 담아보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가족들도 보인다.
우리집의 가훈을 정했다면, 각자 문방사우를 이용해 자신있게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내려 간다. 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붓 때문에, 각자 적은 가훈은 그 문장이 가진 큰 포부에 비해 너무 삐뚤빼뚤 장난스럽게 보이고 만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접해보는 문방사우를 가지고 놀며 히히헤헤 웃음꽃이 핀다.
마지막으로 서예가 강사님이 돌아다니며, 각 가족의 가훈을 족자에 적어 선물해준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적은 가훈을 가지고 간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터라, 뜻 밖의 선물에 놀라면서도 좋아한다. 게다가 서예가 강사님의 필체가 워낙 명필이라 그 실력에도 감탄한다.
아름다운 필체로 쓰여진 가훈과 삐뚤빼뚤 적은 가훈 두 가지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두 가지 모두 가방에 고이 담아 가져간다.
[부모님 세족식]
자녀인 구성원이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행사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 외에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줘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특히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린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잠시 부모님의 입장에서 여러분이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린다면 어떤 기분이실지 상상해보기 바란다. 만약 내가 먼 미래에 부모로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예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다 씻겨줘야 하는 아기였는데, 어느새 나는 노인이 되고, 이 녀석은 건실한 어른이 되어 내 발을 씻겨주는구나... 감격스럽다...가슴 뭉클하다..."
전문 강사님은 세족식을 시작하기 전, 이와 같은 감정선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잡아주신다. 이후 진행되는 세족식에서 참가 가족들은 옅은 미소를 띠기도 하고,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한다.
[야외 버스킹 & 만화영화 감상]
밤 바람이 선선한 봄이나 가을날씨에 하기에 적합하다. 평소에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저녁에 맥주 한잔 못하며 살아왔을 부부들에게 잠시나마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이다.
야외에는 버스킹 공연을 구경하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실내에는 VOD를 상영(대형 TV 또는 빔프로젝터가 있는 공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아이들은 모두 이 공간에 모여 앉아 2시간 가량 먹고 싶은 간식과 함께 만화 영화를 시청한다. 아이들이 영화에 관심 없고 마구 돌아다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예상 외로 아이들은 간식과 만화에 완전히 심취한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맥주 한 캔, 마른 안주거리 한 접시씩을 나누어 주고, 야외 버스킹 공연을 구경하도록 한다.
버스킹 공연을 하는 가수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와 맥주 한잔에 버스킹 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다. 평소 조용하고 낯을 가리던 구성원이 그날은 유독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며 목청껏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
[부모님께 드리는 영상편지]
사전에 행사에 참가하는 구성원들을 섭외하여, 부모님께 드리는 영상편지를 제작한다. 영상의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 그 안의 메시지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여 녹화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잠시 했었지만, 구성원들은 잠시 부모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 후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응시하며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모은 영상 소스들을 편집하여, 행사 당일 부모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행사장 안에서 상영한다. 행사장 안은 훌쩍훌쩍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부모님들의 숨소리에 숙연해지고, 서로 토닥이고 안아주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가득해진다.
[클레이, 슬라임 만들기]
초등학교 이하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단연 클레이와 슬라임 만들기다. 특히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3~4세 어린이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아이들까지 모두 재미있게 참여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연령대의 범위가 넓은 편이다.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 중에도 좋아하는 친구들이 꽤 된다.
아이들이 다소 긴 시간동안 한 가지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직접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번 참여했던 아이들도 두번 세번 다시 참여해 하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앉아서 만들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운영해볼 수 있다는 부분이 장점이다.
[아이들 놀이 공간]
확보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아이템들을 준비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큰 규모의 장소를 사용 또는 대관할 수 있다면, 에어바운스 설치를 추천한다. 시각적으로 거대해 보여서 비용이 꽤 비쌀 것으로 예상하시겠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다. 에어바운스에도 종류가 여러가지 있는데, 초등학생용과 미취학 아동용을 구분하여 준비하고, 반드시 안전요원과 구급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그 외에도 여유 공간에 따라 다트, 양궁, 실내 컬링, 즉석 풍선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으며,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놀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들을 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담당자의 손이 많이 가고, 힘들수록 참가 가족의 감동은 배가 된다. 나 역시 이부분을 항상 놓치지 않으려 신경은 쓰지만, 항상 나보다 더 신경쓰고 한 가지라도 더 참가자에게 감동을 줄 요소를 고민하는 동료들을 보며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가족 초청행사를 마치고 나서 행사에 참가했던 구성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보면, 물론 특정 프로그램이 재미있었다는 분들도 있지만, "회사가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서 챙겨줄 줄은 몰랐다. 정말 감동적이었고, 내가 회사에서 이 정도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준 것 같아 자랑스럽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즉 행사 참가 가족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참여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들이 행사 장소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귀가하는 그 순간까지 곳곳에 "회사가 우리 가족을 위해 이 정도의 디테일한 정성을 준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